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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Oct 20. 2021

노숙과 캠핑사이

E. C. 매닝 주립공원

차박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연초까지만 해도 2016년 한 해 동안 그렇게 많이 캠핑을 하게 될지는 몰랐다. 차박이 제공하는 캠핑 준비의 간편함 - 단지 망치로 팩을 박아가며 텐트를 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가뿐한 세팅을 즐길 수 있었던 것. 여기에 아내가 새로 장만한 스크린 하우스 (모기장 텐트) 역시 여기저기 잡아당기고 나면 1분 안에 설치가 가능한 것이어서, 땀을 뻘뻘 흘리고 모기에게 뜯겨 가면서 텐트를 치는 시대는 이제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 것만 같았다 (적어도 아내가 백패킹에 관심을 두기 전까지만 해도..).

차박 캠핑의 일반적인 세팅 - 부엌 겸 식당인 스크린 하우스와 의자를 뒤로 접어 몸을 뉘일 수 있는 차


하지만, 2016년에는 차를 바꾸고 차박을 시작했던 것 자체가 예정에 없이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이었기 때문에, 보통 3개월 전에 미리 예약을 해뒀어야 하는 주립공원 캠핑장의 경우, 여름이 다가왔음에도 우리에겐 확보해둔 것이 없었는데, 당시에 내 근무 일정은 화요일 ~ 토요일이어서, 비교적 사이트 예약에 여유가 많은 일요일에서 월요일까지 1박만 하는 캠핑을 가까운 주립공원으로 가고는 했었다.


예전처럼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주립공원 땅바닥에 14개의 팩을 박아가면서 텐트를 치고, 다시 걷는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단지 1박만 하더라도 간단하게 불멍과 바비큐를 하고 오는 일정은 차박을 통해서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좀 더 주변을 탐방하면서 놀기에는 아무래도 1박 만으로는 아쉬움이 남았었다.


사실,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마시면서 깔깔거리거나, 집에서는 (기름이나 연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못 해 먹는 맛 난 음식을 해 먹거나, 아니면 산책 등을 통해 주변 경관을 음미하는 일이 없이 그저 집 밖에 나가서 자는 일뿐이라면, 캠핑은 그저 노숙에 불과한 것일 테다. 아니면, 그야말로 극기훈련이거나. 그런저런 이유로, 2016년에는 광역 밴쿠버 밖으로 새로운 캠핑장을 많이 찾게 되었다.


6월 초에는 프레이저 밸리 동쪽 끝과 오카나간 지역 사이에 있는 E. C. 매닝 주립공원으로 캠핑을 갔는데, 새로운 직장에서 방문 서비스 일을 시작하게 된 후부터는 예전만큼 운전이 부담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딸랑 2박 3일 캠핑이지만 장거리 운전을 감행했었다. 산악 고원 지역이라 6월에도 기온이 0도까지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길래 단단히 껴입고 준비를 했지만, 차박을 시작하면서 보안에 민감한 아내가 플리스 (Fleece) 옷감을 이용해서 커튼을 만들었는데, 이 커튼의 보온성이 생각보다 매우 뛰어나서 별로 추위를 느끼지 못하고 잠에 들 수 있었다. 온몸의 근육에 힘을 잔뜩 준 채 이를 딱딱 부딪치면서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던 텐트 생활이 바로 얼마 전이었는데, 이렇게 생활이 나아지는 건가 싶었다. 왠지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도 같았고..


날씨가 서늘해지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감이 있어서 도착하자마자 타프로 천막을 만들고, 장작을 패서 불을 때고 오뎅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캠핑장에서 모닥불을 피우는 행위는 애초에는 난방이 주목적이었겠지만 이제와서는 왠지 엔터테이닝한 측면도 없지 않아서, 마치 영화를 한 편 보거나 비디오를 빌리는 심정으로 캠핑장에서 땔감 나무를 돈 주고 구입하는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한 뭉치에 5불 하던 예전이나 12불씩 하는 요즘이나 그냥 태워버릴 나무에 쓰는 돈이 아깝기는 매한가지여서, 일요일 오후 이웃 캠퍼들이 떠난 자리에 혹시 남겨둔 장작이 없는지 둘러보고 다니곤 했다 (지금도 단돈 몇 푼을 아껴보고자 공짜 장작을 구해보려고 자재 운송용 빠렛뜨를 쪼개서 쓰는 등 여러 노력을 한다).


저녁엔 음악과 오뎅국, 와인 / 아침은 라면에 김치



다음날에 느지막이 일어나 보니 날씨는 완전히 갠 상태… 하지만 뭔가 부스러기 같은 걸 얻어먹고자 찾아온 새들이 스크린 하우스에 갇혀 버둥거리고 있었다. 잘 달래서 날려 보내준 후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슬슬 주변 산책을 나섰다. 라이트닝 호숫가 당일 피크닉 (Lightning Lake Day use area) 장소 쪽으로 내려가 보니 카누와 카약 대여를 하고 있었는데, 왠지 몸을 바짝 감싸고 있는 카약보다는 카누가 더 안전해 보여서 (사실은 카약이 제일 안전한 수상교통기구랍니다) 카누를 빌려서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광역 밴쿠버 지역에 비해 무척 저렴한 가격으로 대여를 할 수는 있었지만…



6월의 라이트닝 호수 한복판은 너무너무 추웠다. 우오오오오오. 이게 바로 칼바람이구나. 이래서 '처녀 맷사공' 노래 첫구절이 '강바람'으로 시작하는구나.. 싶었다. 춥기도 추웠지만 바람 세기도 장난이 아니어서 맞바람을 맞으며 돌아올 때는 제법 어깨와 허리가 뻐근해져 왔다.


라이트닝 호수 주변의 (성긴) 풀밭 - 흙밭에는 이른바 '땅다람쥐 (Gopher)'들이 잔뜩 모여 살고 있는지 바닥에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었다. 광역 밴쿠버에서는 별로 볼 일이 없었지만 이곳이나 벤프처럼 고원 지역에 놀러 가면 항상 이 땅다람쥐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곳의 땅다람쥐들은 좀 더 사람들 경험이 많은 건지, 누군가가 풀밭 근처로 가면 어디서든지 뛰쳐나와서 ‘저 인간이 뭘 좀 주려나..’하면서 간을 보는 것 같았고, 때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구걸을 하기도 했다. 나나 아내나 야생동물에게 사람 음식을 나눠주는 행위를 그리 달갑지 않게 여기는 편이어서, 그냥 맨손을 내밀고 주는 척 뻥카를 날리다가 아내에게 등짝을 맞기도 했다.

지갑을 열게 만드는 저 표정, 저 자세. 그러나 맨손이었다






이곳 E. C. 매닝 주립공원에는 2018년 2월 패밀리데이 연휴에도 또 오게 되었다. 이때는 작은 캠핑 트레일러 (카라반)를 가지고 갔는데, 염화칼슘을 잔뜩 뿌린 고속도로를 달리느라 카라반 바닥에 녹이 다 슬고, 영하 20도의 지독한 추위여서 가스 난방 팬을 돌리는 RV 배터리에 이상이 생겨, 한밤중에 덜덜덜 떨며 일어나 배터리를 교체하는 등 사건 사고가 많았지만, 그래도 좋은 친구들과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2016년, 카누를 타고 돌던 라이트닝 호수는 이제 꽁꽁 얼어서, 반짝이는 눈으로 덮인 정경이 황홀한 스노우 슈잉  / 노르딕 스키 코스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차를 타고 조금만 내려가면 바로 매닝 공원 스키 리조트가 있었는데, 광역 밴쿠버의 스키장에 비해 비교적 완만한  초보자 코스가 있어서 처음 스키를 배우는 사람에게 더 좋았다. (그래도 엉덩이 깨지도록 넘어진 기억밖에 안 나지만…)






E. C. 매닝 주립공원 (E. C. Manning Provincial Park. https://bcparks.ca/explore/parkpgs/ecmanning/ ) : 프레이저 밸리의 동쪽 끝에 있는 도시 ‘호프 (Hope)’에서 3번 국도를 타고 26km 정도 달리면 공원 입구가 나오지만, 이 공원 자체가 동에서 서편으로 60km 걸쳐진 광대한 공원이기 때문에, 정작 캠핑장들이 모여 있는 라이트닝 호수까지는 서쪽 입구에서 30km 정도 더 가야 한다. 전체적으로 산악 고원 지역이라서 여름에는 호수와 등반코스로, 겨울에는 스키로 유명한 공원이다.


특히 겨울철 스키의 경우 굳이 겨울 캠핑을 하지 않더라도, 라이트닝 호수에서 3번 국도 출구 쪽으로 7km 정도 내려가면 매닝 스키장 리조트가 있어서 여기서 숙박을 할 수도 있고, 그 스키장부터 라이트닝 호수까지 주립공원 노르딕 코스가 연결되어 있어서 무료로 즐길 수도 있다.  6월에도 기온이 0도까지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곤 하지만, 매닝 공원이 워낙 광대한 너비의 공원이라서, 일기예보에서 0도라고 하더라도 그게 산꼭대기를 말하는 건지, 호숫가를 말하는 건지 사실 명확하지가 않다.


E. C. 매닝 주립공원에는 총 355 캠프 사이트가 5군데 캠핑장 (Lightning Lake Campground, Cold Spring Campground, Mule Deer Campground, Hampton Campground, Skyview Campground)에 나뉘어 있는데, 140여 사이트를 가진 라이트닝 호수 캠핑장이 그중 가장 크고, 샤워 시설도 세군데가 있다. 특히 라이트닝 호수 캠핑장의 경우, 캠프 사이트 간 간격도 널찍하고, 캠핑장 내 도로가 제법 널찍하고 포장도 잘 되어 있어 자전거로 다니기도 매우 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E. C. 매닝 주립공원은 스키장 옆이라 겨울 캠핑 기회도 제공하는데, 텐트를 짊어지고 오지로 들어가는 백컨트리 (Backcountry) 캠핑의 경우엔 미리 퍼밋을 받아야 하지만, RV를 이용한 캠핑은 라이트닝 호숫가 당일 피크닉 구역 주차장에서 할 수가 있다 (2021년 현재 하룻밤에 $23).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이기 때문에 식수, 샤워가 없는 건 당연하고, 모닥불도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가스 모닥불은 사용 가능). 하지만, 밴쿠버와는 달리 쨍하는 겨울 추위와 햇볕을 반짝반짝 반사하는 눈 덮인 라이트닝 호수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매닝 공원에서의 겨울 캠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2022년 1월에 새로 개장한 스카이뷰 캠핑장 (Skyview Campground)의 경우, BC 주립공원 최초로 풀서비스 (Full Service - 전기, 상하수도가 사이트에 포함되어 있고, 캠핑장 내에 샤워 시설,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를 제공한다고 한다. 겨울에는 62 사이트, 여름에는 92 사이트가 운영된다고 하는데, 지도상으로 보이는 캠핑장 세팅은 마치 민영 캠핑장처럼 주차장 세팅이라서, 일반적인 BC 캠핑장에서 제공하는 자연환경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겨울에 스키를 즐기는 사람이라든지, 여름에 호수에서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좀 더 편하고 저렴한 숙소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된다. 어쩐 일인지 2022년 1월 현재까지는, 주립공원 캠핑 예약 사이트가 아닌 별도의 웹사이트에서 예약을 받는다. (https://online.rezexpert.com/book?business_code=400340)



가까운 시내 : 호프, 프린스턴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1/5

이동통신 / 데이터 : 안됨 (2018년 당시)

프라이버시 : 4/5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있음

시설 관리 / 순찰 : 3/5

RV 정화조 : 있음

RV 급수 시설 : 있음

캠핑 사이트 크기 : 3/5 ~ 4/5

나무 우거짐 : 3/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있음

햇볕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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