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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외인 Jul 11. 2019

부부 사이와 아이와 부모 사이

아이는 부모를 보면서 성장한다는 당연한 이야기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다. 아이는 부모를 보면서 성장한다는 말. 이 말은 부모에게서 배운다와 부모를 통해서 배운다는 의미가있다. 이게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전자는 부모가 의도한 바를 배우는 것, 후자는 부모가 의도하지 않게 스스로 배우게 된 것을 지칭하는 의도로 표현했다. 이 두 가지 방식으로 아이들은 부모를 보면서 성장한다. 그런데 자주 그렇듯이 당연함이 특별함이 되는 순간들이 잦다. 특히나 그것이 일상적인 경우에 말이다. 


어제는 아내와 아주 오랜만에 한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했다. 2014년에 첫 아이가 태어난 후 2년 간격으로 셋째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부부 사이의 대화는 주로 화제가 아이들이었다. 간혹 부부 간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우리 부부가 사용하는 육체적, 감정적 에너지의 대부분은 아이들을 향해 있었다. 막내가 15개월에 접어들고 둘째와 첫째가 그나마 조금 막내와 놀아주는 시간이 짧게라도 생기면서 아빠와 엄마가 아닌 남편과 아내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야기를 하면서 세 아이를 키우면서 관찰하거나 느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첫째는 암기력이 좋고, 운동 능력도 좋은데 자존감이 낮아 남 앞에 서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도전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 둘째도 언어 능력과 사회성이 좋고 네살인데 혼자서 시도하려는 모습이 잦고 말을 셋 중에 제일 안듣고 자기 고집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셋째는 아직 너무 어려서 잘은 모르겠지만 두 오빠에 비해서 언어 발달은 조금 늦은 편이나 활동적이고 감정을 잘 캐치하다는 것. 


아이들 개개인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가 관찰하고 생각한 아이들의 장점을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가진 역량이 반면 단점은 부모와의 관계맺기와 생활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의 관찰력은 생각보다 예리하다. 그리고 기억력 또한 생각보다 정확하다. 물론 어른들이 하는 것과 같은 종합적 사고와 연결을 통한 체계화된 지식으로 습득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아이들이 생존을 위해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관찰력과 기억력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두 가지 역량으로 아이들은 매 순간을 자기를 형성하는 참조 사례를 무수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참조 사례의 제시자가 바로 부모이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 아이만 돌보아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에게 집중하되 아이가 무엇을 보고 배우고 있는지를 생각하고, 그 배움의 중요한 참조 사례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내가 부모로서 그 참조 사례를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아빠로서의 나와 엄마로서의 아내와 모습일 것이다. 아이들 돌보며서 첫째 아이의 경우에는 5년 가까이 아이에게 집중하느라 정작 부모인 우리 둘의 모습을 잘 살피지 못했고, 그럼으로 부부인 우리들의 사이가 마치 업무로 맺어진 사이인 양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어쩌면 일종의 의무감으로 아빠 역할과 엄마 역할에 집중하면서 이것이 아이를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우리는 00아빠, 00엄마로 불리게 되는 시간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 부부로서 우리의 모습보다 00이 엄마, 00이 아빠로서 우리의 모습이 지금 이 시점 우리 부부를 규정하는 호칭이 될 것이다. 그럴지라도 우리 부부 사이에서만은 우리가 00이 엄마, 00이 아빠이기 이전에 서로와 함께 평생을 하기로 약속한 사랑하는 연인이자, 각자 30여년이 넘은 시간을 이00, 김00으로 살아온 각자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각자의 삶을 응원하는 동반자이자 벗임을 표현하고 느끼게 해주여야할 것이다. 이러한 부부 사이야말로 부모와 아이 사이에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양육의 태도가 될 것이며, 이를 통해서 우리는 아이들의 삶에 선한 영향을 주는 부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부부 사이만큼 좋은 부모가 되는 초석은 없다.


양육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이 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주어야한다는 많은 팁들과 조언들이 있다. 그런 것들은 필요하며 알아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아이를 양육하는 기술들은 뿌리가 될수는 없다. 견고하고 양분을 빨아들여 잎으로, 열매로 양분을 보내는 뿌리는 부모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같은 부모,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롤모델이 되는 부모. 아이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조력자인 부모이다. 그런 부모가 되고자 한다면 우선 부부 사이를 살펴보아야 한다. 


견고한 뿌리는 엉키고설키어 함께 흙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드러나지 않게 제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야 뿌리로부터 공급된 영양들은 잎을 푸르게 하고, 꽃을 피우게 하며, 열매를 맺는 자양분이 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뿌리같은 부모는 정서적 안정감을 충분히 주는 부모이자,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주는 부모이자, 아이들에게 필요한 삶의 기술들을 알려주는 부모여야한다. 이제껏 첫번째 것보다는 두번째, 세번째 것만을 생각하며 아이들 기른 것 같다. 한 아이, 한 아이에 대한 사랑을 온전히 충분히 주기에 셋을 감당할 에너지가 부족한 아빠였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혼을 내거나 말로만 알려주는 아빠가 되었다. 사실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알려주어 배우게 하는 거보다는 아이들이 보면서 배우게 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많은 것을 하는 방법임에도 조급함과 불안함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러면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우는가? 많은 부분 부모, 결국 우리 부부이다. 한 아이, 한 아이에게 아이가 충분히 느낄만큼 내가 줄 사랑과 관심의 에너지가 부족함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한 명 한 명에게 주는 것이 아닌 아이들에게 부모의 삶의 모습과 태도들을  보여주고, 느껴지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양육이자 교육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 인간으로서 나와 우리 부부 관계가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들이 개별 인간으로서, 관계를 맺는 인간으로서 아이가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줄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러므로 나는 아이들을 돌보는 에너지를 부부 사이로 돌리는 것이 오히려 아이들에게는 더욱 좋은 일이라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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