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말했다.
연출자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연출자는 화가 나서 말했다.
연출자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면 나는 왜 있는 것입니까.
그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당신은 그냥 있는 존재입니다.
연출자는 기가 막혔다.
그는 연출자의 눈을 그대로 응시하며 말을 덧 붙였다.
당신은 이름만 연출자일 뿐이에요.
당신의 명패만 연출자일 뿐이에요.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이 세상의 그 어느 것 하나 바꿀 수 있다면
아마도 그건 당신 하나뿐일 거예요.
근데 그 마저도 당신은 아마 못할 거예요.
그래서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연출자는 꿈에서 깨어났다.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연출자는 노트북을 켜고 집필 중인 시나리오 파일을 열었다.
하얀 화면 위의 깜박이는 커서만이
여백 위에 우두커니 서있다 사라졌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