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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Sep 06. 2023

언제나 첫 캠핑은 눈물로

2023년 첫 캠핑 2 - 포트코브 주립공원

셋째 날 일요일은 이사를 해야 하는 날이었는데, 11시까지 사이트를 비워줘야 해서 아침 일찍 부지런히 움직였다. 비록 근처 캠핑장으로 가는 이사지만 이렇게 천막과 타프를 주렁주렁 매단 상태로 갈 수는 없기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다시 천막과 타프를 걷고 트레일러에 실어 넣었다. 이렇게 그때그때 상황 봐서 즉흥적으로 결정을 내려가며 하는 일이란 여럿이 함께 한다고 해서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기왕에 비에 젖은 한 사람만 계속하는 것이 더 편했다. 흠뻑 젖은 몸을 싣고 출발을 하려니 갑자기 오한이 난다. 아... 놀러 와서 아프면 너무 억울한데... 비록 젖은 재킷이지만 꽁꽁 싸매어 몸의 체온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한 후 차내 히터를 잔뜩 켠 채로 출발했다. 그야말로 하늘이 찢어진 듯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캠핑 트레일러를 끌고 운전을 하는데, 양 옆은 물론 바로 앞에 있는 차들도 희미하게 잘 안 보이는 데도 어떻게든 놀아 보겠다고 하는 걸 보고 있자니, 참나, 내가 생각해도 이건 너무 미친 짓이 아닌가 싶었다.


보통 주립공원 캠핑장 체크인 시간은 오후 1시부터여서 일단은 캠핑장 근처 피크닉 구역에 주차를 한다. 이곳 주립공원 피크닉 구역에는 캠핑 트레일러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제법 있어서 그런지, 일정 부분은 트레일러를 매달고 주차를 할 수 있을 만큼 크기가 널찍했는데, 포트코브 주립공원의 경우 워낙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터라 여름철 휴일 아침에는 8시만 지나도 피크닉 구역 주차장이 가득 차곤 했다. 그래도 이 날은 날씨 덕택에 주차장에 자리를 금방 잡을 수는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예약한 사이트가 비었는지 슬쩍 정탐을 하고 나서, 입구에 있는 관리인에게 그 자리가 비었고 아주 깨끗한 상태인데 혹시 먼저 들어가도 되겠냐고 물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질문을 했는데, 더 강화된 캠핑장 규정 때문에 이제 미리 들여보내주는 예외는 둘 수 없다고 한다. 빡빡하기는...


또 비를 맞으면서 천천히 주차구역으로 돌아오다 보니 주변이 무척 시끄럽다. 저 바다에 있는 방파제 구역에 바다사자들이 떼거지로 누워있으면서 샤우팅을 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바다사자 (California Sea Lion https://en.wikipedia.org/wiki/California_sea_lion)로, 원래 겨울에는 캘리포니아 근처로 내려가서 아이를 가져야 하는 녀석들인데 뭔 일인지 안 내려가서 여기서 아직 저러고 있단다. 일설에 의하면 해양온난화로 저들의 먹잇감이 캘리포니아 해안가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는 하는데 진실은 알 수 없다. 아니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게 뭐 저렇게까지 시끄러울 일인가? 우리 사이트는 그나마 저 방파제로부터 좀 거리가 있어서 아주 많이 괴롭지는 않았지만, 저 근처 사이트에서 캠핑을 하는 사람들은 잠을 못 잤으리라 생각이 든다 (알고 보니 아내 역시 바다사자 소음 때문에 잠을 못 이뤘다고 했다. ㅠㅠ).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때 이곳에 왔을 때에도 바다사자들이 시끄러웠다. 게 낚시를 좋아하는 지인이 바다사자가 무서워서 카약을 못 띄웠더랬다


방파제에 모여 울부짖던 바다사자 패거리
캘리포니아 바다사자의 집단 고성방가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가 차에 몸을 싣는데, 아이구 너무 춥다. 이제 덜덜 떨린다. 일단 몸을 녹일 곳을 찾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이대로 한 시간 반 동안 차에 있는 수밖에. 일단 시동을 걸고 히터를 틀었지만 주차장에서 공회전을 하고 있자니 기껏 비 오는 날 여기까지 나와 놀고 있는 이웃들에게 민폐가 되는 것 같다. 아내의 플리스 재킷을 뺏어 입고 그 위로 (젖은) 윈드 브레이커를 걸쳤더니 그나마 좀 안정이 된다. 빨리 트레일러를 세팅하고 뜨끈한 국물을 먹었으면 좋겠다. 다행히 점심 메뉴는 오뎅국과 떡볶이, 순대. 출발 전야에 아내가 무와 양파를 미리 다 썰어놓아서 그냥 물만 끓인 후 살짝 간을 해서 먹으면 된다. 종이컵에 받아서 먹으면 더 폼이 나겠지. 마치 추운 겨울, 퇴근길에 사 먹은 포장마차 오뎅처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컨디션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배가 더 고파왔지만.  


1시 땡 되어 체크인을 하고 입장을 하는데, 우리 앞에 들어간 차가 트레일러 주차를 하는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 이미 마음속은 오뎅으로 가득 찼는데, 내가 보기엔 깔쌈하게 주차를 잘했구먼 만족하지 못하고 차를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니 또 부아가 치밀었다. 이러다가, 응? 내 마음속의 오뎅 국물이 식기라도 하면, 응? 니들이 책임질 겁니꽈!! 그래도 웃는 얼굴로 내려가서 시간이 오래 걸리면 먼저 지나가게 비켜달라고 했더니 또 선선히 비켜준다. 흑. 고마워라. 춥고 배고프니까 정말 감정이 널뛰듯 하는구나.


서둘러서 대충대충 트레일러 후진 주차를 하고 나서 수평도 안 맞춘 채 얼른 지붕을 세우고 가스를 틀었다. 퍼니스에서 더운 바람이 나오자 좀 살 것 같다. 비가 좀 잦아질 때까지 트레일러 안에서 몸을 녹이고 싶었지만, 한 번 오뎅에 뺏긴 마음을 되돌리기는 힘들었다. 어느 정도 오한만 진정시킨 후에 다시 밖으로 나와서 가제보를 잽싸게 치고 그 아래에 간이 테이블을 마련하고, 또 스토브와 프로판 가스를 연결했다.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적으로 냄비 위에 물을 붓고 양파와 무를 넣어 끓이기 시작했다. 아내가 음식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일단 트레일러 수평을 맞춘 후 가제보와 트레일러를 연결하는 타프를 치기 위해 또 이렇게 저렇게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바람이 불었다.


미친 바람이.


가제보 다리마다 박아둔 페그를 죄다 뽑아내고 가제보를 날려버렸다. 가제보가 날아가면서 스토브와 테이블과 냄비에 시원한 돌려차기를 먹이고 날아갔다. 바닥에는 출발 전날 아내가 곱게 썰어 준비한 무와 양파 조각이 내빡쳐졌다. 지난 두 시간 동안 간절하게 기다린 오뎅국이 날아갔다.






아이 띠바.



포트코브 캠핑장에선 시도 때도 없이 강풍이 분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는데, 심지어 강풍에 대해 경고하는 글도 쓰고 책도 냈으면서 이런 실수를 하다니. 이 참사의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남기기에는 너무나 격한 감정에 잠겨 있었다. 그 와중에 눈치 없는 새들이 당근과 무 조각을 노리면서 내려와서, 한 손으로는 날아가는 가제보 다리를 부여잡고 다른 손을 휘휘 저어가면서 새들을 쫓아내야 했다. 물을 뜨러 간 아내가 돌아와서는 이 참상을 보고 잠시 정신을 수습하는데 다시 조금의 시간이 걸리고, 그러고 나서 아내는 다시 무와 양파 조각을 줍고, 나는 가제보 다리 길이를 줄인 후 주변 지형지물에 가이드 로프를 꽁꽁 묶어서 꼼꼼하게 설치를 했다. 강풍으로 악명 높은 포트코브에서 이런 천막이나 텐트를 칠 때는 애초부터 가이드 로프를 다 사용했어야 하는 건데 2023 첫 캠핑이다 보니 잊고 있었다. 물론, 안 쓸 수 있으면 안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나무나 고정 테이블에 단단히 묶어두면 날아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바람의 세기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어서, 이런 강풍을 고려하지 않은 피크닉용 가제보의 경우 심하게 망가질 수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중간의 철제 빔과 페그를 고정하는 한쪽 다리의 철제 발이 부러지고 크게 휘었다. 결국 철제 프레임만 남긴 채 천막을 뜯어내어 꽁꽁 쑤셔 담아두어야 했다.


강풍에 시비 털리는 거라 착각하고 끝까지 버틴 결과


다행히 트레일러 안에도 주방 설비는 있어서, 아내는 그 안에서 무사히 떡볶이와 오뎅, 순대 조리를 해낼 수 있었다. 애초부터 트레일러 안에서 조리를 시작했다면 이런 불상사가 안 일어났을지 몰라도, 기왕 여기까지 나왔으니 바다를 보면서 먹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게다가 아무래도 이렇게 냄새나는 음식을 하면 작은 트레일러 안에 걸어둔 옷이나 침구류에 냄새가 배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조리는 밖에서 하려고 한다. 아무튼,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만든 오뎅은. 눈물이 날 정도로 맛이 있었다. 허겁지겁, 정말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오뎅과 떡볶이와 순대를 순식간에 흡입했다.


이 모든 사단이 코미디 영화 한 편의 클라이맥스처럼 지나가자 하늘이 천천히 개면서 햇빛이 새어 나왔다. 마치 절름발이가 범인인 것으로 밝혀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여전히 바람은 세차게 불고 약간의 여우비가 흩뿌려서 밖에 나와 오래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반짝이는 윤슬 위로 괴성과 함께 첨벙첨벙 뛰어오르는 바다사자들의 재롱을 보고 있자니 2023년 첫 캠핑의 참사도 왠지 아름답게 그려질 것만 같았다.



왕후장상의 식사가 부럽지 않던 떡볶이와 폭풍이 지난 후 나온 햇살.


이윽고 해가 저물자 근사한 석양도 만들어줬다.


마지막 날 아침은 태평양을 보면서 먹는 카레라이스






*** 2023년 7월 추가 영상

포트코브 캠핑장에서의 평범한 하루


포트코브 캠핑장 투어


파도 소리와 바다 위로 깔리는 낙조 - 190분 롱테이크


2만 원짜리 고무보트 타고 바다에 나가기


바다 위로 쏟아지는 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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