brunch

네잎클로버 트랩

기분 좋은 일로 가득할 거라는 예감을 심어본다

by 가담


잠이 잘 안 와도
내일의 나를 위해
억지로라도 눈을
감아야 할 때가 있는데,
눈을 감으면
깜깜해서 그런지
온갖 걱정거리 잔상이
선명해지면서
잠이 잘 안 온다.


얼른 자야 된다는
압박감 속에서
스스로를 달래보듯
습관적으로 "잘 자"라며
인사를 해보지만,
그때마다 아차 싶어진다.


잘 자라는 인사를
입 밖으로 내뱉는 날이면
이상하게 꼭
새벽 늦게까지
잠이 안 왔던 터라,
이번에도 일찍 잠들기는
글렀다고 생각하며
다음날의 컨디션을
걱정하게 된다.


재수를 하던 20살 때,
그러니까 혈관에
적혈구보다 불안 덩어리가
더 가득했던 것 같던 시절에
이런 징크스가 생긴 것 같다.


계란 껍질 까는 소리에도
와다다 달려오던
우리 집 강아지가 코를 골만큼
조용한 새벽이었지만,
눈을 감기만 하면
아직 보지도 않은 수능 결과가
어렴풋하게 보이면서
100일 전으로 돌아가면 좋겠다는
의미 없이 시끄럽기만 한
상상에 빠지며
정신이 말똥말똥 해졌다.


어느새 시간을 보니
새벽 4시가 훌쩍 넘어
이제 그만 자보자고
스스로를 토닥여보지만,
잠이 오기는커녕
종소리가 들리면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불면증과 토닥임 사이에
인과관계를 만들고 있었다.


그 이후로 잠이 안 올 때
스스로에게 건네는
'잘 자'라는 다정한 인사는
지금까지도 약간의
금기어가 되어버렸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
새로운 징크스가
하나 더 생겼는데,
'일요일 밤'이라는 이유로
피곤한 정도와 상관없이
일찍 잠들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다음 날 일어나서
처리해야 되는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며,
아직 찾아오지도 않은
한 주의 무게감을
미리 맛보느라
새벽 1시 정도까지는
뒤척이다 잠들어야 한다.


잠이 오지 않는 이유가
자세 때문인가 싶어
왼쪽으로 한번
오른쪽으로 한번
등을 굴려보지만,
여전히 잠이 안 오는 걸 보니
아무래도 또다시
징크스의 덫에 걸린듯싶다.


처음 시작은
단순히 고개를 저으면
사라질 뜬구름 같은
상상에 불과했는데
걱정거리와 불안감이 선명해질수록
뾰족한 날이 하나씩 올라왔고,
하나둘 맞물리는 아귀 속에
생각이 갇혀버려
이도 저도 못하게 되어버렸다.


왠지 모를 억울함 때문에
조금 뒤로 물러나
설치된 덫을 살펴보니,
불안한 감정을
적당한 단어와 상황 속에
꾹꾹 눌러 담고 있는
내 모습이 그제야 보인다.


어디에 덫이
있는지 알고 난 후로,
약간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피해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잘 자라는 말 대신에
'굿밤', '굿나잇'
이런 비슷한 단어로
인사를 해본다거나,
일요일 밤에 눈을 감고
월요일에 대한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상상해 본다거나.


어쩌면 조금 더 욕심을 내서,
간간이 설치되어 있는
징크스 덫 사이사이에
또 다른 트랩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징크스를
두 개나 설치해 봤으니,
좋은 기운으로 가득한
네잎클로버 같은 트랩을
설치하는 건
비교적 쉬울지도 모르겠다.


네잎클로버를 찾을 확률이
만 번에 한 번꼴이라지만,
최대한 많이 심어 놓으면
행운의 순간을
두세 번쯤은 가뿐히
끌어당길 수 있지 않을까.


아침에 웃으면서
시작하는 날은
하루 종일 기분 좋은 일로
가득할 거라는 예감을 심어보며,
굿밤이라는 인사와 함께
다가올 아침을 기대해 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생 만능 치트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