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미래의 그리움.
어바웃 타임은 언제 봐도 감동적이고 뭉클하다.
주인공(Tim)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들은 과거로 돌아가 그 어린 시절의 아버지와 만나 해변의 뛰며 시간 여행하던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현재의 삶을 버거워하면서도 미래에는 가서는 그날들을 그리워한다. 그때의 공기, 그때의 내 아이, 나의 부모님이 그리워서. 어쩌면 현재는 살아내느라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그 삶의 가치가 얼마나 값진 지를 깨닫게 되어 그런 것이 아닐까? 미래로 가야지만 이 시간이 간절해지는 아이러니.
아이를 낳고 같은 하루하루가 반복되던 그 시기에는 출산 후 시린 손목을 돌볼 새도 없이 분유 먹이는 시간과 양, 대소변 시간, 잠자는 시간까지 빼곡히 공책에 적어 내려가던 생활이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끝없는 설거지, 빨래와 수면부족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모를 정도로 밤낮을 모르던 그 시절이 이제는 너무 아득해져 버렸다. 어느새 아이는 걷고 말을 하게 되었고, 이제는 귀가 아플 정도로 쫑알 되는 시간이 언제 끝나려나? 내가 언제까지 이 아이에게 옷 입어라, 씻어라, 양치했니. 이렇게 말을 해야 하나 싶다. 그러다가도 문득, 이 순간도 미래의 어느 순간, 나는 그리워하겠구나. 아이의 하루하루가 내 그리움이겠구나 싶어 글을 남기고 싶어졌다. 지금은 어린아이를 돌보느라 지친 엄마들, 지나고 보면 우리가 얼마나 귀여운 생명체를 키우고 있었는지 감탄하게 될 텐데 지금은 절대 모를 것이다. 이 날들을 기록해야만 한다. 기록만이 그때를 느낄 수 있다.
지금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아이를 임신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까지는 ‘나도 엄마가 되는구나.’라고 막연하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병원에서 ‘00 어머님’이라고 불리는 그 순간. 진짜 내가 이 아이의 엄마구나.. 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서 설렘 반과 함께 두려움이 와닿았었다.
그 두려움이 무엇일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제 이 생명은 의지할 곳이 나뿐이며, 내 모든 책임으로 키워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체 울음으로 표현한다. 이유는 대부분 ’ 안정요구‘이다. 어른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물질적으로는 건강한 음식 제공이며, 안전하게 살 수 있는 환경, 정서적으로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랬던 것처럼. 이 것이 아이에게 필히 충족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 중요한 것은 뒤로한 채 태어나자마자 키와 몸무게 백분율로 아이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메슬로우의 욕구위계이론 (Maslow's Hierarchy of Needs)에서 나오는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 욕구의 단계가 있는데 이는 사람이 타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학습과 환경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는 아이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해 주면서 아이가 다음 단계로 성장해 나가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내 아이가 100명 중 1등이라고 자랑하고, 100명 중 99등이라고 슬퍼할게 아니라, 내 아이로 태어난 이 아이를 부모인 내가 어떻게 최적화된 ‘맞춤 서비스’를 해줄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 기본적인 욕구 충족에 중에 1단계 생리적 욕구조차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 2, 3 층의 계단을 오르지도 않은 채, 4단계인 사회적으로 시각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이 싫어서 떠나온 것은 아니다. 막연하게 캐나다가 낫다고 생각해서 결정한 것도 아니다. 이미 유럽과 북미의 교육을 접해본 나와 남편은 한국에서 사회생활도 경험해 보고 우리 맘에 안 드는 ‘교육’을 이유로 이 나라를 선택했다.
이 나라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가 어렸을적 지냈던 국민학교, 초등학교처럼 학교는 거의 조금은 오래앉아있지만 놀러가는 곳이다.
아이가 이제 만 8세가 된 지금. 우리의 삶의 방향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화살표를 한번 더 확인하며 아이의 순간들을 기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