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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주변

우리만의 대화

by 가담



"혹시 부서에 이어폰 끼고
일하는 사람 있어요?"


점심시간에 타부서 사람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조금은 조용한 목소리로
내가 속한 부서의 근황을 물었다.


이어폰을 꽂은 채로
업무 보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나.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사람은 없다고
대답하려는 찰나에,
의심스러운 며칠 전의 하루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평소에는 업무 시간에
노래를 듣지 않지만,
그날따라 유독 졸음이
덕지덕지 몰려온 탓에
주변 눈치를 살피다가
버즈 한 짝을 10분 정도 끼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그 가십의 주인공인 것 같다.


일주일에 다섯 번 하루에 8시간,
매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면
가지각색으로 떠돌아다니는 가십거리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듣게 된다.


하루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채우고,
또 다른 날은 1층의 그 사람이나
2층의 누구에 대한 소문이 들려온다.


이러쿵저러쿵했다는 말을 시작으로
온갖 추측이 오가다 보면,
어느새 추측이 아닌
확신으로 변하는 식이다.


아마 졸음 방지용으로
잠시 노래를 들었던 그날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라는 사람은 손쓸 새도 없이
상사 앞에서 이어폰을 끼고 일하는
예의 없는 사원이 돼버린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학창 시절 때는 유독
말주변이 없던 터라
친구와 약속이 생기면
그 전날부터 미리
대화 주제를 생각해 보곤 했다.


중학생 때 반 친구들과
인사동에 놀러 가기로 했던 날에도
버스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을까
어김없이 고민을 했는데,
부끄럽게도 고민 끝에 찾은 주제는
제3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약간의 변명을 해보자면,
쉬는 시간에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던 무리들의
단골 소재였던 험담이
말을 재밌게 하는 비결이라고
오해하는 바람에 어쭙잖게
따라 해보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야깃거리는 금방 떨어졌고,
무엇보다 재밌다기보다는
마음 한편에 찜찜함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20살이 되었을 무렵 티비를 보는데,
다른 사람을 험담하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개그맨 신동엽 님의 말이 마음에 콕 박혔다.
인사동을 향하는 버스 안에
자욱했던 기분 나쁜 찜찜함의
실체를 마주한 기분이랄까.


그 이후로 신동엽 님의 말을
인생 철칙 중 하나로 삼으며
말을 조심하고,
또 아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였을까,
말을 너무 아낀 탓에
회사에 출근해서 퇴근하기까지
입안에 거미줄이 쳐지기 일쑤다.


물론 새로운 가십거리가 들려오면
나도 모르게 귀의 모든 신경이
옹기종기 모여 얘기하는
회사 사람들의 목소리에 쏠리지만,
내 몸과 입만큼은
책상 하나 겨우 들어가는
네모난 파티션 안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때로는 조금 심심하기도 한데,
그래도 험담하는 자리에 끼지 않는
내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든다.


회사에서 그나마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점심시간에 짧게나마
함께 커피 한 잔 마시는
타부서 사람이다.


우리의 대화는 보통
'제가'라든지 '누구씨'와 같이,
1인칭과 2인칭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나에 대해서 그리고 너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로 채우는 대화가
반갑기도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쩌면 말주변이 좋다는 것은
제3자를 끌어들이지 않고도
대화를 풍성하게
이어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에 대해
막힘없이 말할 수 있게끔
나라는 사람에 대해 탐구해 보고,
마찬가지로 너의 생각과 행동에
여러 방면으로 물음표를 붙여보며
말주변을 늘려가 본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적이 흐를 틈이 없지 않을까.


입안의 거미줄을 걷어내주는
나의 커피 메이트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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