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터스 호수 주립공원
캐럴 호수 캠핑 이후에도 몇 차례 더 캠핑을 시도해봤지만, 밤에 불 피우고 야외에서 술 마시고 그러는 것 외에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아니, 재미가 없었다기보다는… 너무나 힘이 들었다. 무엇보다 제일 힘들었던 건, 밤에 너무 추워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가족들이 놀러 오고, 그래서 가장 캐나다스러운 여흥을 제공하기 위해 캠핑장에 가서 텐트를 치고, 나무를 쪼개고, 고기를 구워 먹는 일이 그 후에도 몇 번 있었지만, 밤이 되면 급격히 떨어지는 주립공원 땅바닥의 한기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1박 이상의 캠핑은 시도조차 안 하게 되었고 (당시만 해도 젊어서 1박 정도는 어떻게 춥더라도 견딜 수 있었다), 또 그러다 보니, 겨우 일박을 하기 위해서 그 많은 수고 - 캠핑 짐 싸고, 먹을 것 준비하고, 텐트 치고 등등하는 일들이 너무나 부질없이 느껴지게 되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캠핑을 가서 하는 많은 일들 - 텐트 치고, 장작 패고, 짐 나르는 일들 - 이 대부분 근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아내보다 내가 너무 힘이 들었다. 이건 휴식을 위해 놀러 가는 게 아니라, 갈 때마다 중노동을 하는 기분이었다. 하룻밤 찬바람 맞으며 불멍과 함께 술 한잔하려고 그 고생을 하고 있자니 너무나 수지가 안 맞는 것 같아서 점차 캠핑을 안 가게 되었고 (몇 차례 갔던 캠핑도 아무 사진도 기록도 안 남았으며), 그 이후로 여름철에는 캠핑보다 다운타운과 광역 밴쿠버 여기저기서 개최하는 각종 페스티벌 이벤트 및 어트랙션 (생각하고 보니 밴쿠버도 나름 관광도시였던 것이다!!)에 집중했었다. 그리고 얼마 쓰지도 않은 캠핑 장비들은 별 애정을 못 받은 채 어딘가에 방치되고 말았다. 안 그래도 좁은 집구석을 더 좁게 만들고 있다고 번번이 구박을 맞아가면서…
그러다가 2011년이 되고, 아내가 록키 여행을 캠핑으로 가보자는 제안을 하자 귀가 솔깃해졌다. 우리는 둘 다 천성이 워낙에 게으르고 저질 체력인 터라, 여행사 패키지 상품처럼 3박 4일간 정신없이 뛰어다니면서 여기저기 구경하는 건 잘 안 맞는 체질인데, 그렇다고 일주일간 밴프에 있는 호텔에 묵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가 않았다. 그래서 캠핑으로 간다면, 비용도 절감하면서 느긋하게 캐네디언 록키의 절경을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인공조형물이나 예술 작품 감상에 비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걸 그리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돌아오면 무슨 산인지 무슨 호수인지 구별도, 기억도 못 할) 록키를 구경하러 1,500km 정도를 운전해야 하는가라는 것에 근본적인 회의가 있긴 있었다. 하지만, 아내가 강력하게 원하기도 했었고, 마침 201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서 캠핑 붐이 일면서, 한국 웹사이트, 블로그 들로부터 캠핑의 유혹을 많이 받았던 터에다가, 당시 늙어가던 강아지가 캠핑 갈 때마다 너무나 즐거워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대단한 착각이었지만) 이렇게 장거리 장시간 캠핑을 하는 건 아마도 지금 이 나이가 마지막이 아닐까 싶기도 해서 아내와 같이 계획을 세웠다.
밴프 (Banff)와 자스퍼 (Jasper)에 있는 국립공원 캠핑장에 미리 예약을 해야 했는데, 캐나다 국립공원 캠핑장의 경우 1월에 1년 치를 미리 예약받기 때문에 (2021년의 경우 팬데믹 때문에 4월에 오픈) 또 한바탕 예약 전쟁을 치러야 했다. 캠핑 계획에서 제일 걱정되는 건 아무래도 잠자리였다. 7, 8월 성수기를 피하기 위해 (그리고 회사 짬밥에 밀려서 7, 8월에 휴가를 못 내었기 때문에) 6월에 록키에 가기로 했는데, 벤프나 자스퍼 둘 다 연평균 기온을 보니 6월에도 밤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전에 한번 비 오는 날 캠핑을 하다가 코스트코에서 사 온 우리 텐트의 방수능력을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렇게 캠핑을 다닐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괜찮은 놈으로 샀어야 하는 건데… 라는 뒷북은, 이후에도 줄기차게 울리게 되지만.. 어쨌건, 살면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록키 캠핑이 악몽으로 기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뭔가 준비를 해야 했다.
돌아보면 우리에겐 2011년이 가장 신나게 놀러 다녔던 해였던 것 같다. 그 전해에 아내가 공부를 마치고 정규직을 잡게 되면서 이제껏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 바빠서 못 해봤던 걸 다 해보자는 심리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2월엔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해리슨 (Harrison)' 온천 휴양지 리조트에도 가보고 4월엔 국경 건너 미국, 포틀랜드 (Portland)에서 민박을 하고 왔는데, 포틀랜드가 있는 오레곤 (Oregon) 주는 소비세가 없는 것으로 유명해서 가는 김에 록키 대비 캠핑 장비를 추가 구입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계획은 창대하고 욕심은 많았지만, 무지함에 비해서 사전 조사에 무척 게을렀기 때문에 (그리고 큰 돈 쓰는데 소심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REI와 같은) 아웃도어 전문점이 아니라, 미국 월마트에서 가장 따뜻하게 보이는 침낭을 추가 구매하는 것에 그쳤다. 그리고, 추운 날씨나 우천시에도 버틸 수 있는 4계절용 텐트는 우리 예산으로는 구하기 힘들어서, 월마트에서 커다란 6인용 여름 텐트를 백 달러에 구입하고는, 만일 춥거나 비가 많이 오면, 큰 텐트 안에 작은 텐트 하나를 더 치자... 라는 계획도 세웠다. 텐트 치다가 시간 다 가는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살면서 돈이 없을 때 노가다로 때워야 하는 경우는 많이 있는 법이다.
장비가 어느 정도 마련되자, 5월에 근교 주립공원으로 장비 테스트 캠핑을 가보기로 했다. 프레이저 벨리 지역의 칠리웍 시에서 가장 유명한 컬터스 호수 (Cultus Lake) 주립공원에 갔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매우 크고 시설도 번듯한 데다가 가까운데 트레일 코스도 많아서 하루 이틀 캠핑으로 놀기에는 상당히 괜찮은 곳이었다. 단지 넓디넓은 컬터스 호수에는 휘발유 엔진을 단 모터보트도 운행이 허락되다 보니까, 멋도 모르고 호숫가 근처에 사이트를 잡았다고 좋아했다가 밤늦게까지 부다다다다다다다하는 모터보트 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캠핑하면서 춥지 않게 꿀잠을 잘 수 있었고, 아침 일찍 텐트를 걷고 나서 따뜻한 커피를 들고 주변 트레일을 걷는 기분도 매우 호사스럽게 느껴졌다.
비록 월마트에서 100불을 주고 구입한 싸구려 텐트였지만 세워보니 제법 번듯해 보였는데, 문제는 바닥에 14개의 팩을 모두 단단하게 박고 나서야 비로소 텐트를 세울 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비가 많이 오는 광역 밴쿠버 지역의 BC 주립공원 캠프 사이트 바닥이란 게 워낙 단단하고 돌들이 많아서, 플라스틱 팩과 고무망치로는 땅에 팩을 박는 데에만 엄청난 시간과 근력이 소모되는데, 하루 텐트를 치고 나면 그다음 날 저녁까지 오른손 근육이 얼얼해서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 하고 라면 먹기도 힘들었다. 이는 이후에 밴쿠버 지역 보이스카웃 출신의 한 직장 동료로부터 못 모양의 팩과 쇠망치가 필요하다는 팁을 얻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미국 월마트에서 사서 온 (영하 10도까지 버틸 수 있다는) 새 침낭은 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재고가 하나씩 밖에 없어서 이불형과 미이라형 두 가지 다른 모양의 침낭을 각각 사왔는데, 아내와 나 모두에게 목화 솜이불 스타일의 침낭만 편애를 받았고, 그 이후로 몇 차례 살생부를 거치고도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침낭을 다시 백에 집어넣는 것도 손가락이 부러질 정도로 힘든 일이었지만, 얼마 후 TV에 나온 달인 김병만으로부터 침낭은 그냥 쑤셔 넣는 게 편하다는 꿀팁을 전수받고 나서부터는 더 이상 문제 되지 않았다.
불편하기 짝이 없었던 에어 매트리스는 폐기했고, 요가 매트보다 좀 두꺼운, 싸고 가벼운 롤 매트를 따로 장만했는데, 여기에 기존에 있던 침낭들을 함께 바닥에 깔았더니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새로 산 텐트가 덩치만 컸지 여전히 여름용 텐트인지라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려서 밤새 웃풍들이 들어왔지만, 그 안에 작은 텐트를 하나 더 치고 잔다면 6월 록키의 매서운 한파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이제 판은 완벽하게 깔렸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몸은 칠리웍에 있었지만, 밤새도록 마음은 록키에 가 있었던 캠핑이었다.
컬터스 호수 주립공원 (Cultus Lake Provincial Park. https://bcparks.ca/explore/parkpgs/cultus_lk/) : 밴쿠버에서 1번 고속도로 (Route#1)를 타고 동쪽으로 한 시간 정도 달린 후 104번 출구로 빠진 다음에도 또다시 20km 정도 들어가야 나오는 공원이다. 다운타운 밴쿠버에서 제법 먼 곳에 있어서 완전 후미진 곳이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1948년에 설립된 이 주립공원은 프레이저 밸리 지역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공원이고, 아직도 추가 캠핑장이나 통나무집 등이 만들어지는 등 계속 확장되고 있다. 의외로 스쿼미시 방면에 있는 포트 코브 주립공원과 같은 Sea to Sky Park Management에서 관리한다.
총 3000 헥타르에 가까운 넓이의 이 공원은, 4개의 일반 캠핑장 - '엔트란스베이 (Entrance Bay)', '메이플베이 (Maple Bay)', '클리어크릭 (Clear Creek)', '델타그로브 (Delta Grove)'과 3군데 그룹 캠핑장, 그리고 25채의 통나무집, 2개의 대여용 RV 트레일러가 있다 (2021년 현재 코로나 때문에 트레일러는 대여 금지). 광역 밴쿠버로부터 거리 때문에, 그리고 충분히 많은 캠핑 시설 덕분에, 여름 주말 캠핑장 예약시 제법 오랫동안 여유분이 남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호수와 가까운 델타그로브 캠핑장의 호숫가 사이트에 연휴기간 자리를 잡는다면 자기 캠프 사이트에 전용 해변을 가지는 호화로움을 만끽할 수 있고, 이 중 두개 사이트는 전기도 공급되어 안락함을 함께 즐길 수도 있지만, 반면에 밤새 끊이지 않는 모터보트 소리 때문에 매우 괴로울 수도 있다. 각 캠핑장은 비교적 규모도 작고 시설도 낡았으나 캠프 사이트 간의 간격이 충분해서 쾌적한 캠핑을 즐길 수 있다
가까운 시내 : 칠리웍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2/5
이동통신 / 데이터 : 잘됨
프라이버시 : 4/5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있음
시설 관리 / 순찰 : 3/5
RV 정화조 : 있음 (Maple Bay)
RV 급수 시설 : 있음, 좋은 수압 (Maple Bay)
캠핑 사이트 크기 : 3/5 ~ 4/5
나무 우거짐 : 4/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있음
햇볕 :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