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과 긍적은 한 끗 차이

아이는 생각보다 많이 철학적이다.

by Vanlomo

< 이 게임이 너무나 하고 싶은 나머지 레고로 이름을 완성했다.>





아이는 요새 한국말이 조금씩 어눌해지고 있다.

18개월부터 만 48개월까지 영어라고는 A도 접하지 못하게 고집했던 엄마아빠 덕에 한국말을 완벽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우려대로 학교에 들어가고나서부터 점점 어눌해졌다.

그래서 가끔은 빠른 이해를 위해서는 영어로 말해주는 게 더 효과적이다. 내가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을 때 아이가 속상해서 주로 표현하는 말이 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뜻은 머릿 양쪽에 나사가 잘 조여졌다는(screw) 말인데, 지금 그 나사가 풀어지고(unscrew) 있어요.” 이 말은 엄마가 지금 밉다는 뜻이다. 아이는 이 슬픈 감정을 극대화해서 말하고 싶었는데 난 그저 너무 웃기고 기발해서 웃느라 아이의 슬픈 기분을 더 망치기도 한다.


오늘 밤도 또 하루의 철학적인 밤이었다.

아이가 잠들기 직전, 주말에만 주어지는 그 귀한 30분의 게임을 하지 못한 것을 기억하며 슬퍼하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께서 만들어주신 수학문제를 풀면서 하는 게임이다.

“엄마!! 엄마!!! 어떡해요 엉엉”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오늘 게임을 못했잖아요. 엉엉”

빨래를 개면서 이제 곧 하루가 마무리되는구나 싶었던 나도 날벼락이다. 물론 나보다 네가 더 큰 날벼락이었겠지만...


“그래 슬프지. 하지만 그다지 억울하지 않을걸? 잘 생각해 보면 너도 하기로 했던 문제집 하나도 안 풀었잖아.”라고 반격을 하자, 더 눈물이 샘솟는다.


학교 선생님께서 반 아이들에게 ‘숙제도 아니고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께서 허락한다면 할 수 있는 ‘ ’ 게임’이라는 명목 하에 서로 약속된 게임이 얼마나 흔치 않은 기회인데 아이는 너무나 억울하다. 심지어 전날에는 친한 친구와 엄마들끼리 약속된 시간에 30분간 서로 접속해서 한 게임이 너무 재미있어서 더욱 기다렸던 것이다.


내가 자주 만나는 캐나다 부모들은 게임을 허락하지 않고 스크린타임조차 주말만 1-2시간 허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왕이면 밖에서 놀거나 활동하는 수업을 연장하는 부모가 많다. 처음, 선생님께서 이런 게임을 공식적으로 공개했을 때, 대부분의 부모들은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그저 우리 부모들끼리 부정적일 뿐, 선생님께 굳이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선생님의 결정은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고, 강압적이지 않았기에 부모가 안 시키면 되니까. 하지만, 그 기회를 놓칠 아이들인가? 최대한으로 절충을 한 것이 주말 한정인 것이다.


그 슬픔이 가시지 않은 채 침대에 누운 아이에게 시간을 줘도 그 슬픔이 가시지 않아서 나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너무 슬프지? 다시는 못할 것 같아?라고 묻자, 아니요, 할 수 있는데 슬퍼요.

“지금 머릿속은 Negative로 가득 차있어요. “

라고 말한다.


“그럼 그 반대말은 뭐야?”라고 물어봐주자, 지금 Positive를 향해 가고 있는데 너무 멀어서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한다.

나도 조금 기다리다 말해줬다.

“사실, 엄마도 잘 몰랐는데, Negative와 Positive는 그리 멀지 않아. 마음먹기 나름인 것 같아. 엄마도 나이 들어서 이제야 조금 깨달은 거야.”


아이의 눈에 눈물이 멈추고 반짝거린다. 어두운 방에 밖에서 은은하게 들어오는 간접 조명에 눈이 그렇게 반짝일 수 있는지, 눈물이 차오르는 게 멈춘 것은 확실했다.

“너무 깊이 생각하면 슬픔이 더해질 수 있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바로 바뀌는 게 사람 마음이야.”

내가 만 8세 아이에게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를 때가 많지만, 아이는 막연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양손의 작은 검지손가락 두 개를 펴면서 ”이쯤일까? 아까는 이 정도로 멀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가까워진 것 같아요. “라고 말한다. 아이는 슬플 때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는 나는 바로 “이것 봐! 신기하다! 눈물이 멈췄어! 이 눈이 얼마나 이쁜지 알아?” 그러자, 멋쩍은 듯 웃는다. “우리 아빠한테 인사하러 오라고 할까?”하고 대화를 전환시킨다. 큰 소리로 아빠~ 하고 부르자 이 이야기를 계단에 앉아 다 듣고 있던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올라왔다.

“엄마아빠도 울고 싶을 때가 많아. 어릴 때도 많이 울었고. 그런데, 더 이상 울지 않는 것은 그게 영원하지 않은 것을 알아서야. 영원히 슬픈 것은 없어. 커가면서 너무 슬픈 상황이 와도 그건 언젠가는 끝나니까 걱정하지 마. “ 아이의 입장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도 아이도 아는 것 같다. 지금 엄마 아빠가 Negative에서 Positive로 가도록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가끔 아이와 기록을 하고 싶을 만큼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물론 언제나 이렇게 이상적인 대화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어느 때에는 이제 그만하고 자야지!라고 짧게 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노력을 해서라도 밤은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아이와 일어나는 이 모든 일들을 담아둘 수 없지만, 내가 노력했고, 우리가 성장한 이 순간들은 글로 적어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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