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추리소설 작가 요코미조 세이시(横溝正史)의 [혼진 살인사건(本陣殺人事件)]을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두 가지 점에서 눈길을 끕니다.
첫째, 밀실(密室, Locked Room)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밀실은 추리소설의 꽃이라고도 합니다.
추리소설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밀실 트릭은 큰 공헌을 합니다.
추리소설 황금기라고 하는 20세기 초 많은 작가들이 밀실에 도전했고, 밀실을 만들었고, 밀실의 비밀을 파헤쳤습니다.
추리소설이 대중문화로 발돋움을 하는 과정의 일이었습니다.
한동안 밀실은 영어권 작가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일찍이 서양문물을 수용해오던 일본은 추리소설 역시 도입이 빨랐습니다.
1920년대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를 시작으로 일본 추리소설의 물고가 트입니다.
패망 직후인 1946년 요코미조 세이지가 [혼진 살인사건]으로 데뷔를 합니다.
그것도 난이도 상급을 뜻하는 밀실 트릭에 도전했습니다.
밀실을 구성하는 요소로 거문고가 등장합니다.
어느 집에서 결혼식이 열립니다.
밤이 깊어집니다.
거문고가 울리면서 사건이 시작합니다.
거문고가 우는 소리에 사람들이 뛰쳐나갔습니다.
사건 현장은 밀실로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문을 따고 들어가자 피에 젖은 거문고가 보입니다.
여기까지가 소설 [혼진 살인사건]의 앞부분입니다.
밀실은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제약합니다.
벽에 가로막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합니다.
이때 한 인물이 나타납니다.
이 소설에서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중심으로 둘째, 긴다이치 코스케(金田一 耕助)의 등장입니다.
귀에 익은 이름이다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소년탐정 김전일(金田一)의 이름이 긴다이치 코스케에서 나옵니다.
김전일은 그의 손자로 소개됩니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일본 추리소설을 대표하는 탐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설 [혼진 살인사건]이 그의 첫 무대입니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여타 명탐정의 모습 그대로, 독자와 정보를 공유할 생각이 없습니다.
단서를 보고도 무심한 척 고개를 돌리는가 하면, 주변 인물이 애간장에 속 타도록 방치합니다.
사건의 결말, 그에 따른 후광은 모두 긴다이치 코스케의 몫입니다.
그의 추리에 밀실의 트릭이 벗겨지고 뜻밖의 인물이 범인으로 지목됩니다.
진상이 밝혀지자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소설 [혼진 살인사건]에서 고토, 거문고가 주요 소재입니다.
거문고가 울면서 사건이 일어나고 울음을 그치자 수수께끼가 앞을 막습니다.
거문고로 사건의 진상이 풀리고 거문고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일본에도 거문고가 있나 했습니다.
알아보니 일본의 고토(箏)라는 악기를 거문고로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고토는 중국의 현악기 쟁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의 고토는 술대로 타는 거문고와 달리 손톱 모양의 쯔메(つめ)를 이용해 연주합니다.
소설 [혼진 살인사건]은 쯔메(つめ)를 깍지로 번역해 실었습니다.
읽을 기회가 있다면 거문고와 까지를 ‘고토와 쯔메’로 바꾸어 떠올리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합니다.
고토를 가야금과 비슷한 악기라고 보는 경향과 달리 소설 [혼진 살인사건]에서는 거문고로 풀이를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궁금합니다.
이 책 이전 [혼징살인사건] 제목으로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책도 거문고라고 한 것으로 보아 조율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거문고와 고토가 다른 악기임에도 제대로 된 언급 없이 거문고 표기를 한 것은 정식 번역본 취지를 퇴색하게 합니다.
소설 [혼진 살인사건]에서 하나 더 강조할 것이 있습니다.
이 작품 전후로 일본 본격(本格) 추리소설의 장이 열립니다.
앞서 언급한 영미권 추리소설 황금기와 비슷한 맥락으로 보면 됩니다.
일본 본격 추리소설은 얼마 뒤 일본 사회파(社會派) 추리소설에 주도권을 빼앗기며 오랫동안 부진을 면치 못합니다.
20세기 말 신본격(新本格) 추리소설 물결이 일면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습니다.
본격에서 신본격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소설 [혼진 살인사건]의 가치는 변함없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고토 연주곡을 하나 들었으면 합니다.
일본의 고토 앙상블 소에몬(箏衛門)이 2012년 발표한 2집 [其ノ弐]에서 ‘絵空箏’를 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