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3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할머니를 마주쳤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길을 막지 않게끔
아파트와 보행로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보행 보조기를 의자로 삼아 앉으셨는데,
언뜻 봤을 때는 뜨개질을 하는 건가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포장용 뽁뽁이를
꼼지락꼼지락 터트리고 계신다.
그리고 할머니 무릎 왼편에
쌓여있는 뽁뽁이탑.
게임기처럼 잡기 편하게
가로세로 한 뼘 정도 너비로
반듯하게 잘라오셨나 보다.
자연스러운 손 돌림을 보아하니
할머니의 오랜 취미일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그래도 모처럼의 토요일인데
뽁뽁이와 시간을 보내기에는
조금은 소소하지 않나 싶어진다.
그렇게 이어진 고민,
곧 다가오는 연차에는 뭘 하면 좋을까.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일 동안 쭉 쉴 수 있으니까
이왕이면 평소에 가기 힘들었던 곳으로
놀러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몇 달 전부터 눈여겨보던 곳이 있다.
고양 스타필드에 있는 스포츠 몬스터와
잠실에서 열리는 서커스 공연,
큰맘 먹지 않으면 평생 안 갈 거 같으니
이번 휴일이 제격인듯하다.
콩콩이, 방방이, 덤블링.
동네마다 다르게 불리는 만큼
참 매력적인 놀이 기구인데,
애석하게도 나이 제한 때문에
초등학교 5학년 때를
마지막으로 탔던 것 같다.
그런데 스포츠 몬스터에서는
20대 후반인 사람이 타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니.
좋아, 금요일은 여기다.
그렇게 모든 체력을 쏟아붓고
토요일에는 편하게 앉아서
공연을 즐기면 완벽하겠다는 생각에,
아직 2주나 남았지만 벌써부터 설레온다.
어느덧 연차 당일.
계획했던 대로 금요일에는
콩콩이를 포함한 각종 스포츠를
두 시간가량 즐겼고,
토요일에는 영화에서만 보던
공중 그네 묘기와
몸이 자유자재로 꺾이는
신기한 사람도 봤다.
근데 뭐랄까,
일상과 다르게 너무 화려해서 그런지
현실감이 떨어진달까.
온몸이 뻐근하고 피곤한 걸 보면
최근에 따근따근하게
겪은 일이 맞는 것 같은데,
조금 생생한 꿈을 꿨다거나
혹은 아주 옛날에 경험한듯한
아득한 기억으로 머릿속을 맴돈다.
출근하기 하루 전.
새로운 한 주에 이질감 없이 적응하려면
일요일에는 최대한
평범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그리고 글도 쓴다.
특별할 것 없고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잘 살았다' 싶어지는 하루다.
지난번에 아파트 단지에서
마주친 뽁뽁이 할머니도
이런 느낌이셨으려나.
올록볼록한 뽁뽁이가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톡 하고 터질 때
손끝으로 전해지는 촉감이
할머니의 일상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었지도 모르지.
커피와 뽁뽁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몰입한 하루를 살게 하는
기특한 취미인 것 같다.
훗날 나는 커피 할머니로
불릴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평소에도 그랬듯이
원두의 고소한 향과
종이 위의 사각거림으로
지금 이 순간을 생생하게 채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