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길에 매번
건너가는 하천이 있는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데 있어
나름의 힐링 포인트다.
천을 따라 쭉 이어진 풀도 예쁘지만,
무엇보다도 눈에 들어오는 건
그 위를 헤엄치고 있는 오리.
회사에 입사하고 8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꾸준히 관찰해 본 바로는,
장마와 같이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매일같이 수영을 하는듯했다.
11월 끝자락쯤이었나.
영하권으로 떨어진다는 소식에
장롱 깊숙이 묵혀둔
패딩과 목도리 그리고 장갑까지
부랴부랴 꺼내 입었다.
얇은 재킷만 입고 다니다가
뜬금없이 맞이한 한겨울 날씨라 그런지,
귓바퀴가 아프게 느껴질 정도로
바람이 차게 느껴졌다.
쟤들은 배도 안 시려우나.
오리들은 평소와 같은 차림으로
물속에서 배를 질질 끄며
와이파이 모양의 물결을
만들고 다니느라 바쁘다.
만약 오늘 같은 날씨에
저 강에 들어가면 어떨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다가
괜히 더 추워지기만 했다.
사실 오리들도
발을 빼고 싶을 만큼 추운데
딱히 갈 곳이 없어서
괜찮은 척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가끔은 오리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도
의도적이지 않은 의심을 주고받을 때가 있다.
사회에서 만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관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알 거 다 아는 가까운 사이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곤 한다.
나의 카페인 치사량은 하루에 한 잔이다.
이마저도 커피를 매일 마시기에는
위에 무리가 갈까 봐 건너뛰는 날도 있는데,
상사는 매일같이 네 잔을 마신다.
그것도 물 없이 얼음 가득,
에스프레소 투 샷으로.
내가 커피를 좋아한다 한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루에 네 잔은 무리다.
오지랖이지만 상사의 건강과
수면의 질이 괜히 걱정된다.
언니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손맛에 익숙해져서인지,
아빠와는 다르게 매운 걸 잘 먹지 못하고
슴슴한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침밥을 먹을 때 국이 싱겁다는
아빠의 첫 한 마디로
정적이 깨질 때가 자주 있는데,
그때마다 우리 집 여자들은
이게 뭐가 싱겁냐고 한 소리 한다.
한 쪽에서 의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다른 한쪽에서도 의문을 품는 법.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버틸 수 있어요?"라거나,
"그래도 조금은 싱겁지 않아?"
와 같은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각자의 입장이 담긴 합리적인 의심이다.
아무래도 주관적인 문제라
맞고 틀리고의 정답은 없겠다만,
서로의 의심은 풀리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상대방을 이해해 보려고 시도는 해보지만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기준으로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리고서는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역시 아닌 건 아니라는
확고한 결론에 다다른다.
왠지 모를 찝찝함만 남기고 상황 종료.
이 중 승자는 아무도 없다.
어느덧 12월.
이제는 날씨가 추워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달력의 마지막 장이다.
오리들은 평소와 같이
보기만 해도 추워지는 강에서
시간을 보내기에 한창이다.
자세히 보니 얌전히
물 위를 떠다니는 게 아니라,
엉덩이를 치켜세우고
얼굴을 물속에 폭 담갔다 빼기까지 한다.
아, 쟤네는 원래 저러는구나.
애초에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춥다고 오리까지
추우라는 법은 없으니까.
나와는 다른 사람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면 될 것 같다.
상사는 카페인에 강한 사람이구나,
아빠는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구나 와 같이.
이렇게 오리에 대해서,
상사와 아빠에 대해서
그리고 나에 대해서까지
조금 더 알아가게 된다.
나 또한 누군가의 눈에
커피를 하루에 한 잔 마시고
슴슴한 맛을 꽤 좋아하는,
그런 사람으로 비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