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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라

by 가담



본가로부터 지하철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2년이 흘렀다.


그리고 2년이 흐르는 동안
처음으로 이사했던 날을 제외하곤
부모님이 자취방에 와보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모님들이 한두 번씩은 자취방에
들리시곤 하는 것 같은데...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우리 가족이 무심한 편인가 싶어진다.


나의 첫 독립은
타지에서의 직장 생활이라는
남들과 비슷한 이유로 시작되었지만,
조금 특이한 게 있다면
부모님과의 의견 대립으로
우여곡절 끝에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재수하랴 휴학하랴
입학과 졸업이 늦어지면서
다른 친구들에 비해
많이 뒤처졌다는 생각에,
최악이 아닌 이상 나를 써주겠다고
처음으로 말해주는 회사에게
충성하겠노라 마음먹게 됐다.


그리고 졸업한 지 7개월 만에
인생 처음으로 면접을 본
첫 번째 회사에서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조건이 그리 대단하진 않아도
다른 후보자들을 제치고
내가 선택되었다는 사실에
높아지는 콧대와 으쓱해지는 어깨를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기뻤다.


부모님께 이 영웅담을 들려드리면
내가 행복해한 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열렬히
축하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목소리로
조금만 더 시간을 투자해서
이보다 좋은 조건의 일터로
가는 게 낫지 않겠냐며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신다.


부모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도
왜 그렇게 얘기하시는지도
머리로는 이해가 갔지만,
내 노력에 대한 축하보다는
현실적이면서 쓰라린 조언이
먼저였던 부모님이 조금은 미웠다.


무엇보다 내 마음은 이미
아직 가보지도 않은
상상 속 사무실에 눌러 앉아
한껏 들떠 있었기에,
스스로를 타이를 겨를도 없이
조금은 완강하게 고집을 부렸던 것 같다.


부모님이 져주시며 결정된
나의 첫 자취 생활,
입사 일이 조금 빠듯한 관계로
단 하루 만에 집을 구해야 했다.


엄밀히 따지면 대략 6시간 안으로
어디에서 살지 당장 결정해야 됐는데,
총 다섯 채의 집을
중개사님도 지쳐 하실 만큼
바쁘게 돌아다닌 끝에
적절한 보증금과 월세
그리고 화이트톤으로 깔끔해 보이는
마지막 집을 선택하기로 했다.


집 계약이 끝난 다음 날,
언니가 자취할 때 쓰던
냄비, 티브이, 탁상, 이불 등
꼭 필요한 최소한의 살림을
아빠 차 트렁크에 실어
자취방으로 향했다.


본가에서 챙긴 짐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는지
엘리베이터로 몇 번 왔다 갔다 하며
짐을 옮기다 보니 그새 이사가 끝났고,
그렇게 나는 완전히 타지 사람이 되었다.


짐을 다 풀고 난 후에
먹고 싶은 거나
필요한 것을 사주시겠다며
장을 보러 가자는 아빠의 말에
근처에 있는 대형 마트로 갔는데,
카트 안에는 내가 고른 것보다는
아빠가 고른 것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햇반, 들기름김, 스팸 등
큰 손의 대가인 아빠답게
한 달은 거뜬할 정도의 양을
카트에 담으셨다.


이사에 장 보기까지
모든 임무를 마친 아빠는
아빠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운전석에 오르려다가 멈칫하시더니,
나를 한번 꼬옥 안으며
"잘 살아라"라고 작별 인사를 하셨다.


아빠가 말한 '잘 살다'의 정의는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걸까?


그때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은
가족의 도움 없이 이사한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지내고 있다.


여전히 내 자취방에는
가족들의 발자취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서로의 살결이 닿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를 하며
멀리서나마 부모님의 마음을 전달받곤 한다.


엄마와 아빠에게 자취하는 딸을 위한
체크리스트가 있는 건지 의심될 정도로,
전화를 할 때마다 두 분의 대화 패턴이
상당히 비슷하다.


통화의 대부분은
잘 지내고 있냐를 시작으로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인사로 끝이 나는데,
때로는 조금은 낯간지러운
직설적인 사랑 고백과
다음에 오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겠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하신다.


아무래도 엄마 아빠의
'잘 살아라'라는 말의 정답은
잘 챙겨 먹으라는 문장 속에 있는 것 같다.


오전 6시 20분부터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끄고
5분만 더 스킬을 시전하다 보면
어느새 6시 40분이 되어있다.


시간에 쫓기듯 머리를 감고
드라이기를 하다 보면
출근 시간이 코앞이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핑계로
아침밥을 거를까 하다가도,
부모님과의 대화가 생각나서
간단하게 차려 먹기로 한다.


고집부리며 타지에 온 만큼
나의 선택에 떳떳할 수 있도록
그리고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으시도록
더 잘 살고 싶어진다.


오늘은 계란 토마토 토스트와
요거트로 합의를 보며
하루를 건강하게,
잘 살아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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