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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Nov 29. 2023

집 이야기

밴쿠버의 주택 문제

주택복권 기억나? 왜 우리 어릴 적엔 복권이라고 하면 주택복권이었잖아. 그러니까 올림픽 복권이 나오기 전까지. 새마을 운동의 끝물인 80년대 초 서울과 주변 위성도시에는 서민주택 / 아파트 개발 붐이 있었고, 많은 저소득 노동자들도 이제 자기 집을 가지는 꿈을 가질 수 있게 되었었어. 내 기억 속 맨 처음 주택복권 1등 당첨금은 3,000만 원인데, 당시에는 간첩을 신고해도 포상금이 3,000만 원 (간첩선은 5,000만 원)이었으니까, 주변에서 간첩을 발견해 113에 신고하면 마치 복권에 당첨된 것과 같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 그 당시 서울 주변부와 수도권 위성도시 아파트 가격이 평당 100만 원이 안되었다고 하니까, 주택복권에 1등 당첨되거나 간첩을 잡으면 집 한 채 가질 수 있는 건 가능한 일이었을 거야. 최근 조사에 의하면 이제 서울에서는 대부분의 아파트가 평당 3,200만 원을 넘는다고 하던데 (2023년 10월 24일 SBS뉴스), 지금 만일 15억 로또에 당첨되었을 때 실수령액은 10억 정도 될 테고, 이럴 경우 변두리 33평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건 여전한 거지. 물론 내가 유일한 당첨자일 경우일 때 얘기고, 2명 이상 나눠가질 때는 더 이상 복권 당첨으로 집 사는 건 불가능이야.


한국의 경우 소득 조사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보건복지부에서 고시한 중위권 소득은 2023년 현재 1인 가구의 경우 월 207만 원, 연간 2,500만 원이라고 해 (경기도 일자리 재단, 잡아바). 이 말은 곧, 중위권 소득자가 지금 당장 서울 주변부의 25평 아파트를 산다면 한 푼도 안 쓰고 32년간 모아야 한다는 말이 되겠지. 4인가구의 경우 월 540만 원, 연간 6,500만 원을 중위소득으로 책정했다는데, 이 4인 가구가 40평 아파트를 산다면 한 푼도 안 쓰고 18.5년을 모아야 한다는 말일 테고. 반면 캐나다에서 2021년 시행된 센서스에 의하면 캐나다 1인당 중위소득은 $41,200, 밴쿠버의 1인당 중위소득은 $36,420, 가구당 중위소득은 $82,000이었다고 해 (2021 캐나다 센서스). 그리고 집값의 중위권 가격대가 $1,450,000이라고 하니 (Point2Home Vancouver Demography), 2021년 기준으로 봤을 때, 밴쿠버에서 중위권 소득의 한 사람이 중위권 가격대의 집을 사려면 약 40년, 중위권 소득의 가구의 경우 17.7년간 한 푼도 안 쓰고 돈을 모아야 한다는 말이 되겠지.


밴쿠버의 경우 자택을 소유한 가구가 45%로 55%인 임차인 가구에 비해 비율이 낮은 편인데, 침실 1개 있는 아파트의 평균 임대료는 월 $2,700, 3개가 있는 집의 평균 임대료는 월 $4,750이야 (zumper.com). 다시 말하자면, 중위권 소득을 가진 사람이 평균적인 침실 1개 짜리 아파트를 임대하고 나면, 1년 동안 나머지 4,000불로 생활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 거야. 결국 밴쿠버 역시 기본 당첨금 $5,000,000 짜리 로또 6/49에 나 홀로 당첨되지 않고서야, 중위 소득을 사진 사람이 집을 사는 건 꿈도 못 꾸고 임대로도 혼자서 버틸 수는 없는 동네가 되었어. 게다가 전반적으로 집값은 조금 하락했어도 팬데믹 이후 은행대출 이자가 급상승했기 때문에 최근 조사에 의하면, 밴쿠버에서 지금 집을 사려면 (은행 대출을 갚으면서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하려면) 가구소득이 최소 $246,000이 되어야 한다고 해 (2023년 9월 18일 CTV뉴스). 밴쿠버에서 1인 소득이 이 정도 될 수 있는 직업은 의사밖에 없어. 일반적인 전체 의료 종사자들의 중위 소득도 $80,000이 조금 넘는 형편이라고 (talent.com). 이게 도대체 말이야 방구야.


최근에 어느 젊은 한국분과 만나 식사를 같이 하는데, 사실 이 친구는 적어도 내가 밴쿠버에서 만난 한국 청년 중에서도 무척 똑똑하고  아주 열심히 일하는 친구거든, 근데 혼자 벌어서는 밴쿠버에서 도저히 자리를 잡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더라. 당장 월세 내고 나면 생활이 빠듯하다고. 그러니 집을 사는 건 엄두도 못 낸다고. 밴쿠버에 워킹 홀리데이로 처음 와서 영주권을 얻고, 그러고도 5년 정도 꾸준히 일을 해왔는데... 그런데도 도무지 집을 살 미래가 안 보이는 거지. 여기서 자신의 부모들이 오랫동안 살아왔고 그들의 집을 물려받거나 따로 재정적 도움을 받을 일이 없다면 다들 이런 상황이야. 밴쿠버에서도 이제 자식들의 초기 주택자금을 마련해 주는 일이 부모의 역할 중 하나가 되었어. 내 주변에도 자식들 대출 보증금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돈 모으는 사람들이 많아.


나잇살 좀 더 먹었다고 뭐라고 어드바이스를 해주고 싶었지만, 나 역시 도무지 방법을 찾을 수가 없더라. 이 친구가 만일 계속 혼자 산다고 해서 약 $650,000 가격대의 소형 아파트를 구입한다고 해도, 30년 은행대출을 받더라도 연간 소득이 $142,000이 필요하다니까. 의료직이나 시스템 개발자 등 고소득 전문직이 되기 위해 학교에 다시 가든지, 아니면 냉동 수리나 엘리베이터 수리 기사처럼 일이 차고 넘쳐서 초과근무를 정신없이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든지 해야 하는 거지. 우리 같은 경우에는 정말, 이 친구보다 십여 년 먼저 랜딩한 것 밖에 한 게 없거든. 물론 우리도 초기에 정착하느라 많이 고생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 적어도 집 걱정은 안 하고 사는데, 어쩌다 세상이 이 모양이 된 건지, 이렇게 열심히 일 하는 사람들이 집을 살 수 없게 된 사회는 도무지 어쩌라는 건지. 내가 도대체 제대로 살아온 게 맞는 건지.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못할 짓을 하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더라.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밴쿠버에서는 일할 젊은이들을 찾는 게 너무 힘들어졌어. 뭐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 업종 평균임금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게 힘들어진 거야. 밴쿠버에서 자리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급여를 많이 준다면야 사람을 금방 구할 수도 있겠지. 근데 그렇게 되면 또 사업체가 경쟁력을 잃어서 살아남기 힘들잖아. 그렇다고 전체 사업체들이 일제히 다 요금을 올리게 되면 또다시 생계비용이 전체적으로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이 되는 거지. 서울이든 밴쿠버든, 일단 집 값을 낮춰야 해. 강제적으로라도. 그래야 일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어. 노동자들이 가정을 꾸리고 2세를 키울 수 있어. 집 값이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젊은 납세자들이 자리를 잡을 방법이 없는 거야. 그리고 당장 이 지역에서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면 도시 경제는 금방 마비되고 말 거라고. 그나마 날씨가 매력적인 밴쿠버가 이럴진대, 주변부에서도 좀 더 떨어진 곳 - 그래서 평균 임금이 더 낮은 곳의 상황은 더 심각한 편이야. 메릿 (Merrit)이라고 밴쿠버에서 동쪽으로 약 270km에 있는, 예전에는 BC주 목재 산업의 중심지였고 지금은 교통의 요지인 그 도시에는, 인력부족으로 종합병원 응급실을 당분간 닫겠다는 뉴스가 오늘 아침에도 나오더라. 그런 상황이 밴쿠버에서도 조만간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거야.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도대체 왜 자신의 집값이 떨어지는 걸 두려워하는 걸까? 집값이 비싸면 그냥 재산세만 더 많이 내는 거잖아. 사실 시장에 있는 상품 중에 오래 쓰면 쓸수록 중고가격이 올라가는 변태적인 상품이 집 말고 또 어디가 있겠어? 어쩌면 집을 여러 채 굴리면서 이걸로 금융소득을 올리는 부유층 사람들의 심리가 그냥 사회 전체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된 걸지도 몰라. 많은 저소득 노동자들이 여전히 낙수효과라는 미신을 믿고 있듯이 말야. 아니면 집을 비싸게 팔아서 좀 더 화려한 양로원에 들어가고자 하는 노인들의 희망이든지 말이지. 적어도 사회보장이 잘 되었다고 하는 캐나다에 와서는 이렇게 '노후대비'라는 명목 하에 젊은 사람들의 기회를 수탈하는 경제행위를 안 보고 살 줄 알았는데 말야. 그러니 지금 당장 정부에서 집값을 1/10로 떨어뜨리겠다는 긴급조치를 하더라도, 물론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만만치 않은 저항을 받게 되겠지.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집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심지어 내 집 마련만을 위해 젊음을 탕진해 가면서 돈을 모으는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시장 경제에 주는 충격은 말도 못 할 거야. 2천 불이 넘던 노트북 컴퓨터 가격이 300불 대로 떨어졌을 때에도 나처럼 컴퓨터 수리로 먹고살았던 사람들의 직업 안정성에 당장 충격을 줬었는데 집은 오죽하겠어. 그렇다고 컴퓨터처럼 중국에서 수입해서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캐나다 도시 중에서도 BC주와 밴쿠버가 주택문제가 가장 심각한 형국인데 (2023년 10월 27일 Vancouver Sun 기사), 결국 BC 주정부와 밴쿠버 시의회에선 그냥 주택 공급을 늘리는 방법을 택했어. 신규주택 건축에 있어서 여러 가지 조건을 완화한다든지, 기존 집을 허물고 새로 지을 때는 단독 주택이 아니라 다세대 주택으로 지어야 한다든지, 거주밀도를 높이는 고층 아파트 건축 비율을 늘린다든지, 역세권 부근에 고층 건물을 더 많이 짓는다든지 하는 방법들 말야 (BC 주정부 웹사이트). 주택 가격을 서서히 연착륙시키기 위해 시장의 논리에 맡기겠다는 거겠지. 이럴 경우 시장이 받는 충격은 완화될지 모르겠지만, 글쎄, 사실 효과에 대해선 의구심을 거두기 힘들어. 지금 가정을 꾸리려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주택들이 적당한 가격에 공급되지 않는 것이 과연 단지 주택 공급이 부족해서일까? 날씨 좋고 자연경관 좋은 밴쿠버에는 앞으로도 사람들은 더욱더 모여들 텐데. 모든 걸 떠나서, 서울이건 밴쿠버건 간에,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자원, 하지만 한정되어 있는 자원을 이용해서 자신의 재산을 증식하려는 탐욕이 멈출 생각이 없는 이 상황에서, 과연 물량 증산 만으로 주택문제가 해결이 될 수 있을까? 


자신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재산의 가치는 전혀 잃고 싶지 않으면서, ‘요즘 애들은 이기적이라서 애를 안 낳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뻔뻔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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