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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Aug 12. 2021

리오에겐 버거웠던 여행

캐럴 호수 공원

6월로 접어들자, 이제야 그야말로 캠핑 날씨가 된 것 같았지만, 이민자 봉사회에서 주관하는 구직 클럽 (Job Finding Club)에 다니면서 여기저기 취업 활동을 하느라 몸과 마음이 바빴다. 주말에는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쓰고, 주중 오전에는 취업 전문 강사에게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를 수정받고, 주중 오후에는 여기저기 동네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하거나 사전 조사 인터뷰 (Information Interview 혹은 Research Interview : 목표 회사나 직책에 대한 정보 수집을 위해 채용 담당자나 담당 매니저를 만나서 하는 사전 인터뷰. 사전 약속을 해서 만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인터뷰어 입장에서는 매우 귀찮은 일이 틀림없을 텐데, 놀랍게도 선뜻 해주겠다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대부분은 아는 사람의 소개로 이루어지지만, 무작정 전화해서 약속 잡는 콜드콜도 종종 성공한다)를 하느라, 일주일이 꽉 짜인 채 후딱후딱 지나가 버렸다. 바쁜 것도 바쁜 거지만, 현지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며 큰소리치고 B 섬의 슈퍼를 나온 지 이미 5개월이 지난 터라 마음은 점점 다급해졌다. 그러던 중 B 섬에서 친하게 지내게 된 M 할머니의 캠핑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B 섬에서 같은 아파트 이웃으로 살던 M 할머니는 여름 낚시 캠핑 여행을 위해 일 년간 준비하는 분이셨다. 다른 가족들 왕래가 없이 작은 강아지 틸리와 둘이서 살고 있었는데, 평소엔 그다지 나긋나긋한 성격이 아니셔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거나 하지는 않았었다. 사람들 얘길 들어보면, 누구는 그 할머니가 한때 미 해군에 복무했었다고 하고, 누구는 미국에서 치과의사였었다고 하던데, 가십이라는 게 원래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듣는 이들의 흥미를 돋우기만 하면 되는 거여서, 이웃 사람들도 쑥덕이기만 했지 딱 까놓고 진실을 밝혀보려는 사람은 없었다. 암튼, 할머니는 겨우내 플라이 낚시를 위한 미끼를 만들거나 여름 여행 계획을 세우곤 했었고, 봄이 되면 아파트 주차장 한편에 겨우내 세워졌던 캠퍼밴에 짐을 채우고 빼고를 반복하기 시작했으며, 한편으로는 캠핑장에서 본인이 주최할 플라이 낚시 강좌를 홍보하거나 참가자를 받았다.


M 할머니가 매년 플라이 낚시 캠핑을 가는 곳은 광역 밴쿠버에서 300km 정도, 차로 9시간 정도 북쪽에 있는 캐럴 호수 공원 (Carol Lake Recreation Site)인데, 당시에는 스마트 폰도 없고 우리 차에 GPS 같은 게 없어서 무척 먼 곳이라는 것 정도만 알았지 그 정도로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기왕 멀리 가는 거 일박만 하기는 뭐해서 3박 4일로 가리라 일정을 잡아놨는데, 막상 가려니 멀기도 멀지만, 직장도 못 구한 상태에서 3박 4일이나 놀아도 되는 걸까.. 하는 복잡한 마음 때문에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래간만에 연락이 닿은 M 할머니께서, S 마트에서 파는 세인트 루이스 스타일 돼지 등갈비를 2개 사다 달라고 하도 간곡하게 부탁을 하시는 바람에, 아.. 모르겠다 하면서 길을 나섰다.


처음 가 본 99번 고속도로 (Highway 99 - Sea to Sky highway)는 (지금은 2010년 올림픽 덕택에 확장도 되고 정비도 잘 되어있지만) 무시무시하기 그지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경치 좋은 드라이브 길이라고 강력히 추천을 했었는데, 막상 가보니 바다를 향해 깎아진 천애벼랑 끝을 따라서 (그러니 당연히 경치는 좋았다) 끊임없이 구불구불한 편도 1차선 도로를 따라서 가는 거였다. 초행길인 데다가 아찔한 절벽을 따라서 달리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간 채로 핸들을 움켜쥐고 팸버튼 (Pemberton)까지 3시간 정도를 운전하게 되었다. 


게다가 달시 (D’Arcy) 근처부터는 벌채 목재 수송용 비포장 도로 (Logging road)를 타고 가야 했는데, 남은 거리는 80km 정도 되었지만 거기서부터 6시간 동안 자갈이 튕기고 구멍에 빠져 덜컹거리는 차를 부여잡고 가야 했다. 당시 우리는 기아 리오를 타고 다녔었는데, 몇 년이 지나자 연료 계통 및 여러 가지로 끊임없는 잔고장으로 괴롭혔던 건 아마도 이 날 너무 무리는 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도시형 승용차를 가지고 그 험한 길을 왕복 12시간을 달렸으니 …


아침 일찍 출발했으나, 저녁 9시가 넘어서야 겨우 도착했다. 눈에 익은 M 할머니의 캠퍼밴을 드디어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애초에 캐럴 호수 공원은 BC 레크리에이션 (RSTBC : BC recreation sites and trails) 관할 공원이고, 주립공원처럼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라서, 어둑한 길을 겨우겨우 따라 들어갔지만 제대로 온 건지, 이제 도착한 건지, 할머니의 밴을 보기 전에는 자신할 수 없었다.  관리자가 없다 보니 부대 서비스 또한 있을 리가 없고 (피크닉 테이블 몇 개와 재래식 화장실 몇 곳만 있었다), 9개의 지정 캠핑 사이트가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숲속 나무 밑이든 어디든 무료로 아무 곳에나 텐트를 치고 숙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두운 밤에 숲에 들어가서 텐트를 치려니 쉽지 않아서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힘을 빌려 겨우 칠 수 있었다. 다행히도 6월 밤의 캠핑은 그리 춥지 않았다.


다음날, M 할머니는 아침부터 채비를 마친 후 호수로 플라이 낚시를 나서고, 우린 호수 주변과 캠핑장을 천천히 산책했다. 어떻게 이런 후미진 곳까지 알고들 왔는지, 주변엔 의외로 많은 캠퍼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중엔 독일에서 왔다는 할아버지 한 분도 계셨는데, M 할머니의 강좌를 듣기 위해 매년 캠핑에 참여한다고 했다. 며칠 전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떠드는 이웃 젊은 캠퍼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발키리의 기행’을 틀어서 다 깨웠다고 자랑하는 걸 보니, 꼬장꼬장한 노인들은 동서를 막론하고 어디든 있는 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캐럴 호수에서의 플라이 낚시


산책을 조금 하다가, 다시 눕다가, 책을 좀 읽다가… 오랜만에 느긋한 시간을 가졌다. 그러고 보면 며칠 놀러 간다고 해서 구직시장 상황이 크게 변하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너무나 마음을 졸이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오히려, 오래간만에 휴가를 보내니 좀 더 자신이 생기… 는 것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때때로 그런 휴식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래도 또, 똑같은 길을 타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금세 우울해지긴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몸이 찌뿌둥해지니, 겸사겸사 할머니 캠프 사이트에 장작이나 좀 패어주고 가자 생각이 들어 도끼를 집었다. 안 그래도 최근에 손도끼를 하나 사서 장작 패는데 어느 정도 재미가 붙었는데, M 할머니네 큰 도끼를 잡아보니 손에 착 감기는 게, 오랜 시간 동안 길이 잘 들었구나 싶었지만…. 한 십여 뭉치를 조각내고 다음이었나…? 그 손에 착 감기던 도낏자루를 그만 부러뜨리고 말았다. 처음엔, 나의 무지에 대해선 전혀 인정하지 못한 채, ‘내가 이렇게 힘이 셌었나?’, ‘도낏자루가 썩거나 불량품이었나’ 와 같은 인지부조화가 있었지만, 낚시를 허탕치고 돌아온 할머니한테 사태를 고백하고 나자 새로운 팁을 하나 배우게 되었다 - 절대로 나무 옹이를 걸쳐서 도끼질하지 말 것. 


땔감용 나무들을 보면 대부분 옹이가 몇 개씩 박혀 있는데, 사실 도끼질이라는 게 나무를 잘라내는 게 아니라 나뭇결에 따라서 쪼개는 행위이기 때문에, 옹이가 박힌 부분을 도끼로 칠 경우 여간해서는 쪼개지기 힘들고 그냥 날만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새로운 스킬을 하나 더 배우게 된 나로서는 머리 위로 레벨 숫자가 하나 더 올라가는 느낌이었지만, M 할머니는 다음에 오기로 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에는 올 때 도끼를 하나 갖다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고 있었다. 우리에겐 세인트루이스 스타일 돼지 등갈비를 부탁했듯이……




캐럴 호수 공원 (Carol Lake Recreation Site. http://www.sitesandtrailsbc.ca/search/search-result.aspx?site=REC1571&districtCode=RDCS&type=Site) : 광역 밴쿠버에서 300km 정도, 차로 9시간 정도 (그중 6시간은 비포장도로) 북쪽에 있는 BC 레크리에이션 관할 공원이다. 거기까지 가는 건 쉽지 않지만, BC 레크리에이션 관할 공원 중 몇 안 되는 RV를 끌고 갈 수 있는 공원인 데다가, 막상 가보면 고즈넉한 호수 주변으로 조용한 캠핑을 즐길 수 있어서, RV를 가지고 일주일 이상의 장기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인터넷 리뷰를 보면, 관리 상태나 남겨진 쓰레기 등을 보고 실망했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BC 레크리에이션 관할 공원들은 애초에 상주 관리자가 없기 때문에 사용자가 “자기가 가져온 것 자기가 가져가는 원칙 (Leave no trace principles)”을 잘 지키는 수밖에 없다



가까운 시내 : 릴루엣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1/5

이동통신 / 데이터 : 전화만 가능 (했었다)

프라이버시 : 하기 나름 (지정된 캠프 사이트 밖에도 텐트를 치는 경우가 많다)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없음

시설 관리 / 순찰 : 없음

RV 정화조 : 없음

RV 급수 시설 : 없음

캠핑 사이트 크기 : 하기 나름

나무 우거짐 : 3/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있음

햇볕 :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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