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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Jan 14. 2019

친절한 남미씨. 버스 놓치고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봉사활동하러 가는 길, 버스의 종착지는 산 크리스토발?



몬테레이에서의 교환학생 생활이 끝났다. 평소에 철두철미하지 않고 닥치면 하는 성격은 남미 여행에서도 발현되었다. 11월 초에 비행기 티켓을 끊기 시작했다. 다구간으로. 12월 31일에 멕시코시티에서 출국해서 페루 리마에 입국하는 비행기 티켓을 시작으로 내 기나긴 남미 여행은 시작될 터였다. 그전에, 남들이 다 한다는 해외봉사활동을 하려고 신청해뒀었다. 내가 남미를 정말 따뜻한, 친절한 나라로 기억하지만 해외봉사활동에서의 기억은 그다지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왜 그 기억이 좋지 않은 기억인지는 봉사활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점과 그곳에서 일어났던 도난사건 등등, 사건사고가 참 많았다. 나의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지만 일단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확고했다.


해외 봉사활동도 봉사활동이지만 공정무역으로 유명한 치아파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멕시코 친구 Felipe와 Andrea의 도움으로 Chiapas 행 버스를 타기로 했다. 몬뗴레이에서 이민가방 비롯 짐을 부랴부랴 챙겨서 짐이 오버 차지되는 바람에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하는 불상사도 있었지만 멕시코 시티행 비행기를 탔다.  12월 초부터 하는 20일간의 거북이 구하기 봉사활동을 하기 전에 몬테레이에서 알게 된 felipe와 andrea가 나와 시간을 함께 보내주기로 했다.

마음씨 착한 천사들. IT 스타트업의 수장이었던 felipe는 로봇 대회에서 1등도 한 적이 있는 인재였고 andrea는 원래 일본에 관심이 많았지만 나중에 나와의 인연 덕분(이라고 해 두자.)에 한국으로 교환학생 오기도 했다. 그때 내가 취업을 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다크 다크 한 취준생이었다. 그게 제일 아쉽다. 어쨌든 멕시코시티에 와서 친구들과 함께 놀았다. 프리다 칼로 박물관 두 군데나 갔고 독특한 건축물도 구경하고 현지인 맛집에 가서 진짜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먹었다. 내 사랑 프리다 칼로 이야기는 조금 더 자세히 나중에 하는 걸로.

 모든 일일 술술 다 풀리는 듯싶더니 또 일이 터졌다. 친구네 집에서 도미노 피자를 시켜서 노닥거리다가 그만 차 시간을 놓치고 만 것이다. 


이미 네 시간 전에 예약을 해 둔 버스니까 그다음 시간 버스를 타면 되겠지 싶었다. 그러나 역시 멕시코는 한국과 달랐다. 마지막 남은 버스 회사가 내가 예약한 버스 회사와 다르다는 이유로 난 마지막 버스를 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딜을 해야 돼 딜을.' 


책에서 본 것은 있어서 가격 흥정을 하기로 했다. 350페소의 반값인 170페소에 해 주면 타겠다고 했더니 처음에는 고개를 젓는 게 아닌가. 그래서 타기 싫다고 가는 척을 했다. 붙잡겠지 라는 배짱 하나로 버스 따위 필요 없다는 식의 연기를 능청스레 했다. 그때 내 속은 이 버스 아니면 안 된다고 애절하게 외치고 있었지만 말이다. 역시나 버스 기사는 나를 붙잡고 나에게만 주는 특권이니 다른 회사 버스표를 꼭꼭 숨기라고 했다. 난 너무 기가 차서 왜냐고 또 반문을 했더니 절대로 들키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며 나를 태웠다. 


 내가 탄 버스는 첫 멕시칸 시외버스였는데 난 멕시칸 시외버스가 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지저분하고 답답하고 토할 것 같은 이 버스를 타고 배낭을 앞으로 꼭 메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내 옆의 울그락 불그락 아저씨는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곯아떨어지기 시작하셨다. 여전히 내 뒷자리 아저씨들은 시끌벅적하게 스페인어로 쏼라쏼라 떠들었고 너무 빨리 말하면 기본적인 것밖에 못 알아 듣는 나는 알아듣기 위해 노력하려다가 배낭만 부여잡고 잠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어느 순간 햇빛의 따사로움을 느끼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새벽 다섯 시쯤 해가 뜨고 있었는데 석양빛이 그러데이션을 이루고 있었다. 샤갈의 그림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샤갈이 그의 부인의 손을 잡으려고 애써 팔을 뻗을 때의 애절한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매해 소원을 빌기 위해 바닷가에서 보았던 일출들을 능가하는 일몰보다 더 아름다운 일출이었다. 일출을 감상하고 난 후의 벅찬 마음으로 다시 스르르 잠들었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고 눈을 떴더니 옆자리의 무서워 보였던 아저씨가 도착했다고 했다. 창밖은 정말 아름다웠다.


내가 봉사 활동하러 가는 곳이 이렇게 아름다울 리가 없는데 하면서 어쭙잖은 스페인어로 ‘aqui es tonala?" 하고 물어봤더니 아저씨는 고개를 막 내저었다. 세상에. 그럼 난 얼마나 더 왔단 말인가. 아저씨는 내게 막 뭐라 뭐라고 설명을 하는 듯했으나 난 단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버스기사가 분명히 토날라로 간다고 했는데 내가 온 곳은  산 크리스토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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