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캐나다, 감시사회
우리 어릴 적에 수도 없이 들었던 반공교육 중에는 그런 게 있었잖아. '5호 감시제'. 그러니까 북한에서는 동네에 5 가구마다 선전원을 둬서 공산당에 대한 충성심을 감시하게 만든다는 얘기였던 걸로 기억해. 당시엔 남한에서도 술자리에서 정권을 욕하는 걸 누가 신고해서 막걸리 마시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기도 했었으니까 딱히 5호 감시제를 듣고 우월감을 느끼거나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말야. 그리고 또 '인민재판'이라는 것도 있었지. 문화 대혁명 당시 중국이나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사상이 의심받는 걸로 체포되는 일이 있으면 곧바로 이웃이나 동료들의 증언을 받아 즉결심판하게 되는. 암튼, 당시 반공교육에서 저 북한의 5호 감시제나 인민재판을 비난했던 이유는 서로 감시하고 재판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서 공동체의 정을 붕괴시킨다는 것에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40여 년이 지나서 남한 사회에 자발적으로 이런 분위기가 조성될 줄 누가 알았겠어. 요즘은 사회 전체가 무슨 커뮤니티 사이트에 댓글이 달리는 것 같은 분위기야. 어느 아파트 단지에 누가 주차를 거지같이 하면, 그게 거의 실시간으로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가고 그걸 또 언론사에서 퍼가서 지면이나 방송으로 나와서 전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될 때까지 하루면 충분하더라구.
예전에 <슈퍼스타 K>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국에서 예상 밖의 큰 인기를 끌 때 어느 문화평론가가 이런 얘기를 했었어. 한국 사람들은 타인을 평가질 하는 걸 워낙 좋아해서 그렇다고. 뭐, 모든 사람을 다 싸잡아서 비난하는 듯한 말투는 맘에 안 들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반박도 못하겠더라. 진정 평가를 좋아하는진 모르겠지만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건 사실이잖아. 나만 해도 8천 킬로 떨어진 곳에서 편히 앉아서 한국 사회에 대해 훈계질을 하고 있으니 말이지. 도대체 왜 이런 걸까? '우리가 남이가' 식의 패거리 의식을 어릴 적부터 계속 주입당해서? 상대평가에서 승리하여 좋은 대학 가는 것이 성장기 동안의 최대 목표였어서? 근데 또, 그렇게만 생각하기에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연민이나 공감과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도 많이 보이잖아. 영어식 아침 인사말인 'Good Morning'은 '당신에게 좋은 아침이 되길 바래 I wish you have a good morning'라는 뜻인데, 한국식 인사는 '잘 잤어?', '밥 먹었어?'잖아. 아니, 남의 식생활이나 잠자리까지 도대체 왜 그리 걱정하는 거야? 정말 모르겠어. 어쩌다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타인에게 관심이 많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다 굴곡이 많은 역사 때문이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해. 수많은 외국의 침략을 받기도 하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어 총부리를 겨눈 적도 있었고, 그러다 보니 패거리를 짓고 내 편의 안위를 확인하는 일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뭐 다른 모든 사회 문화들이 그렇듯, 이렇게 개인보다 공동체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관습에도 각기 장단점이 있어왔겠지. 문제는 전쟁의 상흔과 가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런 공동체 문화의 단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나, 아니면 아예 관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문화의 도입을 폭력적으로 억눌러 왔다는 것에 있을 거야. 그리고 그 폭력의 주된 원인은 두려움에 있고 말이지. 새로운 것이 출현해서 기존 질서가 어지러워지면 나 자신과 내가 속한 공동체의 안위가 무너질 거라는 공포.
우리 학교 다닐 땐, 정말 선생들한테 무지 많이 맞고 살았잖아. 그땐 또 그게 폭력이라고 생각도 못하고, 친구가 맞으면 또 그게 웃기다고 낄낄거리고 놀리기도 했지만 말야. 그때를 돌아보면, 몽둥이를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먼저 허리를 휘청이거나 무릎이 꺾인 채 선생들에게 비는 애들이 있었지. 유독 매 맞는 것에 심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들. 어느 날 그걸 보고 국사 선생인가가 이런 얘길 하더라구. 집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낄 정도로 맞아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그 말이 40년 가까이 계속 생각나는 이유는, 그 이후로도 어떤 공포심, 어떤 트라우마가 사람들, 그리고 한 사회의 집단심리에 큰 영향을 주는 걸 계속 목격해 와서 그런 것 같아. 그게 공격성이 되었든 공황장애가 되었든 간에 말이지. 특히 IMF를 거치면서, 내가 믿고 지켜왔던 공동체가 개인의 삶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지켜본 이후로, 한국 사회 전체가 재테크와 노후대책을 향해 전력질주하게 된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일 거야.
이외에도 사람들의 공포감을 이용하는 마케팅은 끝이 없지 뭐. 이건 비단 한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가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 은퇴자금에 대해 은행에서 하는 설명회가 가면, 나는 이미 망했다고 선고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그래야 내가 주머니 돈을 탈탈 털어서 은행에 넣을 테니 말야. 물건 하나를 팔더라도 딱 1개 남았다고 하는 협박이 먹힐 때가 많아. 이 기회를 놓치면 큰 후회를 할 거라는, 아주 고전적인 공포 마케팅이겠지. 캐나다는 좀 덜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이들 학원에서 입시설명회 할 때도 마찬가지 아닌가? 다들 이미 늦었다고 하잖아. 특목고 가려면. 혹은 의대 가려면. 조금만 딴 길로 새도 집단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공포심, 그리고 한 편으로는 이미 늦었다는 절망감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면 행복한 사람들이 나올 수가 없겠지. 심지어 내가 캐나다에 올 때 어느 지인은 이런 충고도 했었어. 캐나다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절대로 먼저 미안하다고 얘기하지 말라고. 나중에 그걸 이용해서 가해혐의를 뒤집어 씌운다고. 근데 막상 와보니, 적어도 밴쿠버 사람들은 노상 땡큐랑 쏘리를 입에 달고 살더라구. 자신에게 피해가 갈까 봐 쏘리라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산다면 그게 얼마나 슬퍼.
물론, 한국 사회의 수많은 CC-TV들과 자동차 블랙박스, 그리고 인터넷 커뮤니티 제보를 통해서 정의가 구현되는 순기능을 부정하는 건 아냐. 사실 우리가 자랄 때도 그렇고, 단지 힘 없고, 돈 없고, 빽이 없다는 이유 만으로 억울하고 어처구니없는 경우를 많이 당해왔잖아. 법과 정의를 집행해야 할 기관이나 진실을 파헤쳐야 할 언론들이 오히려 권력자나 가진 자들을 비호하는 일도 비일비재했고. 그러니 공권력이나 언론에 대한 신뢰를 접고 이렇게 인터넷으로나마 정의를 집행해야 한다는 거겠지. 굳이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 부역자들 청산도 제대로 안되었고, 그때 독립운동가들을 잡아서 고문하던 일본 경찰 앞잡이들이 해방 이후에도 대대손손 권세를 유지하고 있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는데, 이렇게 인터넷 여론몰이 인민재판으로 정의를 집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사이다겠어. 그러니, <더 글로리>나 <모범택시>와 같은 복수극, 사적제재극이 인기를 몰았던 거 아닐까?
근데, 문제는 여론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라는 점이야. 반드시 진실도 아니고. 그리고 여론이라는 건 아무래도 집단적인 공포심에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자유를 위해 싸워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미국 시민들도 나중에는 혼자 사는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붙여 화형을 시켰었고, 왕의 머리를 잘라 봉건제도를 끝낸 프랑스 시민들 역시 얼마 안 가 나폴레옹을 다시 황제로 추대하며 왕정국가로 회귀했었잖아. 그리고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과연 이렇게 내가 누군가로부터 끊임없이 감시받고, 평가받고,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자발적으로) 감시하고 평점을 주는 사회가 과연 건강할 수 있겠느냐 하는 거야. 음식배달 서비스를 받고 나면 거기에 평점을 매기게 되어 있고, 또 많은 회사들이 소비자들에게 자기가 받은 서비스를 평가해 달라고 설문조사를 하기도 하잖아. 어쩌다가 일반인들이 남의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근태를 감시, 보고하는 일을 이렇게 무상으로 하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어찌 되었든 세계적으로 한 사회의 감시행위가 점점 늘어나는 건 사실이야. 그런데 타인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행동이, 다시 말해 나의 평가질, 별점을 통해서 타인의 직업 안정성이나 사업성패에 영향을 준다고 했을 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우월감을 느끼고 갑질을 하게 되는 현상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겠냐는 거지. 특히나 남에게 관심이 많고, 시장경제에서 봉건색채가 완전히 빠지지 않은 한국 사회나 중국 / 일본 사회에서 말이야.
(내가 영어가 딸려서 그런지 몰라도) 적어도 예전에는 캐나다, 밴쿠버 사회에서는 자신에게 어떤 못마땅한 점을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그걸 사회 정의 구현과 곧바로 연결 짓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었던 것 같아. 뭣보다, 남의 일에 그렇게까지 관여를 안 하려고 하는 것 같더라구. 가해자를 응징하는 것에도 관심이 없어 보이고. 심지어 BC 주에서는 교통사고를 수습하는 보험사도 공영사인 ICBC 하나밖에 없어. 한 회사가 가해 차량과 피해 차량을 모두 대리하는 셈인데, 조사과정이나 결과를 피해자에게 알려주는 법도 없지. 이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너무 황당해서 화가 다 나더라구. 아니 무슨, 박카스 한 박스 사들고 피해자 병문안 오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적어도 가해차량이 어떤 페널티를 받는지 정도는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말이야. 근데 그게 뭐, 내가 항의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 보니까, 결국 신경을 안 쓰게 되고 오히려 속 편한 점도 있더라.
그런데 이 인간들도, 코로나로 사회전체가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되니 저절로 감시사회가 되더라니까. 베란다에 서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썼는지 감시하기도 하고, 개인 간 거리 2미터를 유지하지 않으면 폭력적이 되기도 하고. 물론 그 폭력은 여기도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노인, 여성, 아이들에 한해서만 표출되었었지만 말야. 그리고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되는 중국인 (그리고 중국인과 구분이 안 되는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혐오도 대단했었지. 결국은 그랬던 거야. 밴쿠버 / 캐나다 사회의 주류인 백인들의 성품이 원래 착해서 그랬던 것도 아니었고, 캐나다 사회가 더 선진 사회라서 그랬던 것도 아니었어. 그냥, 이들은 타인에게 관심을 안 가져도 자기 인생에 위협이 가는 일이 없었으니까, 더 배려 돋고, 더 여유로운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뿐이었던 거야. 그러고 보니까 너무 적나라했던 사례가 보이는 거 있지. 투기자본의 대붕괴로 인해 2008년 경제위기 이후로 제조업이 무너지고 도시 경제가 하나둘씩 마비되기 시작했을 때, 생계곤란에 봉착한 미국 백인 가정들, 중산층이었다가 매 끼니를 걱정하는 처지로 전락한 사람들의 선택은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였잖아. 이민자와 외국인들에게 혐오딱지를 붙였던.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이든 캐나다든, 인간 사회란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언제든지 타인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다면,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없을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건 복지정책일 거야. 그것도 수혜자가 사회에서 쉽게 손가락질당하지 않게끔 하는 보편적 복지. 이걸로 사회구성원들의 생존에 대한 공포심을 줄일 수 있다면, 좀 더 사람들이 감시를 접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해. 그리고 이런 시스템 차원의 해법만큼이나 사회 지도층이나 전문가 및 지식인들의 활동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자칫하다간 언제든지 공포심에 파묻혀 감시사회가 될 수 있는 위기 속에서도, 사회의 통합과 안정을 위한 정책과 방향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해야 하는 게 이들이 해야 할 일이니까. 그냥 중고딩 때 시험 잘 봤으니까 육체노동을 안 하고도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히 한국에서는 한 사회의 정신 건강을 연구하는 일의 중요성이 제대로 평가받고 있지 않은데, 이럴수록 전문가들과 지식인들이 더 노력을 해야 하는 거지.
2020년, 아시아 국가들과 이탈리아, 스페인 등을 덮쳤던 코로나가 캐나다에도 결국 들어왔을 때, BC 주에도 한국의 정은경 본부장 역할을 하던 공공 보건 행정관 (Public Health Officer)이 있었어. Dr. Bonnie Henry.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불안에 잠겨있던 사람들도, 매일 저녁 그녀가 TV에 등장하며 전달하는 차분한 메시지를 듣고 마음을 진정하곤 했었지. 그런 그녀가 처음 보건 행정관으로 임명되고 보건응급사태를 선포하면서 공황에 빠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했던 얘기는 이거야.
지금은 우리가 친절함을 잃지 않고, 침착함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지낼 때입니다. (This is our time to be kind, to be calm, and to be safe).
그녀는 알았던 거야. 인류가 겪었던 수많은 전염병 역사 속에서, 미지의 질병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가 실제 병원균만큼이나 독하고 참혹한 사건을 많이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바이러스 감염만큼이나 사람들의 집단적인 증오가 위험하다는 것을. 내 몸 하나 안전하게 건사하는 것보다, 친절함을 잃지 않고 침착함을 잃지 않는 게 먼저라는 사실을. 내일 당장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우리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배려와 친절함이라는 사실을.
애초에 모든 종류의 공권력에 항상 냉소적이었던 나 조차도, 어떤 지도자의 말 한마디는 손 세정제나 거리 두기, 백신 한 방보다 훨씬 더 당장 필요한 치료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특히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감염자들의 사생활 동선 추적이 실시간으로 인터넷과 뉴스에 공개되면서 사회 내에 증오심이 팽배할 때여서 더 감동적이었던 것 같아.
물론 그녀가 항상 지지를 받았던 건 아니야. 코로나가 좀처럼 종식될 기미가 안 보이자 사람들은 지쳐갔고, 닥터 헨리가 부드러운 리더십을 그만 접고 좀 더 강력한 제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았지. 자잘한 보건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이 시작되려고 할 때, 그녀는 단호하게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우리는 모든 사정을 알 수는 없다."라고 말하곤 했었으니까. 특히 강제적으로 집에 갇혀있게 된 아이들의 정신건강이 피폐해지는 것을 염려하면서 초중고교 등교를 재개했을 때는 엄청난 반발이 있었어. 그도 그럴 듯이, 아이들이야 비교적 심각한 코로나 증세를 안 겪는다고 하더라도, 아이에게 전염된 성인의 경우엔 건강도 건강이지만 밥벌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주저 없이 미래 세대의 정신건강을 더 중요시했던 거지.
과연 그녀의 방식이 옳았던 걸까? 한국처럼 좀 더 엄격하게 추적하고 단속했다면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좀 더 줄지 않았을까? 정답도 알 수 없고 의미도 없는 가정일지도 몰라.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고 생각해. 밴쿠버 사회가 코로나의 상흔을 지우고 좀 더 일찍 통합이 되고 안정이 된다면, 서로 감시하고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 양보하고 배려하는 사회로 돌아간다면, 적어도 그런 것에 대해서 만큼은 닥터 헨리에게 일정정도 공훈이 있다고. 지금 당장의 질병 감염 방지만큼이나 거시적인 사회 정신 건강을 걱정한 그녀의 판단이 도움을 줬다고. 정의롭고 질서 잡힌 사회보다 여유롭고 배려있는 사회가 더 사회구성원들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