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생일 축하해

by 가담


거의 30년을 붙어살다 보면
공식적으로 공표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지키게 되는
서로 간의 규칙이 몇 가지 생긴다.


우리 집에는 대표적으로
아침밥 같이 먹기가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거기에
추가적인 사항이 덧붙어졌다.


누군가의 생일일 경우,
아침밥을 먹기 전에
다 같이 축하 파티를 열 것.
엄마가 새벽부터 일어나 만든
정성스러운 아침상에
나이와 무관하게
듬성듬성 초가 꽂힌 케이크를
올려놓으면 준비 끝이다.


12월에는 생일 파티가
무려 두 번이나 있다.
아빠 한 번 그리고 나 한 번.
일주일 간격으로 케이크를
두 번이나 잘라야 한다.


우선 첫 주자는 아빠다.
엄마의 리듬 섞인
시-시-시-작을 호령으로
생일 축하 노래의 운을 뗐는데,
파티를 한 이래로 첫 불협화음이 생겼다.


"사랑하는 아빠의~"
"사랑하는 나의~"


문제의 구간은 노래의 하이라이트.
정확하게는 '나의'가 아니라
아빠의 이름 두 글자다.
범인은 아빠다.


뭐야, 생일인 사람도
같이 불러도 되는 거였어?


아빠가 노래를 함께
불렀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무엇보다도 꽤나 직설적인 가사에
동공이 확장되는 느낌이다.


분명 평소와 다를 거 없는
평범한 식탁이지만,
이상하게도 생일 주인공의 자격으로
자리에 앉으면 어쩐지 조금 민망스럽다.


생일 축하 노래가 끝나기까지 고작 30초.
쑥스러움과 고마운 마음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목소리를 제외한
온몸으로 표현하기에 바쁘다.


갈 곳 잃은 초점을
이리저리 굴려 보고,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다가,
어깨를 좌우로 흔들어도 본다.


여태껏 우리 집 생일자들은
주인공답게 노래를 부르지 않기도 했었고,
아무래도 생일인 사람의 이름을
가사의 일부로 넣어야 되다 보니
1인칭의 시점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빠를 보아하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네.


가족과 친구들,
심지어는 직장 동료들의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최고로 행복한 하루를 보내라며
행운을 빌어주는데,
생각해 보니 정작 내 생일 때는
나 자신에게 간단한 축하 인사
한 마디를 건넨 적이 없었다.
스스로에게 맛있는 음식이나
옷가지를 사주기는 했었지만,
축하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보상심리랄까.


나보다 아빠 생일이 먼저여서
참 다행이다 싶어진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하니,
이번 생일 때는 아빠처럼
가사를 제대로 틀려봐야겠다.
아빠 덕분에 내 생일을
축하해 주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나게 생겼다.


조금 많이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