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의 그림을 좋아한다. 마티스의 생애라던가, 심오한 작품 해석 등은 나는 모른다. 그저 그가 좋은 이유는 원색을 너무나도 자유자재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마티스보다 원색을 잘 활용하는 화가를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원색적인 빨강에 강렬한 파랑을 더할 수 있는 과감함과, 그럼에도 촌스럽지 않은 고상함을 보고 있자면 경외감마저 든다. 마티스는 그 색들을 사용하는 데 일말의 두려움도 없었을까, 그에게는 확신뿐이었을까. 문득 궁금증이 인다.
원색은 나에게 조금은 두려운 존재다. 의도치 않은 '패션 테러리스트'가 되기 싫어서, 혹은 남들의 눈에 모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것은 나를 채도가 낮은 옷들만 잔뜩 사들이게 만들었다. 나의 옷장은, 그 두려움의 살아있는 방증이다.
작년 겨울에 색종이를 보는 듯한 강렬한 원색에 반해 초록색 반팔 티를 샀다. 올해 옷장을 정리하면서 그 티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맘에 입어봤다. 근데 웬걸, 유치 찬란한 색상은 너무나 촌스러워 보였다. 필사적으로 다른 옷과 매치를 해보았지만, 도저히 구제할 수 없었다. 차라리 무채색 옷을 살걸, 집에서 입는 옷만 한 벌 더 늘었네. 왜 이걸 샀을지 모를 과거의 나를 원망했다.
그 찰나, 이 옷이라면 어울리지 않을까 싶어 같이 매치를 해봤다. 보통 전체적으로 무난한 색상에 원색으로 포인트만 살짝 주라고 하지 않던가. 나의 진회색 플리스가 진가를 발휘하는 날이었다. 아, 내가 원한 것은 이런 느낌이었어. 역시 선인들의 말은 진리였다. 원색을 살짝 사용하니 평소에는 칙칙했던 플리스가 되살아났다. 원색의 유치함이 오히려 산뜻함과 귀여운 느낌을 주는 듯했다. 그래, 역시 사길 잘했어.
비록 이 원색의 티는 그 플리스랑'만' 입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나의 소중한 1호 원색 옷이다. 이렇게 조금은 원색의 두려움이 깨어졌다. 앞으로 여타 다른 것에서도, 두려움을 깨는 도전이 내 삶에서 많이 일어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