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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버프

by 가담



1월 1일,
새해 카운트다운이 끝난 뒤
처음으로 맞이하는 아침은 유난히 바쁘다.
작년에서 올해로 넘어가는 꿈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고작 하룻밤 사이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초인적인 힘이 솟구친다.


이름하여 작심삼일.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지만
하루에 1/3씩 데미지 손상이 있기 때문에
연말 동안 미뤄뒀던 일 중에서
가장 귀찮았던 일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청소가 그렇다.
신년을 맞이하기 전에
시기 지난 물건이나
잡동사니를 정리하려 했건만,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결국 새로운 해가 떠버렸다.


12월의 단 하루를 위해 설치했던
크리스마스트리를 창고에 넣는 게 급선무다.
액자처럼 벽에 거는 형식이라
금방 정리할 줄 알았는데,
꼬불꼬불하게 엉겨있는 꼬마전구가
줄줄이 따라 올라와 방해한다.
평소였다면 꼬인 전선이
아주 귀찮게 느껴졌겠지만,
오늘만큼은 참을만하다.


다음으로는 작년에 쓰던 큼지막한 달력.
달력 제일 상단에 달려있는
원목 고정 바를 버릴지 말지 고민이다.
가지고 있어봤자 아무런 쓸모도 없겠지만,
그냥 버리자니 디자인이 너무 예쁘다.


에잇, 이왕 하는 거 확실히 하자고.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부터 쉽다는 말은
청소의 세계에서도 통하는듯하다.
달력을 시작으로 쓰레기 봉지가
가득 차기까지는 한순간이다.
먼지 쌓인 장식물과
몇 장의 이파리로 겨우 버티고 있는
시들시들한 식물도 그만 보내준다.


이번에는 옷 장 구석에 박혀있는
옷가지가 눈에 거슬린다.
나름 애착 옷이었는데
고작 일 년 손이 안 갔다고 버린다는 게
무자비한 건가 싶다가도,
결국 의류 수거함에 넣기로 마음먹는다.


1월 2일,
마음이 1/3 더 물렁해진 게 분명하다.
전날 밤에 와르르 꺼내놓은
지난 흔적들이 괜히 눈에 아른거린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원위치 시킬까.
아니야, 변덕 부리기 전에
해치워 버리는 편이 낫겠다.


터질듯한 쓰레기 봉지를
최대한 꾹꾹 눌러 담고
풀리지 않게끔 단단히 묶는다.
그리고 옷은 수거함으로 골인.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어쩌면 당장 내일이나
혹은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뜬금없이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늦장 부린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속이 아주 개운하다.


만약 12월 다음이
13월이었다면 어땠을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질질 끄는 겨울에 지쳐
전기장판으로 뜨끈해진 이불 속에
하루 종일 파묻혀 지내느라
치울 겨를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시작, 기대감 그리고 설렘.
숫자 1이 주는 특별함 덕분에
새해의 첫걸음을 조금은 과감히
그리고 한 결 가볍게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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