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콰치 주립공원
잘 알려진 대로, 북미의 공휴일은 대개 몇 월 몇 일 이렇게 날짜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대체로 몇 월 몇 번째 금요일, 혹은 몇 번째 월요일 이렇게 주말과 붙어 있는 날로 정해져 있어서 연휴주말 (Long Weekend)을 만들기 좋게 되어있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가 있으니, BC 주의 경우에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 1월 1일 새해 첫날, 7월 1일 캐나다 데이, 9월 30일 진실과 화해의 날 (National Day for Truth and Reconcilliation), 11월 11일 현충일 (Remembrance Day) 날의 경우에는 정해진 날짜에 쉬게 된다 (만일 이 날이 주말과 겹치면 월요일을 휴일에 추가한다). 하지만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의 경우에는 가족들끼리 모여서 같이 식사를 하는 관습이 있고 (물론 한국의 명절 연휴 때처럼 젊은 사람들은 가족끼리 모이는 걸 기피하기도 한다), 또 가을-겨울-봄에 걸쳐 있어서 시기적으로 뭔가 야외로 놀러 나가는 일이 적다면,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5월 넷째 월요일 (빅토리아 데이)부터, 7월 1일 (캐나다 데이), 8월 첫째 월요일 (주정부 기념일), 9월 첫째 월요일 (노동절)까지는 그야말로 악착같이 뛰쳐나가 놀아야겠다고 작정을 한 것인지, 한국의 8월 첫째 주 해수욕장 인파들 부럽지 않게 여기저기 행락객으로 넘치게 된다. (퀘벡주와 유콘주를 제외하고는 6월엔 공휴일이 없다).
2011년에는 어쩌다 보니까 그전 년도 들에 비해서 캠핑을 자주 하게 되었는데, 새로 마련한 캠핑 장비들이 생각보다 쾌적한 수면을 제공해 주었기도 했고, 늙어가는 강아지와 하루라도 더 많은 추억을 남기기 위함도 있었다. 또 2010년에 정규직을 잡은 아내가 새 직장에 어느 정도 적응한 때이기도 해서, 매 연휴 주말 4개월 전에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2개월 전, 2023년 1월 3일부터는, 팬데믹 이전과 같이, 다시 4개월 이전부터 예약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열리는 주립공원 캠핑장 예약을 꼼꼼하게 할 수 있어서였기도 했다. 어쨌든, 6월에 록키에 갔다 오고, 7월 연휴에 포트 랭리에서 캠핑을 했던 우리는 8월 연휴에도 캠핑을 하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해리슨 온천 마을 (Village of Harrison Hot Springs)이라는 관광지 근처에 있는 사스콰치 주립공원 (Sasquatch Provincial Park)였다.
해리슨 온천에는 이전에도 몇 번 온 적이 있었는데, 그나마 광역 밴쿠버에서 출발해서 가기에는 가장 가까운 온천이었고, 동네 자체도 관광지인지라 이것저것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놓아서 가볍게 산책하기도 좋았던 기억이 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인지, 이 지역에서 나오는 천연 온천수는 마을 중심에 있는 공영 풀장과 해리슨 리조트 호텔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고, 주변의 다른 호텔이나 숙박업소에서는 그냥 수돗물밖에 쓸 수 없다고 한다. 2007년에 왔을 때엔 리조트 예약을 못해서 공영 풀장에 들어가서 온천욕을 했었는데, 2011년 초에는 다행히 리조트를 예약할 수 있어서 나름 뜨거운 온천욕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온천 리조트의 화려찬란한 놀 거리와 허브탕들을 기대하면 안 된다).
사스콰치 주립공원의 캠핑장은 일단 광역 밴쿠버로부터 거리도 제법 되고 또 샤워시설 및 수세식 화장실이 없는 관계로, 다른 주립공원에 비해 인기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서, 여름 연휴에 주립공원 캠핑장을 예약한다고 했을 때 가장 수월하게 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나나 아내나, 재래식 화장실이 주는 시각적, 후각적 충격에 비교적 둔감한 편이고, 며칠 샤워를 하지 않아서 냄새가 나더라도 본인들 스스로에게는 무척 너그러운 편이어서 사스콰치 주립공원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정 힘들면, 해리슨 온천 마을 시내로 나와서 공영 풀장에서 샤워를 하고, 온천욕도 하면 되겠지, 머…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연휴 전날 저녁에,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동하는 건 정말이지 크나큰 오판이었다. 사스콰치 공원은 해리슨 시내로부터도 30분가량 꼬불꼬불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비포장 도로 10분 포함), 이날 고속도로는 그야말로 휴가인파로 가득 차서, 해리슨 온천 마을까지 들어가는 데만 해도 2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직장에서 돌아와 집에서 저녁도 안 먹고 허겁지겁 캠핑 준비를 마치고 출발했을 때가 이미 5시가 넘었을 때였는데, 캠핑장에 도착하니 이미 8시가 넘어있었고, 산속 깊이 자리 잡은 레이크사이드 캠핑장 (Lakeside Campground)에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는데 모기 또한 장난 아니었다. 어두워서 텐트를 치는 것도 대충대충, 이놈의 백 불짜리 월마트 텐트는 14개의 팩을 모두 박지 않으면 도무지 서 있을 생각을 안 하는데, 3시간 넘게 운전을 하고 왔더니 일단 (모기에 뜯겨가면서) 팩을 땅에 박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다른 작업 (장작 패기, 불 때기 등)을 부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겨우, 일단 텐트가 서 있을 수 있게는 만들어 놓고, 아내가 짐을 나르고 텐트 안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또 나무를 쪼개어 모닥불을 피웠다. 아니 모닥불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 거라고.. 일단 저녁부터 먹고 불은 나중에 때지 그랬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부엌 집기까지 세팅하고 그때부터 저녁을 준비하자면 더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불을 땐 다음 장작불에 고기를 구울 생각으로 간절했다. 다행히 모닥불 피우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고기와 옥수수를 잔뜩 구워서 그 당시 주류매장에서 특별 프로모션했던 스웨덴산 사이다 (과일향 나는 발포주)와 같이 쳐묵쳐묵 하고는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보니.. 아뿔싸.. 미리 정해둔 아침 메뉴는 콩나물밥이었는데, 압력밥솥 뚜껑을 안 챙긴 걸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캠핑 준비를 할 때 너무 정신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뭐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그냥 솥밥을 한 후 데친 콩나물을 양념과 같이 얹어서 먹었는데, 아삭아삭하니 더 맛 좋은 콩나물밥이 된 것 같았다 (게다가 누룽지도 있었다!!). 사스콰치 주립공원에는 총 세 군데 캠핑장이 있는데 모두 재래식 화장실만 가지고 있고, 대신에 캠핑장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당일치기 피크닉 공원 (Day Use Area)에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아직 아침이기도 하고, 이 공원이 제법 외곽에 있기도 해서 일찍부터 사람들이 북적대지는 않을 것 같아서, 이날 아침에는 피크닉 공원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하기로 했다.
캠핑장으로 돌아와 좀 산책을 하려고 했더니… 아.. 여전히 모기는 많았다. 예전에 학교에서 배울 때는 모기라는 곤충은 빛을 싫어해서 밤에 활동한다고 들었는데, 어찌 이 숲속 모기들은 대낮에도 이렇게 활발한 건지.. 심장사상충 예방접종을 안 한 우리 강아지 핑계를 대고 냉큼 텐트로 돌아가 낮잠을 즐겼다. 캠핑을 가서 친한 지인들과 수다를 떨 거나, 주변 자연환경을 즐기며 뛰어노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한가로이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여유를 즐기는 것도 또 캠핑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그러고 있다 보니, 마침 지난번 포트 랭리 캠핑 때에도 들러주셨던 지인 가족이 고기를 싸 들고 놀러 와 주셔서 이날 낮에도 또 고기를 굽다가, 오후에는 해리슨 온천 마을 시내에 나가 관광지 커피를 즐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그날 밤, 일기예보와는 달리 엄청난 양의 폭우가 쏟아졌는데, 첫날에 도착했을 때 깜깜한 밤이어서 텐트를 너무 대충대충 친 건지, 텐트 지붕에 물이 고인 후 아래로 새어 떨어졌고, 또 그게 마침 강아지가 있는 자리에 떨어져서 흠뻑 젖게 만들었다. 아내가 깜짝 놀라 나를 흔들어 깨울 때가 새벽 5시쯤. 그때부터 강아지를 말리고, 젖은 바닥을 쉬지 않고 닦아내고, 비옷을 입고 나가서 플래시를 비춰가며 텐트를 보수했는데.. 그렇게 10시가 되자 점차 비가 잦아들었다. 아… 록키 캠핑에서 돌아와 젖은 텐트를 말리느라 또 따로 캠핑을 잡았어야 했는데.. 이번에 캠핑을 마치면 또 언제 텐트를 말리지? 뭐.. 그런 걱정은 일단 나중에 하기로 하고.. 막상 비가 멎으니 일단 밖에 나가서 (모기가 없는 동안) 숲속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왠지 비가 멎은 직후의 숲에서는 피톤치드도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았다.
텐트로 돌아와 보니, 텐트 앞 베란다 구역에 비가 밤새 들이쳐서 장작더미가 죄다 젖어 있었다. 저걸 과연 쓸 수 있을까? 그렇다고 저렇게 젖은 장작 뭉치를 차에 다시 실어서 집으로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녁을 먹을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일단 모닥불 화로 안쪽 가장자리에 장작들을 빽빽하게 세워 놓은 다음에, 그 가운데에 신문지를 접어서 불을 붙였다. 다행히 집에서 타블로이드 무가지 지역신문을 잔뜩 챙겨서 갔는데 그게 많이 도움이 되었다. 밑불이 꺼지지 않도록 꾸준히 신문지를 접어서 넣었더니, 타블로이드 신문 총 일곱 부 분량의 종이를 접어 넣고 있다 보니 결국 주변 온도가 나무의 발화점까지 도달했었는지 드디어 불이 붙기 시작했고, 한번 불이 붙으니까 그 이후에는 다른 젖은 장작을 넣어도 모닥불이 살아남았다.
가지고 온 고구마와 옥수수를 알루미늄 포일에 감아 불 위에 올려놓고는 아내와 다짐을 했다. 앞으로는 연휴 때 캠핑을 하게 되면 당일 저녁에 출발하지 말고 반드시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하자고 (하지만 심각한 망각의 동물인지라 이런 실수는 그 뒤로도 계속 반복되었다).. 한편으로는 나 혼자 속으론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 캠핑.. 내가 정말 몸이 너무 힘들어서 더는 못하겠다..’
사스콰치 주립공원 (Sasquatch Provincial park https://bcparks.ca/explore/parkpgs/sasquatch/) : 광역 밴쿠버 동쪽 끝단에 있는 해리슨 온천 마을 (Village of Harrison Hot Springs)근처에 있는 주립공원으로 두 개의 호수 (Hicks Lake, Deer Lake)와 세 개의 캠핑장 (HIcks Lake Campground, Bench Campground, Lakeside Campground)을 가지고 있다. 대개 샤워장과 수세식 화장실이 없고 재래식 화장실밖에 없는 캠핑장이 그렇듯이,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 단위의 캠퍼보다는, 정말 캠핑을 즐기는 사람이 모이거나, 아니면 (주로 여름 연휴에는) 다른 캠핑장을 못 잡은 젊은 그룹이 친구들과 놀러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두 양극단의 이웃 캠퍼들 성향에 따라서 캠핑환경 (화장실 청결, 야간 소음 등)이 매우 달라진다. 밤에 공원 입구를 닫는 바리케이드도 없고 야간 순찰도 없어서, 예약 없이 밤늦게 몰래 들어와 빈 사이트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는 Sneaker 들도 종종 있다.
장거리 운전과 모기와의 사투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의 기억이 좋았는지, 그 뒤로도 사스콰치 캠핑장에는 자주 가게 되었다. 무엇보다 수세식 화장실이 없는 이곳까지 찾아 준 이웃 캠퍼들의 매너가 너무 좋았었다. 이후 차를 바꾸고 차박을 시작할 때에도, 그리고 작은 카라반을 끌고 다닐 때에도 사스콰치 캠핑장에는 종종 들렀다. 2016년에는 7월 연휴를 맞이해서 4박 5일 차박 캠핑을 했는데, 이때는 중간에 한번 시내로 나와 공영풀장에서 씻고 온천욕을 즐겼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니 왠지 노골노골해지면서, 좁은 차 안에서 자느라 웅크려진 몸이 펴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해리슨 시내는 나름 관광지이기 때문에, 여름 휴가철은 마을 전체 분위기가 활기차고 각종 맛집도 문을 여는데, 이때는 (한국인 이민자 분이 운영하는) 유명 피자집에서 음식을 싸 와서 캠핑장에서 와인과 함께 즐기기도 하는 등, 전반적으로 캠핑 음식 선택지가 풍부해지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시내에서부터 캠핑장까지 거리가 제법 되는 데다가, 우발상황이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캠핑의 특수성 때문에 신선도가 중요한 요리의 경우 재고할 여지가 있다. 자칫 눅눅하고 식어 빠진 피시엔 칩스 같은 걸 먹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호숫가와 비교적 떨어져 있는 벤치 캠핑장보다 다른 두 캠핑장 (힉스 레이크, 레이크 사이드 캠핑장)이 더 인기가 있으며 예약도 먼저 차지만, 사실 벤치 캠핑장에서 디어호수 호숫가까지 걸어가는 것도 그리 멀지 않아서, 더 조용한 캠핑 저녁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벤치 캠핑장을 추천한다.
가까운 시내 : 해리슨 온천 마을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1/5
이동통신 / 데이터 : 안됨
프라이버시 : 3/5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없음
시설 관리 / 순찰 : 1/5
RV 정화조 : 있음
RV 급수 시설 : 없음
캠핑 사이트 크기 : 2/5
나무 우거짐 : 3/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있음
햇볕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