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행동에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참고인 모두 특정 행동을 해서 주의를 끌었습니다. 저들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아니 왜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살인사건에서 진술 번복은 흔한 일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목숨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유로 그들은 그렇게 행동했던 것일까?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앞서 나온 가능성과 이득, 이건 사실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입증 가능한 수준까지 검토를 마쳤습니다. 이에 반해 번복은 상대적인 상황입니다. 여기에 의도가 개입되면 문제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원론적으로 번복은 말입니다.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번 경우 시어머니, 남편, 친구, 편의점 사장의 말을 중심으로 검토와 분석을 했습니다. 이 와중에 번복이라는 변수가 끼어든 거죠. 변수로 인한 가능성과 이득의 재검토가 불가피했습니다. 번복이 조사에 영향을 끼쳤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랬던 것입니다.
다시 번복의 주체를 참고인 각자로 상정했습니다. 개개인으로 나눠 분류했고, 가능성이나 이득 또한 같은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이 사건 범인은 처음부터 개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모르게 말입니다. 한 개인이 모든 것을 준비하고 실행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번복이라는 변수를 특정 누군가가 기획했고 거기에 맞춰 실행한 특정 누군가가 있다면, 상황은 어떻게 바뀌는가? 이번 경우에 동시다발적으로 번복이 일어났습니다. 마치 짜고 친 것처럼 말이죠. 확률적으로 이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으면 적다고 할 수 있는 참고인 네 명 모두 진술 번복하는 경우가 과연 이전에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번복은 일어난 일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어떤 내용이며 상황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되짚어 보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자기 진술에 보태거나 변명하는 투가 아닌,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번복이 아니었던 거죠. 누군가를 향해 네가 잘못했고 그래서 의심스러워, 손가락질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시어머니의 번복은 지속적인 거짓말이었습니다. 되풀이되면서 의아심을 자아냈죠. 이에 대해 앞서 누군가를 옹호하는 행위라고 풀이했습니다. 누군가 죄를 덮으려 한 것이다, 이것을 이렇게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인이 죄를 덮어 쓰려한 것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이 경우 누군가는 본인이었던 것이 됩니다. 지속적인 거짓말은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자기 잡아가라는 몸짓이었던 거죠. 시어머니 범행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입니다. 어쩌면 사건 초기부터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얼토당토않게 털어놓았던 평소 피해자와 관계는 얼른 본인을 잡아가 달라는 신호였을 수 있습니다. 행동에는 의미가 있다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시어머니 거짓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말 그대로 자기 잡아가 달라는 의미? 자기 잡혀가 누군가 살리겠다는 의미?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가 범인이니 그 사람 잡아가라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얽혀있는 참고인 관계에 대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어머니의 일관된 행동, 피해자 며느리와 관계, 아들과 관계, 주변인과 관계. 본인 잡아가라는 신호였다면, 실타래의 끝을 쥐고 있는 사람 역시 본인이라고 봐야 할까요? 시어머니의 일관된 행동에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어머니는 사건 초기부터 눈에 띄는 거짓말을 일관되게 유지했습니다. 관계 속에 실마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짓말과 관계, 시어머니 진술의 시작점이고 끝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시어머니는 이 사건 해결을 위한 열쇠였던 거죠. 번복, 거짓말, 관계는 한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도달했을 때, 외국 사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었으니까 말이죠. 뜬금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웬 외국 사례? 들어보시면 수긍이 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재작년이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연속 살인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확인한 것만 여덟 건이라고 했습니다. 밝혀지지 않은 게 더 있지 않을까 하는데,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보고서에 나와 있습니다. 당국에서 난처했던 것은 여덟 건 살인 사건 수법이 모두 동일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피해자 간의 연관성을 찾지 못했습니다. 연령, 성별, 직업, 지역 등 연결되는 부분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적 증거로 동일범 소행이라는 추정이 가능했지만, 정작 부차적이라 할 수 있는 정황 증거에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조사가 지지부진했고요. 반사작용으로 동일범일까 하는 점에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건은 뜻밖의 상황이 개입하면서 해결되었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술집에서 들은 얘기를 경찰에 알렸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그것 봐, 할 수 있다고 했잖아. 내가 뭐라고 했어. 분명 가능하다고 했어, 안 했어? 사람만큼 조정 쉬운 동물이 없다는 말, 이게 믿겠지? 그냥 몇 마디면 좀비가 되어 버리거든. 그래, 특정한 사람 필요 없어. 처음 보는 사람 그냥 가서 명령을 내리는 거야. 저기 보이는 사람 그렇게 죽이라고 말이야. 그럼 그렇게 따른다 말이야. 내가 누군지 기억 못 하는 건 물론, 자기가 한 일도 기억하지 못해. 당하는 자도 아무 관련 없는 자지. 내가 그랬잖아, 내가 하면 완전범죄 가능하다고. 응? 괜찮아. 이렇게 떠든다고 누가 눈치채겠어? 채면 어때, 그럼 내 실험이 성공했다는 걸 만방에 알리는 거니 손해 보는 건 아니잖아. 그거? 여덟이라고 하지만 스물이 넘지, 그럼 충분히 넘고말고.’ 이런 얘기를 듣고 경찰에 알렸다는 것도 대단하죠. 미심쩍기는 했지만, 일단 조사를 했고 거기서 범인을 검거했던 것입니다. 체포 당시 범인의 일갈이 흥미롭습니다. ‘실험이 성공했다는 것을 만방에 알리노라.’ 떠들썩했던 거 다들 기억하실 것입니다. 특별 회람 자료로 배포하기도 했죠. 노르웨이 사건에서 범인은 조종자로 여려 명의 피의자를 만들어냈습니다. 마치 교향악단 지휘자 같이 역할을 부여하고, 시간대를 정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 발자국 떨어져 그걸 즐겼습니다. 해결이 우습기는 했지만, 사건 자체 잔인성과 익명성 그리고 의외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준이었습니다.
사건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번복, 거짓말, 관계를 주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노르웨이 사건과 조건에서 부합하지 않습니다. 지휘자가 눈 밖에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남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는 참고인이 제한되었다고 결론 내린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개인 한 사람의 범행이었다는 식으로 흘러갔습니다. 개인 각자의 책임으로 돌렸던 것입니다. 검토하면서 번복이라는 변수가 내내 거슬렸습니다. 솔직히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사건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어느 것도 말입니다. 왜라는 질문을 계속 던졌습니다. 번복은 조사에 번번이 방해를 놓았습니다. 진술이 쌓였지만, 사상누각과 다른 바 없었습니다. 다시 언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행동에는 의미가 있다. 번복에는 의미가 분명 있었습니다.
시어머니 번복을 자기 잡아가라는 신호라고 해석했습니다. 남편의 번복은 무슨 의미였을까 생각했습니다. 시어머니, 즉 자기 어머니를 향한 남편의 행위 역시 자기 잡아가라는 신호였을까요? 그럼 범인이 둘이니 공범이었다는 뜻일까요? 친구 번복은 무엇이라고 봐야 할지요? 이미 알고 있었다, 믿을 수 있을까요? 일기 중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이 뒤늦게, 참고인 죄다 번복하고 있는 와중에 기억났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편의점 사장 경우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분은 또 왜 그때서야 진술했던 것일까요? 거슬렸습니다. 조사 방향도 그렇고, 번복에 휩쓸리는 것도 못마땅했습니다.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개개인으로 접근해 결론이 나지 않는다면, 둘 이상을 하나로 보는 건 어떤 결과로 나타날까? 시어머니와 남편이 각자가 아니라, 한 뭉텅이라면? 나아가 남편과 친구 사이에도 관련성이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을 품었습니다. 연결해 편의점 사장 역시 무엇과 누구와 연결된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가 아닌 여럿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 이상이었습니다, 접촉으로 관계가 생겼고 거기서 지침이 나온 것입니다. 진술 번복이 대표적입니다. 조사를 방해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수 있고, 반대로 조사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생각의 반영일 수 있습니다.
둘 이상의 행위는 조사에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가능성, 이득 두 가지에 번복이 추가되면서 일이 배로 늘어났던 것입니다. 게다가 번복은 거짓말일 수 있다는 의심을 품어야 했기에,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앞서 지휘자 얘기를 했습니다. 둘 이상의 행위일 수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둘을 섞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둘 이상의 행위에 지휘자가 있다는 식으로 말이죠. 누군가 뒤에서 사건을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개개인의 행위로 보기에 이 사건은 변수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여기에 지휘자 개념을 도입해보겠습니다. 사건 전체에 연루된 사람입니다.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피해자 살인과 직접 연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휘자는 독재자가 되기도 합니다. 지휘자는 명령 내리는 사람입니다. 지휘자는 악기를 들지 않습니다. 지휘자는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휘자는 각본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휘자는 실패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지휘자의 손짓은 명령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참고인 일련의 행위를 지휘자 연출이라고 보는 게 가능할 수 있다. 특정 참고인이 지휘자가 되면서, 역할이 정해집니다. 기획을 하고 계획을 짭니다. 배역을 확정해 대본을 줍니다. 이제 판은 배역을 맡은 인물 위주로 돌아갑니다. 지휘자는 뒤로 빠집니다. 맘에 들지 않을 때나, 각본을 수정해야 할 때 빼고 개입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관심에서 멀어지고,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관망하면 되는 것입니다. 피해자는 드라마 배역 중 하나였습니다. 지휘자 각본에 따라 진행되었습니다. 단 하나만 빼놓고 말이죠. 지휘자도 배역 맡은 사람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이 사건 주요 인물은 지휘자 포함 세 명이었습니다. 자칫 자기도 모르게 역할 맡을 뻔한 사람이 한 명 있었고요. 알리바이가 증명돼 드라마에서 빠지게 된 것입니다. 드라마를 해체해 보겠습니다. 드라마에서 빠진 한 명을 먼저 언급하겠습니다. 편의점 사장은 당일 사건 시간대에 일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여부는 CCTV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조사 대상에서 빠지는 게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심쩍은 행동으로 주목을 끌었습니다. 진술 번복을 했던 것입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조사 선상에서 멀어져 있는데 굳이 번복을 해야 했는지 의아했습니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떠올랐습니다. 번복이 아니라, 힘들게 진실을 얘기한 거라면. 피해자는 일기에 남편 집착이 도를 넘었다, 시어머니와 다를 바 없다고 적었습니다. 편의점 사장 말과 부합하는 내용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왜 뒤늦게 진술을 바꾸었는지 그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확대해 편의점 사장은 이 사건 전반적으로 거짓말한 게 없는 것으로 밝혀집니다.
따라서 이 사건 참고인은 시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친구, 이렇게 세 명으로 좁혀집니다. 세 사람 중 한 명이 지휘자인 것입니다. 지휘자 아래 하나 이상이 움직여 살인을 저질렀고, 거짓말을 거듭했습니다. 연관성에 대해 검토하겠습니다. 시어머니와 남편 관계는 이미 공개된 것이고, 시어머니와 친구 관계에 대해서는 밝혀진 내용이 없습니다. 남편과 친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어머니는 처음부터 거짓말로 일관했습니다. 아니었던 것을 있다는 식으로 진술했던 거죠. 없던 것이었습니다, 애초부터 없던 걸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알면서도 그렇게 한 것이다,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한 것이다,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다들 속을 거로 생각했던 것이다, 안 되는 줄 알았지만 고육지책이었다, 다 떠나 어떤 역할이었던 것일까요? 지휘자였을까요? 아니면 연기자였을까요? 이 사건에서 시어머니는 능동적인 인물이었던 걸까요? 수동적인 인물이었던 걸까요? 이것에 대해 먼저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어머니와 연결된 인물로 남편과 피해자가 있습니다. 피해자는 늘 을 입장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인과 참고인 진술, 증거물인 일기 모두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남편은 자신을 마마보이라고 했습니다. 시어머니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시어머니의 일관된 거짓말, 죄를 뒤집어쓰겠다는 행위로 보았습니다. 누군가를 보호하려 했다고 생각했던 거죠. 이건 시어머니의 본인 의지를 반영합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실천 주체인 거죠. 이러면 대상인 남편은 여전히 일방적으로 보호받는 입장이 됩니다. 본능적으로 남편을 감싸는 시어머니, 그 그늘 속에 들어가 있는 남편. 이런 그림이 됩니다.
남편 번복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시어머니 바람과 달리 도리어 시어머니를 공격하고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남편은 우리에게 시어머니를 지목했던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남편을 위해 죄를 뒤집어쓰려 했고, 이에 반해 남편은 시어머니가 범인이라고 진술을 번복하면서 알렸던 거죠. 남편의 행동을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요? 시어머니 작전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신빙성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어머니 진술은 믿을 게 못 된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계속된 거짓말이 전체를 믿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시어머니 진술이 거짓으로 좁혀집니다. 본인이 범인이다, 이 의도 역시 거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감싸려는 의도로 그런 행위를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누군가는 남편으로 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으로 시어머니 본인은 범인이 아니게 됩니다. 죄다 거짓이라는 전제를 깔고서 말입니다. 범인이 아닌데 범인인 척 한 이유는? 거짓말을 바탕으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정말 범인으로 체포되길 원했던 것일까요? 그저 조사 방해하기 위한 행동에 불과했을까요? 피해자와 일방적인 관계, 남편과 직접적인 관계, 시어머니는 어디에 더 무게를 두었을까요?
당연히 남편일 것입니다. 앞서 시어머니는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럼 둘이 남습니다. 남편과 친구, 이렇게 말이죠. 원론으로 돌아가서 시어머니가 지휘자였는가? 시어머니는 범인이 아니기 때문에 지휘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지휘자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어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 지휘를 내리고 역할도 부여해야 하죠. 시어머니 첫 진술은 거짓말로 밝혀졌습니다. 이렇게 패가 공개된 경우, 작전 변경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전술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상대가 패를 알고 있는데, 그걸 계속 유지한다? 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술 실패였던 것일까요? 큰 그림 속 전술 운영이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전술 변화를 한 게 그거였던 것 아니었을까요? 시어머니 첫 진술은 본인 의지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게 서로 도움 될 거로 생각했던 거죠. 본인이 사건과 무관하다는 점을 알리려 했던 거고, 피해자와 남편도 화목한 가정이었다는 걸 그렇게 간접적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전술은 금방 노출되고 말았습니다. 보통 이러면 패를 버리는 게 상책이겠죠. 시어머니는 다시 그 패를 내밀었던 것입니다. 더 보강해서 말이죠. 일반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습니다. 거짓말이 들통났다는 걸 알면서도 거짓말을 거듭했으니 말입니다. 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휘자 개입이 있었지만, 전술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지시를, 의심을 더 살 수 있는 그런 행동을 굳이 받아들였던 건 서로 특별한 관계라는 걸 시사합니다. 둘은 남다른 관계로 상식이 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시어머니와 지휘자는 특별한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어머니와 그런 관계는 남편이 유일합니다.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지시 내린 인물입니다. 처음 했던 거짓말을 고수하라고 했던 인물입니다. 시어머니 거짓말을 누군가 감싸려 했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혹은 본인에게 의심이 쏠리게 하려는 작전이라고도 했습니다. 남편은 그런 이유로 시어머니에게 지시를 내렸던 것입니다.
한 가지 더. 남편의 진술 번복 말입니다. 남편의 진술이 향한 사람을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어머니는 자발적으로 본인을, 남편은 의식적으로 시어머니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 진술은 거짓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남편 진술은 믿을 만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어머니에게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 사람이 남편이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번복으로 같은 곳을 가리켰습니다. 이 역시 거짓으로 거짓을 덮으려 했던 행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림이 확실해집니다. 사건이 일어난 뒤 첫 진술이 이루어집니다. 남편은 지휘자로 시어머니에게 지시를 내렸던 것입니다. 처음 진술 그대로 밀고 갈 것을 지시했습니다. 시어머니에게 거부권이 없었을 테지요. 알든 모르든 시키는 대로 했을 것입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작전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화살은 시어머니를 향했죠. 남편은 자연스럽게 제삼자로 물러납니다. 시어머니가 그 짐을 대신 집니다. 아마도 기꺼이 받아들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금도 진술이 변함없는 것으로 봤을 때 말입니다. 남편은 지휘자였던 것입니다. 전체 사건을 꾸민 사람이 남편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살인을 한 것도 남편이었을까요? 여기에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지휘자로서 사건 당일 동선이 완전히 공개된 상태라는 점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피를 묻히는 사람이 동선을 노출한다?
다들 아시겠지만, 초기 남편 의심을 거두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패를 뻔히 드러냈던 것입니다. 남편은 시어머니를 이용해 자신의 의심을 감추려 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피해자 가해 역시 이런 수를 쓴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편 알리바이는 처음부터 경찰 손에 들어왔습니다. 시어머니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편의점 사장은 CCTV 도움을 받았죠.
한 사람이 남습니다. 친구 알리바이를 상세하게 검토한 적이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진술 확인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애당초 친구를 사건에서 배제했던 거죠.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오후 세 시였다고 얘기했던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혼자 있고 싶다, 그래서 물러났다는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아지트를 피해자와 공유했던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피해자 비밀을 공유했다는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사건 당일 피해자와 함께 있었다고 밝혀진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동시에 참고인 중 가장 조사가 느슨했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마치 홀린 듯 그랬던 것입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사건 당시로 돌아가겠습니다. 피해자와 친구가 아지트에 앉아있습니다.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합니다. 아지트를 떠납니다. 그때 시간이 세 시였습니다. 아지트 가까이 있었던 시어머니, 역시 근처에서 위치 확인된 남편, 그리고 친구. 모두 당시 근방에 있었던 것입니다. 친구가 피해자를 죽인 게 사실이라면, 이후 상황은 명확해집니다. 그렇죠, 여기서도 지휘자가 큰 역할을 맡습니다. 연출가이니까요. 지휘자라고 한 남편과 친구 관계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친구 진술 속에 답이 있었습니다.
전제, 친구가 피해자를 살인합니다.
다음, 무관한 듯 진술합니다.
다음, 남편을 만난 적이 있다고 인정합니다.
다음, 눈치채고 있었다고 진술 번복합니다.
먼저 친구에게 이 사건은 남 일이었던 것입니다. 본인 걱정이 우선이었습니다. 얼핏 모르는 사람 얘기하는 듯했습니다. 그 뒤 일이 하나 발생합니다. 예기치 못한 반응을 보였던 것입니다. 아쉽게도 이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죠. 남편은 친구가 집으로 찾아왔다고 진술했습니다. 이어 친구는 확인을 요구하자 당황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경황이 없어 깜빡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피해자에 대해 충분히 인식했던 참고인이 관련된 일을, 그 상황에서 까먹는 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휘자가 연출한 것이라면, 당황했다는 건 뜻밖의 상황을 의미합니다. 남편과 친구 관계를 재정립해야 순서가 맞을 것입니다. 일기를 바탕으로, 남편은 일기 이전 뭔가 눈치채고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집착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남편의 행동 변화와 친구가 눈치챘다고 하는 시점이 일기 등장 이전, 즉 삼 개월 전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남편과 친구가 피해자 집에서 만났던 때 역시 그쯤이라는 점입니다. 우연히 말입니다. 남편과 친구는 사건 이전 맺어진 관계였습니다. 둘의 진술에서 그것이 드러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연인 관계였다고 하겠습니다. 친구는 피해자, 즉 아내 변화에 대해 얘기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남편은 반대급부인지, 자격지심인지 피해자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기를 엿봅니다.
둘의 관계를 파악했으니 동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지휘자가 등장합니다. 지휘자로 남편은 전략을 짜고, 전술을 내려 보냅니다.
첫째, 남편과 친구는 모르는 사이이다.
둘째, 시어머니는 통제 가능하니 상황에 맞춰 조종한다.
셋째, 각본에 맞춰 준비한다.
넷째, 각자 진술한다.
다섯째, 추후 행동은 지휘자 통제에 따른다.
친구가 범행을 저지릅니다. 주위에 있던 남편도 계획에 따라 행동합니다. 남편과 친구는 여전히 남남이어야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초반 거짓말로 본인 의심을 지우려 합니다. 남편은 미적지근한 태도로 상황을 주시합니다. 친구 역시 지휘자 지시에 따라 행동합니다. 상황 판단이 끝난 남편은 배우들에게 역할을 부여합니다. 시어머니에게 이전 태도를 유지하라고 합니다. 시어머니를 거짓말쟁이로 만들려 작정했던 것입니다. 시어머니 본인 혐의를 감추려는 시도로 보이게끔, 그렇게 행동하도록 명령을 하달한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알면서 거부할 수 없습니다. 아들의 지시였으니까 말입니다. 시어머니에게 아들은 마마보이이면서 동시에 남편 대리였지 않았나 싶습니다. 명령 내리는 사람이 시어머니가 아니라 남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소리 없이 지시에 복종해야 했죠. 남편은 잔인하게도 시어머니 의심을 굳히려 했습니다. 본인 어머니에게 화살을 돌렸던 것입니다. 눈길을 의식적으로 그곳에 향하게 했습니다. 본인이 빠져나가기 위해 어머니를 희생양 삼은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본인과 친구 안위를 위해 시어머니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려 했습니다.
친구는 남편 각본에 충실히 따랐습니다. 피해자를 죽인 뒤 슬픔에 빠진 역할을 수행했고, 뒤늦게 일기를 끄집어내어 동정심을 유발했고 피해자의 외도가 문제였다는 점을 부각했습니다. 친구 연기에 다들 속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휘자와 연기자는 한 가지 실수를 범하고 맙니다. 잘 기획하고 연출한 드라마였지만, 한 군데 균열로 있었습니다. 여러 번 검토했을 텐데 그걸 잡아내지 못했다는 건 각본에 없었다는 뜻일 것입니다.
남편은 초기 진술에서 특별한 일이 있었냐는 물음에 친구가 집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무의식 중에 나온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친구는 확인 요청에 뜻밖의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걸 묻고,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냐는 투였습니다. 각본에 없는 내용이었기에 쉽게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지휘자 전술에 의거 서로 모르는 사이였어야 했는데, 이에 배치되는 상황이 펼쳐진 것입니다. 이 사건 유일하게 감정 동요가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이 한 가지 빼고 드라마가 잘 진행되었고, 주어진 대본에 다들 충실히 맡은 바 임했습니다. 무탈하게 완성될 수 있었는데, 답변 하나가 상황을 뒤바꾸었던 것입니다.
친구는 진술에서 일기 내용 눈치챈 건 세 달 전, 일기 본 건 두 달 전이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일기 훔쳐본 건 석 달 전이었습니다. 시기에 대해 검토하던 와중 남편과 친구 사이 삐끗했던 진술이 떠올랐습니다. 결국 범인이 친구였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실행자가 친구였지만, 계획자는 남편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시어머니는 동조자 역할이었고요. 편의점 사장은 참고인으로 역할을 다했으며, 이 사건에서 유일하게 거짓말하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일기 속 그 사람을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남편에게 전해졌고, 그러면서 일이 커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피해자를 걸림돌로, 친구를 돌파구로 생각했을 수 있죠. 본인을 평생 옹호해 온 시어머니, 새로운 짝으로 친구, 걸림돌인 피해자, 이를 바탕으로 각본을 짰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확실한 것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무의식 중에 나온 실수였을 수 있고, 아니면 도발이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분명한 건 각본에 없었을 겁니다. 친구는 그때 정말 놀란 모습이었습니다. 이상입니다. 산책로 살인사건 결말이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