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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마음을 얹어

by 가담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배려가 존재한다.


아무런 말 없이
주변을 지켜주다가
때로는 자리를 피해주고,
따뜻한 말이 오가거나
반대로 말을 아낄 때도 있다.


은근하게 이뤄질 때는
배려가 오가는 순간을
인식하기 어려운데,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나는 이미 상대의 배려를
받은 사람이 되어있기도 하다.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점박이 무늬를 가진 해피를
처음으로 품에 안았던 날부터
그리고 새하얀 털의 말랑이를
새로운 식구로 맞이한 이래로
알게 모르게 수많은 배려가
오갔던 것 같다.


산책을 아주 좋아하던 해피는
작은 발바닥을 땅에 내딛는 순간
화단에 있는 각종 풀마다
킁킁거리기에 바빴다.


하루는 해피랑 산책을 하다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돌멩이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손에 꽉 지고 있던
해피의 빨간 목줄을 놓쳐버렸다.


혹여나 해피가
혼자 앞서 가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바닥에 엎드려진 채로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는데,
안 그래도 해피의 작은 몸이
더 작아 보일 만큼 저 멀리에서
사뿐하게 걷고 있는
해피의 뒷모습이 보였다.


뒤늦게나마 허전함을 느꼈는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더니,
길가에 널브러져 있는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와
내가 일어날 때까지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줬다.


반면 말랑이는 해피와 다르게
여기저기 냄새를 맡기보다는
앞에 펼쳐진 길을 따라
끊임없이 쭉 걷는 걸 좋아한다.


말랑이와 가족이 된 후로는
나와 해피 그리고 말랑이까지
셋이 함께 산책을 하게 되었고,
산책을 나갈 때마다
풀을 사랑하던 해피 때문에
풀 냄새를 맡기 위해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거나
혹은 이미 지나쳐온 길로
되돌아가기 일쑤였다.


이를 지켜보는 말랑이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만도 했지만
오히려 묵묵하게 앉아 잠시 숨을 고르며
해피의 속도에 맞춰주곤 했는데,
말랑이의 기다림은
말랑이가 어렸을 때 받은
해피의 배려에 대한
보답일지도 모르겠다.


꽤 오랫동안 해피의 최애 장난감은
주황색 뼈다귀 모양의
삑삑이 장난감이었다.


그리고 어느순간부터
그 당시 태어난 지 1년이 안 된
어린 말랑이도 그 장난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해피가 한창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말랑이가 그 주변을 서성이면
형이 동생에게 양보한다는 듯이
입에 물고 있던 장난감을
바닥에 툭 내려놨는데,
말랑이는 그 마음이 고마웠는지
잘 때나 쉬고 있을 때도
틈만 나면 해피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날이 많았다.


자취방에서 혼자 일주일을 보내다가
지난 토요일에 본가에 갔을 때
말랑이의 심장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언니에게 처음으로 듣게 됐다.


말랑이의 건강 이상 신호는
목요일에 처음으로 발견됐다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항상 제일 먼저 반겨주던 말랑이가
그날따라 조용했다고 한다.


말랑이의 행방을 찾아보니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한 채
눈만 깜박거리고 있었다고 했다.


만약 목요일에 이 소식을 들었다면
타지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집에서나 회사에서도
안절부절못해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텐데,
가족들은 나의 이런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아는 탓에
일부러 얘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말랑이에 대한 소식을
이틀이나 늦게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많이 속상했지만,
가족들의 숨은 의도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속상한 마음은 곧
고마운 감정으로 바뀌게 됐다.


해피와 말랑이의 듬직함과
서로를 위해 양보하는 모습
그리고 보이지 않는
나의 상황과 감정을 헤아려준
가족들의 속마음까지도,
어느새 또다시 나는
주변 사람들의 배려를
한가득 받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내가 받은 건
한순간의 배려뿐만 아니라,
마음에 마음을 얹는 방법까지도
배우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이 준 따뜻함에
가장 나다운 형태로 마음을 담아
다시 돌려주고 싶어진다.


해피와 함께한 시간을 잊지 않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심폐소생술을 익히는 것과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게끔
말랑이의 속도에 맞춰 걷고,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담아 듣기로 한다.


무던한 내가
여전히 눈치채지 못한
수많은 배려의 순간들이
차고 넘칠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큼 나의 행동에서도
상대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우면서도 묵직한 배려가
스며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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