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배불러."
밥 먹고, 후식 먹고, 배부르다고 투정 부리기. 민이는 이 포효를 배부름송이라고 부른다. 민이가 진작 그만 먹으라고 말렸지만, 그간 쌓인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으로 매번 적정선을 넘겨버린다. 평소보다 피자 한 조각을 더 먹는다거나, 한술 더 떠 인절미 빙수나 초코 프라페까지 손을 댄다.
가뜩이나 위도 작은 편인데 꾸역꾸역 들이밀어 대니 나름의 살 방도가 필요했을 터, 그중 하나가 배부름송일 거다. 하지만 그때면 이미 늦었다. 빵빵한 풍선 두 개쯤은 삼킨 듯한 팽창감은 기본이고, 거기에 비례해 온몸이 무거워진다. 인절미 맛도, 초코 맛도 느껴지지 않는 밍밍한 풍요, 한마디로 아주 기분 나쁜 배부름이다.
몇 차례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직감적으로 안다. 이 이상 먹으면 안 되겠거니 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직감을 무시한 채 식욕에 충실히 행동한다. 배부른 것도 그렇지만, 후회할 걸 알면서도 미련하게 먹어 치우는 모습이 제일 기분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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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유튜브를 튼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지하철을 기다릴 때, 그리고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기 전까지도. 그뿐만 아니라 길을 걸을 땐 노래를 듣고, 잠이 안 올 땐 간지럽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짧으면 60초, 길면 20분 내외인 영상들로 모든 틈을 꽉꽉 메꿔버린다.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길수록 본격적이다. 특히 잠들기 전 침대에서 뒹굴뒹굴할 때, 이때야말로 느긋하면서도 집중적으로 파고들 수 있다. 눈을 사로잡는 무엇이든 그 표적이 된다.
"도대체 뭘 봐야 이런 영상이 뜨는 거야?"
민이가 물었을 땐 코끼리에 관한 영상을 보고 있었다. 2m 깊이의 구덩이에 빠진 아기 코끼리를 구하려다 탈진해 버린 엄마 코끼리를 담은 영상이다. 동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코끼리를 찾아볼 만큼은 아니다. 단지 추천 영상 중 하나였고, 영상을 클릭했을 뿐.
그간 봐온 재생 목록엔 의문스러운 게 한둘이 아니다. 다친 치타의 사연과 궁금해해 본 적도 없던 비둘기의 출생 비밀까지. 아마 이런 무의미한 클릭들이 쌓여 지금의 알고리즘이 만들어졌을 테고, 그렇게 코끼리 영상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이 모든 건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러니까 침대에 누워 눈을 깜빡거리고 손가락을 움직였을 뿐인데 어느새 한 시간이 사라졌다. 분명 감동을 하기도 웃기도 했지만, 왠지 모를 찜찜함으로 마무리한다.
낮에 받은 스트레스에 대한 일종의 화풀이다. 펀치 기계를 세게 내리치는 걸 대신해 손가락으로 화면 스크롤을 공격적으로 내린다. 그러다가 자극적인 제목이 보이면 클릭하고 또 클릭하고. 반드시 봐야 할 것도, 특별하게 보고 싶은 주제도 아닌데 닥치는 대로 욱여넣는다.
아, 뭔지 알 것 같다. 딱 과식했을 때의 느낌이다. 마치 탈이라도 난 듯 손목이 뻐근하고 머리가 더부룩하다. 뭘 했다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을까. 별 소득 없는 투자에 묘한 죄책감이 밀려온다. 스트레스 풀려다 스트레스를 더 얻어가는 느낌, 기분이 더 나빠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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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한 해방감 때문인지 금요일은 주말보다도 10cm 정도 더 들뜬다. 아마 보통의 금요일이었다면 눈앞에 있는 피자 한 조각을 더 먹었을 테고, 이 기세를 몰아 디저트까지 해치웠을 거다. 그리고선 침대에 누워 시간 눈치 보지 않고 손이 가는 대로 유튜브를 봤겠지.
이번엔 적절히 틈을 남겨본다. 한 3cm 정도. 더 먹기보단 포크를 내려놓고, 오디오로 가득 채우기보단 조용히 눈을 감는다.
세상은 질량보존의 법칙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과식과 무분별한 오락으로 채우던 만족감의 간격을 다른 것으로 채워 넣는다. 더부룩함에 가려졌던 치즈의 고소함과 감자의 포슬포슬한 식감을 음미하고, 그간 미뤄온 고민에 대해 생각을 정리한다.
풍미 넘치고 적당한 포만감을 주는 한 끼와 스스로에 대한 고찰로 으쓱해진 어깨에 만족스러운 금요일을 보낸다.
"아, 잘 먹었다."
오늘은 배부름송을 부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