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늑하고 좋았던 나날들
이번에는 한국인은 나뿐이었다. 콘퍼런스 참여로 수업을 대신하는데 콘퍼런스 참여는 자유라고 했지만 학생들 대다수가 간다고 했기에 나도 엉겁결에 푸에블라에 가게 되었다. 말이 콘퍼런스지 사실 대부분 놀았다고 한다. 푸에블라는 종교적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라울 교수님의 강연을 통해 프리 히스패닉, 히스패닉의 차이와 멕시칸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이상하게 푸에블라에서 계속 라울 교수님과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라울 교수님이 내게 지식을 전수해 주셨다.
내가 멕시코와 스페인 간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그것이 최근의 역사라서 한국인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과연 그럴까. 그리고 게이인 그는 교수들 중에 호모포비아가 있지만 자신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고 미국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고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했다. 가톨릭 신자로 태어난 그는 딱히 믿음은 없지만 성당, 교회의 분위기가 좋아서 그곳에 간다고 했다. 그리고 멕시칸 특유의 교회와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유럽의 교회의 분위기는 다르다고 했다. 나중에 미국에 가려면 워싱턴을 가라고 했다. 워싱턴 사람들은 다소 다른 사람들에게 오픈되어 있기 때문에 외국인에게는 최적의 도시라고도 말했고 뉴욕은 아는 사람이 없는 한 힘들 것이라고도 말했다. 실제로 정말 내가 미국에 갔을 때 뉴욕이 그랬고 워싱턴이 정말 좋았다. 흘려들을 말은 정말 어디에도 없단 생각을 다시금 했다.
콘퍼런스 일부를 듣고 나서 자유시간이 주어졌을 때 나는 뭐할까 고민하다가 사파리를 택했다. 사파리에서 만난 동물들보다 거기서 만난 꼬마들이 인상적이었다. 대개 멕시칸 꼬마들은 내게 치노라고 하거나 하포네싸라고 했다. 한국인인 내게 중국인 혹은 일본인이라고 했던 것이다. 거기서 만났던 세바세바는 내 카메라로 나를 찍어주더니 같이 사진을 찍자며 동양인인 나를 신기해했다. 하긴 나도 어릴 적에 동물원에 갔을 때 외국인을 보면 신기해했지.
세바세바네 엄마 로지와도 이야기를 하다 친해져서 로지 엄마가 자신이 남편의 세컨드 와이프라고 말해줘서 순간 당황했지만 산 루이스 포토시에서 만났던 야빔도 그렇고, 로지도 그렇고 멕시칸은 참 진솔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여행지에서 만난 타인이라 오히려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일까. 같이 점심을 먹다가 세바세바가 같이 자기네 호텔로 가자고 졸랐고 나는 멕시칸 가족과 함께 티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멕시코는 알면 알수록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 우리나라보다 못 사는 나라가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고 하자, 멕시칸이 게을러서 그럴걸. 이라며 로지네 가족이 웃었다. 우리나라에 멕시코만큼 이렇게 잘 보존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이미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푸에블라에서의 기억이 유독 좋았던 건 우연히 만난 교수님과의 대화, 우연히 만난 현지인 가족과의 대화가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들렀던 이탈리안 컴퍼니 카페의 카페모카가 달달해서 테라스에 앉아 공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리운 푸에블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