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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Jul 01. 2019

자기 비하 개그를 그만둔 이유

스스로에게 무례했던 과거

  나에게점차 사라지고 있는 언어 습관을 꼽자면 자기 비하 개그를 하는 것이다.

  자기 비하 개그를 자주 했었다. 그런 개그를 좋아했던 이유는 남을 개그로 대상화하는 것은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으니까, 가장 ‘안전한’ 나 자신을 희화화하는 게 편했기 때문이다.

   또한 약간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포지션을 취함으로써 남들에게 모나지 않고자 하는 무의식도 작용을 했던 것 같다. 어쩌다 나의 자기 비하 개그가 웃음을 줘서 좋은 반응을 얻을 땐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어느새부턴가 나의 개그가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상황이 안 좋게 풀렸을 때 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라고 농담하는 것을 과연 나는 타인에게 말할 수 있는가?

  “네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라는 말로 바꾸어 보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나로서는 입에 담기 힘든 말이다. 타인에게는 무례할 수 있는 말을  왜 나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편하게 해왔던 것인가. 그런 말을 개그랍시고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 조금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또, 최근 들어 관계에서는 사랑받는 것보다 존중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다. 과거의 나는 남들에게 사랑받는 것만을 중요한 문제로 삼았다. 유머로 호감을 얻고자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남에게 불쾌감을 주고 싶지 않아 싫은 소리도 하지 않았고, 그저 친구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주며 잘 어울리는 것에 기뻐했다. 하지만 나를 좋아해 마지 않는 친구들이 나를 존중해주지 않을 때, 과연 이들에게 호감을 사는 것이 중요한 일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또, 왜 나는 사랑을 ‘받아야 할’ 위치에 스스로를 놓았던가. 관계의 결정권자는 그들이며, 나는 그들의 평가를 받고 선택되는 구조를 자처한 걸까. 애정을 갈구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사랑을 베풀고 서로가 서로를 아껴주었다면 더 좋은 관계를 맺지 않았을까.


  존엄성보다 상위에 있는 것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관계에 있어서 존중하고 존중받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걸. 아무리 그들이 나를 사랑해주어도, 존중이 빠진 사랑은 나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걸.



  타인에게 재밌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타인에게 매력을 어필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사랑을 받으려는 욕구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레 자기 비하 개그도 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시작했다.



  여전히 자기 비하 개그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의도치 않게 공격할 위험에서 자유로우며, 잘난 체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호감을 줄 수 있다. 적당한 수준의 자기 비하는 친근감과 인간미를 준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가끔 자기 비하 개그를 하곤 한다. 하지만 타인의 호감을 갈구하며, 혹은 나 자신의 존엄을 해치면서까지 스스로를 유희적 대상화하지 않기로 했다. 유쾌한 웃음 아래 상처 받고 있는 나를 외면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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