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와 얼음 같은 관계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
고등학생 때
24살 대학생 선생님에게
수학 과외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수학공식은 기억 못 해도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가 좁아지는 것 같다던
선생님의 얘기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한다.
그때도 선생님의 하소연이
조금은 공감이 됐지만,
그 당시 선생님 나이보다
5살이나 더 먹고 나니
완전히 이해해버린 것 같다.
뛰어놀기 마냥 바빴던
초등학생 때는
놀이터에서 처음 만난
이름도 모르는 아이와
금방 친구가 되곤 했는데,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집안의 작은 문제와 미래에 대한
조금은 진지한 생각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나만의 결이 기준이 되어
나와 닮은 구석이 있는
몇몇 친구들과 붙어 다니기
시작한 것 같다.
집에 있는 원목 가구들이
비슷해 보여도
자세히 보면
다양한 색과 나뭇결을 가지듯,
한 살씩 먹으며
생활 반경이 넓어질수록
비슷한 듯 각기 다른 결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대학교에 입학한다거나
취직을 하면서 놓이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
낯설기도 하고 설레어서인지
초등학생 때처럼
아무 조건 없이
이름만 아는 낯선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 의욕이 앞서버려서,
소수의 사람과 보내는
조용한 시간을 좋아한다는
나만의 범위에서
벗어나버릴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가진
화려해 보이는 결과
잘 어우러지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의식적으로 입꼬리도 올려보고,
가끔씩 느껴지는
결과 결 사이의 여백은
날씨가 쌀쌀하다거나
저녁에 뭘 먹을지에 대한
시시콜콜한 물음표로 채우려다 보니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하게 된다.
혼자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입 주변의 얼얼함이 느껴질 때
오늘 하루 참 애썼구나 싶어진다.
핸드폰을 틀어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서야
나만의 안정 범위에
돌아왔다는 생각에
에너지가 점점 채워진다.
예전에는 카페에 가면
우유와 얼음이 갈린
달달한 음료를 자주 마셨는데,
이제는 늦은 시간만 아니면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커피 종류에 손이 자주 간다.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얼음이 녹으면서
층이 분리되는
요거트 스무디와는 다르게,
아메리카노는
얼음이 녹아도
맛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
여유롭게 마실 수 있다.
냉동실 속 얼음끼리
부딪히는 소리는
꽤나 시끄럽게 들리지만,
커피잔에 들어있는 빨대를
휘휘 저을 때
커피의 흐름을 따라
부드럽게 달그락거리는
얼음 소리는
왠지 모르게 듣기 좋다.
자주까지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만나는
몇 안 되는 사람들과는
아메리카노와 얼음같이
서로를 적당히
중화시켜주는 관계를
이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서로의 다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스며들 수 있는 관계,
입에 발린 말을 덧붙이며
애써 꾸며내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대화를 이어가다가도
때로는 숨소리만으로도
가득 채울 수 있는 그런 관계.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얼음이 녹을 때까지
천천히 즐기는 커피 한 잔이
제일 맛있는 이유가 있었나 보다.
고등학생 때
과외 선생님이 얘기해 준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가 좁아진다는
말의 의미는,
어쩌면 불필요한 에너지를
거절할 수 있는
조금은 확고한 결을 가진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불러줘서 고맙지만
만나기도 전에 생각만으로도
기가 다 빨려버리는 만남을
조심스레 거절하며 얻은
속 시원한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에
조금 더 마음을 쏟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