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읽기 위해 무구한 세월을 보내었고
너도 나를 읽기 위해 무구한 세월을 함께 지내었으나
결국에는 서신 한통으로 허망한 세월을 일단락 짓게 되었으니
이 어찌 통한스럽다 말하지 못하겠느냐
너는 나의 머리끄덩이를 붙잡아 사방으로 휘두르고
나도 잡히는 데로 너의 웃옷 아무 곳이나 잡아 휘갈겼지만
그럼에도 다음 날이면 나는 너에게 가지런한
국 한 그릇과 가슬한 밥 한 그릇과 몇 가지의 반찬의 상을 내다 주었지만
너는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갔지
이윽고 어스레한 저녁
술에 취해 들어와
해장국이나 해달라며
고래고래 소리치던
그 수많은 날들이 생각나
널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던 것도
수백 번이고, 수 번천인데
이런 나를 감히 네가 비난할 수 있겠소 묻고 싶다
내가 먼저 너를 버리고 싶었는데
내가 먼저 너를 버리지 못했던 것은
내 한 평생 제대로 된 가족 한 번 가져보지 못했던 통탄으로
나의 꿈을 너라는, 그리고 자식이라는
새끼와 함께 어떻게든 일궈 볼 심산이었다
그 꼬락서니가 어떤 모양새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가족이라는 명패만 나에게 쥐어져 있으면 되는 것이었고,
그 가족이라는 명패 안에 누구든지
아내, 남편, 자식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말 그대로 허울이 필요한 것이었다
당신은 나에게 아주 흉측한 허울이었다
당신은 나에게 아주 측은한 허울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나의 당신이 아닌
오롯한 당신으로서의 행복을 바란다
나의 당신도, 내 자식의 아비도 아닌
오롯한 당신으로서 행복함만이
당신이 우리를 찾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