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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담 Jul 21. 2024

칭찬에 기댄 하루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꼭 운동하려고 한다. 거창하게는 아니고, 방바닥에서 영상을 보며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동작들로 딱 15분만. 세상에서 제일 긴 15분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에 비해 바라는 게 참 많다. 군살이 싹 빠지고 근육도 좀 붙으면 좋겠는데, 이것 참 쉽지 않다. 그래도 합리적인 욕심이었다. 분명 '일주일 만에'라든가 '무조건 빠짐'이라는 문구로 한껏 들뜨게 만들어놨으니까.

이 정도면 속은 게 분명하다. 운동을 시작한 지 어느덧 반년이 지났는데도 내 살들은 여전히 안녕하다. 포기해 버릴까.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으니, 의욕이 뚝 떨어진다.

"요즘 운동 열심히 하나 봐. 탄탄해진 거 같네."

민이의 말 한마디에 히죽히죽, 죽은 의지가 금세 살아났다.
그래, 대놓고 사기 칠 리가 없지. 다시 열심히 해보자고!

                                           *

나에겐 음흉한 면이 있다. 가능한 한 아주 조용히 일을 벌이는 편인데,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마찬가지다.
매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민이뿐이다. 그렇다고 민이에게 글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단지 쑥스러워서.
민이에 관해 쓴 날은 이실직고한다. 이번엔 너에 관한 글을 썼다고. 그때마다 민이는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했고, 그러면 나는 글을 내밀기보단 간략하게 말해주는 걸로 퉁쳤다.
최근엔 협상이 잘 안됐다. '나도' 읽어보고 싶다는 민이의 말에 완패해 버렸다. 내 비밀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나 볼 수 있는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게 미안했다.

누군가에게, 특히 글의 주역에게 내 생각이 잔뜩 들어간 글을 보여주는 건 마치 발가벗는 느낌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속마음까지 들켜버리는 것 같다.
글을 보여준 후 민이의 반응을 살폈다. 탁구대 위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상대의 서브를 주시하듯 아주 날카롭게. 다행히 공이 부드럽게 넘어왔다. 좋은 글을 보여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다.


                                           *


여느 때처럼 새로운 한 주가 찾아왔고, 그에 맞는 새로운 글을 써 내려갔다. 대개는 글의 첫 단락부터 막혀버린다. 적당한 단어가 생각이 안 나 괜히 부엌에 가서 물 한 모금 마신다거나, 어깨를 만지작 거리거리며 있는 힘껏 머리를 쥐어짜 낸다.
때마침 민이에게 전화가 왔다. 어찌나 반갑던지, 쓰던 글을 내동댕이치고 탁상 옆 침대로 기어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그리곤 평범한 대화를 나눈다. 지금은 뭘 하고 있고,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다는 둥 서로가 보지 못한 하루에 관해 얘기한다.  
"저번에 보여준 글 좋더라."    
근래 민이의 하루엔 내 글이 함께 했나 보다. 아침밥을 먹을 때 그리고 저녁밥을 먹을 때도 글을 읽고 또 읽었다고.

역시 가장 먼저 쑥스러움이 밀려온다. 그리곤 쑥스러움의 여파로 마음이 간질간질 해지는데, 기분 좋은 간지러움이다. 커피를 서너 잔 들이켠 것처럼 정신이 바짝 들고, 좋았다는 그 말을 반복적으로 듣고 싶어진다. 익히 들은 카페인의 부작용같이, 이날은 민이의 말을 되새기느라 밤잠을 설쳤다.     

                                           *

민이는 내 비밀을 알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니 민이의 말은 신빙성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마 높은 확률로 민이를 제외한 사람들은 나와 내 글에서 탄탄함과 감동을 찾지 못할 거다. 그저 평범한 체형에, 수많은 글 중 하나일 뿐. 뭐가 됐든 확실한 건 민이의 말대로 되고 싶어진다.  
어김없이 퇴근 후 팔다리를 열심히 흔들고, 자리에 앉아 글을 쓴다. 여전히 살들은 안녕하고, 쓸 단어가 생각나지 않지만 그래도 해볼 만하게 느껴진다. 민이의 말 한마디에 기대어 무사히 하루의 마침표를 찍는다.
 
민이는 좋은 전략가다. 그것도 칭찬에 아주 능한 전략가. 덕분에 칭찬받는 데 익숙해진다. 아니라며 손사래 치기보단 더 잘하고 싶은 마음과 그 마음에 응하게 되는 모습이 증거인 거 같다. 엄격한 기준을 낮추고 나 자신에게 잘하고 있다는 말을 건네며, 더딜지언정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게 된다.
지금껏 봐온 민이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길 바라니 민이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워 봐야겠다.

이렇게 또 칭찬하는 데 능숙해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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