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여름잠 09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담 May 05. 2024

다시 말하자면


세상에는 사랑이라는 말을 대신할
여러 문장들로 넘쳐난다.  
나는 너를 마시멜로우해라든지,
너는 나의 문학이야라든지.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빠와
맥주 한잔 기울이는 게 일상이다.
안주는 아빠표 요리로,
메뉴 선정은 요리사 마음이다.


지난주에는 오랜만에 칼질 좀 하라며
두툼한 스테이크 한 장을 구워주셨다.
거기에 곁들일 노릇한 콘치즈까지,
지금껏 먹어보지 못한 최고의 맛을
보여주겠다며 호언장담하신다.  
어떤 아줌마가 애들 간식으로 좋다며
블로그에 올린 레시피라나.
아빠 눈에는 내가 아직 애인 듯하다.


나는 주방 보조 역할이다.
우선 식탁에 수저와 젓가락
그리고 나이프까지 세팅을 하고,
아빠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도록
5분대기조로 기다린다.
스테이크 담을 그릇을 꺼낼 것,
아빠의 첫 명령이 떨어졌다.
주먹 쥔 두 손보다 약간 큰 덩어리를
가지런히 담기에 충분한 그릇으로 골랐는데,
성에 안 차는지 더 큰 걸로 달라 하신다.  
그리고선 혼잣말을 살짝 덧붙이셨다,
"예쁘게 담아줄 거야"라고.


이 넓적한 그릇에는 무엇이 담길까.
먼저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를 올리고,
아빠만의 비법 소스에,
애들 간식으로 딱인 콘치즈,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딸기가 올라갔다.
딸기 무더기 중 가장
새빨갛고 둥근 놈으로 골라
보기 좋게 세로로 얇게 자르셨다.
가구배치하듯 딸기 조각을
요리조리 놔보시다가,
결국 가장 깔끔하고 무난한
일렬 세우기로 마무리하신다.


짠-
아빠는 소맥, 나는 캔맥주.
유리잔과 캔이 부딪히는 소리는 둔탁하다.
그리고 우리가 나눈 그날의 대화도
그 소리만큼이나 꽤 둔탁했다.  


- 딸이랑 같이 밥 먹으니까 좋네.
- 나도 아빠랑 먹어서 좋네.


일렬로 줄 선 딸기와 흐리멍덩한 대화에서
사랑 비슷한 낱말을 발견한다.
나는 거기에 대한 답으로
깨끗이 비운 접시를 내보인다.
단언컨대 지금껏 먹어보지 못한
최고의 맛이었으니까.
다른 말들의 연속이었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다.


다시 말하자면,
저도 사랑해요 아빠!

이전 08화 또 다른 이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