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전에 취직하기
나는 오늘 캐나다에 와서 처음으로 고용계약서에 사인했다.
유아교육과를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절차 중 하나가 어린이집 20시간 자원봉사였다. 나는 집 근처 아이가 다녔던 곳과 또 다른 몬테소리, 아이학교 안에 있는 프리스쿨에 문의했고 결과적으로 가장 빨리 연락 왔던 학교 내의 프리스쿨에서 20시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선생님께 추천서(Reference)를 받았다. 사실 20시간 후 바로 그만 나가도 되는데 나는 뭔가 감사하고 1주에 한 번이니까 그냥 쭉 나가고 있었다. 이제 슬슬 그만하고 공부준비해야 하나 싶은 금요일. 선생님께 이메일이 왔다.
갑자기 영국에 계신 어머니가 낙상사고를 겪어 골반이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고 본인이 가서 도와드려야 한다고.
선생님은 본인이 영국에 가있는 동안 대타 선생님을 구했는데 그때 내가 함께 일해줄 수 있냐며, 가능한 날이 언제인지 구체적으로 명시해줄 수 있는지 물으며 ‘I’ll pay you.’라는 말과 함께 다급해 보이는 이메일을 보내셨다.
아니, 내가 전공도 안 했는데 일을 하라고? 일단 놀랐지만, 우선 선생님이 더 놀라보이셔서 답메일을 보냈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저는 기꺼이 가겠습니다. 수요일 하루 병원 예약한 것 말고는 저는 일정이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너무 놀라셨을 텐데 모든 일정이 정해지면 제게 알려주세요.
내가 가능하다는 메일을 보내자, 원장선생님 부재 시의 행동요령이나 루틴, 아이들 성향을 응급 시 주의할 점, 연락처 등 자세한 내용을 공유하셨고, 몇 번의 이메일을 주고받고 월요일이 되었다. 선생님은 피곤해 보이지만 그래도 밝은 얼굴로 고맙게 또 이야기해 주신다.
“온다고 해줘서 고마워. 내가 정말 마음이 놓여요.”
“ I really appreaciate your help.”
나 또한 이 말이 너무 고마웠다. 내가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봐주신 거니까.
일요일에는 이미 임시로 오실 선생님께도 이메일과 문자가 왔다. 우선 말이 따뜻해 보였다.
대망의 화요일.
나, 임시선생님, 원장선생님. 이렇게 셋이 일하는 첫날이었는데, 내 첫 직장생활의 날이 난 너무 따뜻했다.
우선, 나와 임시선생님(메이)에 대한 존중을 느낄 수 있었다. 메이 선생님은 원장선생님과 비슷한 60대 정도로 보였는데, 내가 아이들과 있느라 앉아있으니 내 앞으로 와서 웃으며 “첨 뵙겠습니다. 저는 메이예요. 반가워요. 잘 부탁합니다. ”란다. 세상에 딱 봐도 베테랑 선생님인데 내게 뭘 부탁한다고?!
그러면서, 나보다 여기 더 익숙한 사람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 고맙다고 한다.
저녁비행기로 떠나야 하는 원장선생님께서는 그렇게 하나하나 알려주시다가 메이에게 이렇게 말하신다. “제가 굳이 할 말은 많지 않아요. 앞으로 3주간 여기는 당신의 놀이터예요. 제가 혹시 전하지 못한 말 있으면 연락할게요. 아니, 근데 안 할 것 같아요. 저는 오늘 저녁 비행기를 타고나면 앞으로 부모님과의 시간만 생각할 거예요. 당신은 이미 당신의 프리스쿨의 오너니까 여긴 하던 대로 하셔도 돼요.”
원장선생님은 나와 메이선생님께 고용계약서를 주시며 사인하라고 하셨고, 나는 시급을 보고 또 나를 얼마나 존중해주셨는지 느낄 수 있었다.
오전반 수업이 끝나고 셋이 싸 온 점심을 먹으며 30분가량 대화가 이어진다.
(A - 원장님, B - 메이, C - 나)
A : 프리스쿨이 아담하고 아이들도 많지 않아서 금방 적응될 거예요. C도 아이들과 익숙하니까 도움도 많이 될 거고요.
B : C에게 너무 고마워요. 이제 곧 공부가 시작되겠네요. 많은 아이들을 상대하는 연습도 할 거예요. 아마 혼란스럽겠지만 다 지나고 나면 많이 배울 거예요. 데이케어는 정말 어렵겠지만!
C : 앞으로 배울 게 많을 테니 잘 기억할게요. 저도 데이케어에서 봉사한 적이 있어요.
A : (너무 재밌는 이야기라는 웃음으로) 아 그래 맞아! 너 거기 몇 번 나가고 그만뒀잖아? 그 얘기 좀 해봐.
C : 그곳엔 룰이 거의 없었어요. 그냥 아이들을 돌봐주는 곳이지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요, 보안상 제게 건물 키를 주지 않아서 야외에서 놀다가 실내로 왕복하기가 어려워서 보통 밖에서 2-3시간씩 보내다 보니 포기했죠.
A : 맞아. 두 번인가? 하고 바로 도망쳐 나왔잖아? 하하!! 근데 나도 사실 데이케어 너무 어려울 것 같아.
B : 저도요. 진짜 못하겠어요.
C : not only me? Thank you for understanding!
B : 하지만 교육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기관으로 실습 보내질 거예요. 각오해요^^
그러다가 지금 어느 마트에서 전복이 세일한다더라, 선생님 영국가시면 바쁘겠네요. 저도 남일 같지 않아요. 부모님께서 캐나다로 오셔서 같이 사셨으면 좋겠어요. 등등 사소한 이야기를 하다가 오후반 아이들 특성을 말하며 쌍둥이 여자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A : 오후 반에 쌍둥이 아이들이 있어요. 정말 너무 똑같이 생겼어요.
B : 구별방법 알고 계신가요?
A : 아직 찾지 못했어요.
C : 선생님, 엠마 눈 밑에 작은 점이 있어요!
A : 그래요?? 이따 꼭 봐야겠네.
그러면서 오후반에 오는 다른 선생님(특별케어)께도 공유를 하자 모두가 드디어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며 고맙단다. 그 쌍둥이 아이들이 처음 프리스쿨에 왔을 때 그야말로 ‘Wild’였다고 한다. 그러자 메이선생님이 어떻게 나아진 거냐고 묻는다.
선생님은 딱 한 단어만 지키자고 아이들에게 말했다고 하셨다.
’Respect’
모든 아이에게, 내 가족에게, 물건에게, 내 자신에게 존중을 하면 심각한 상황으로 가지 않는다고 반복해서 말하자 아이들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셨다.
나는 이 프리스쿨에서 자원봉사가 아닌 근무를 한 첫날이었는데 이 한 단어가 참 따스하고 감사하고 몸으로 체험한 하루였다.
첫 근무가 끝나고 내가 오랫동안 다니던 한국에서 회사를 떠올렸다. 성공적으로 끝냈던 일들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결국 존중이었다.
‘존중‘을 하며 대한 관계와 프로젝트는 대부분 잘 마무리 지었고 존중이 없이 욕심과 일방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결과가 항상 안 좋았던 것이다.
고용이 되어 일하는 관계에서도 서로 이렇게 존중만 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싶다. 물론 이제 첫날이지만 둘째 날 또한 큰 부담이 없다.
아이들이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내가 더욱 행복하니 이제야 천직을 찾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