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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하나, 발걸음 둘

by 가담



만나는 장소나 뭘 먹을지 결정할 때는

상대방의 의견에 따라가는 편이지만,

어느 카페에 갈 것인지

정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꽤나 적극적인 사람이 된다.



가게의 분위기는 포근한지,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친구도

즐길 수 있는 음료가 있는지,

거기에 디저트 유무까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이왕이면 사장님이 직접 만든

부드러운 케이크가 있으면 좋겠다.



약속이 있을 때만 열심히 찾는 게 아니라

혼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러 갈 때에도

카페 찾기에 진심인 편이다.

좋은 카페에서 잠시나마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행복은 보장되니까.



희망 사항이 너무 많아서일까,

여태까지 마음에 꼭 드는

카페를 찾지 못했다.



동네에서 유명하거나

으리으리한 대저택 카페에 가도

어딘가 하나씩 부족한 느낌이다.

분위기가 좋으면 너무 비싸다거나,

맛도 있고 가격도 적당한데

취향과 거리가 먼 노래가 나오다든지.

좋아하지 않는 노래를

일방적으로 듣는 것은

어쩐지 힘든 일이다.



이번에는 기필코

숨은 보석 같은 공간을 찾아보겠노라며

지도 앱을 켜 집 주변에 있는

카페 목록을 하나씩 훑어본다.



여기도 가봤고,

저기도 가봤고...



동네를 벗어나거나

새롭게 오픈하지 않는 한

안 가본 카페를 찾는 것은 어려울듯하다.

그렇다면 이제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그럭저럭 괜찮았던 카페에 다시 가느냐,

혹은 예선에서부터 탈락했던

미지의 카페에 도전할 것인가.



갔던 곳을 또 가면 재미없으니

이번에는 모험을 택하기로 한다.



커피 3종, 에이드 4종, 티 1종

그리고 핫케이크가

메뉴판의 전부인 카페 발견.

집에서 조금 먼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메뉴가

다양하지 않다는 이유로

매번 지나쳤던 곳이다.

그래도 그것 빼고는 마음에 드니

한번 가보기로 한다.



음, 커피가 특출나게 맛있지는 않다.

그래도 다양한 식물로 푸릇푸릇한 분위기와

그에 어울리는 사장님의 선곡도 좋은 것 같다.

그럭저럭 카페 목록에 저장해둬야지.



그리고 몇 주 뒤.

어김없이 어디로 가야 할지

딜레마에 빠질 때쯤 다시 한번 다녀왔다.

이미 와 봤던 터라 별 고민 없이 주문을 끝내고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음료를 기다렸다.



"혹시 저번에 한번 오시지 않았어요?"



준비된 음료와 함께 테이블에 올려진

예상치 못한 사장님의 질문이다.

오, 어떻게 아셨지!



그러면서 쓰윽 내미시는 귤 하나.

사람은 둘인데 귤은 하나라 미안하다며

후다닥 카운터로 돌아가신다.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를 끝으로 카페를 나섰는데,

어쩐지 또 가고 싶어지는 카페다.



엄마 손을 잡고 들뜬 아이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음에 또 가자"라는 말을

연이어 했던 것 같다.



'저번에, 귤, 감사'

카페 매출을 올리는데

그다지 영향을 줄 것 같지 않은

단어의 조합으로 손님을 끌어당긴다.

사장님은 마케팅의 고수이신 걸까.



일상적인 단어에서 묻어 나오는

사장님의 세심함과 인간적인 모습이

발걸음을 움직이게 한다.

어쩌면 지금까지 완벽한 카페가 아니라

다정한 공간을 찾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 누구도 또 오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에 이끌리는 대로

조만간 또 들릴 것 같다.

이렇게 단골이 되어가는 건가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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