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다
찾아온 당신에게
나는 미친 사람처럼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약을
두둑하게 제조해주었다
당신과 나는 이 주에 한번씩
정해진 장소에서 의례적으로 만났다
아주 더운 여름날에도
아주 추운 겨울날에도
당신은 나를 찾아왔고
당신은 나를 기다렸고
나는 당신을 만나주었다
한 동안 당신이 찾아오지 않음에
문득 당신이 궁금해졌으나
나는 당신에 대한 얄팍한 궁금증만을 품은 채
스스로 잊혀지게 내버려두는 것만이 최선인 사람이었다
일 년이 지나 당신이 다시 내게 찾아왔다
그 사이 당신은 더 살집이 붙어있었고
머리카락은 아주 짧게 잘려 있었고
얼굴은 무척이나 창백했으며
입술은 까슬하게 메말라있었다
과거에 지녔던 당신에 대한 궁금증이
흔적도 남겨지지 않을 정도로 퇴색되었을 즈음에
찾아온 당신에 대한 기억은 한 줌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설핏 기억나는 당신의 외형
그 하나만이 내 기억의 어쭙잖은 편린이었다
나에게 찾아오지 않는 동안
당신은 제 정신을 찾았다고 했다
약 따위 먹지 않고서 살아가고 싶다
소망했다고 했다
당신은
증오로 점철된
주체할 수 없이 뛰고 있는 심장의 소리를
잠재워달라고 재촉했고
허무로 매워진
축 처진 어깨를 잘라달라
애원했으며
그 마저도 어렵다면
잠시간의 잠이라도 제대로 잘 수 있게
도와달라 말했다
잘 오셨어요
라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미친 사람처럼
생을 살아갈 수 있는 약 몇 알을 처방해주었다
그는 웃었다
텅 빈 웃음이었다
나는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서 보는 웃음의 종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