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한국인 조심?

이민자의 삶

by Vanlomo

우리 가족은 아이가 8개월인 시절 캐나다 땅을 처음 밟았다. 그리고, 우연치 않게 만난 아이 또래의 한국 가족들과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어리기도 했고 대부분 온 지 얼마 안 된 가족들이라 뭐든 처음을 같이 한다는 의미도 있었고 한참 육아가 힘든 시기라 서로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큰 도움이 되었었다. 그리고 그 인연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2년쯤 지낸 후 아이가 두 돌 반쯤 되었을 때, 코로나 확진자가 캐나다까지 발생했다. 그래서 우리는 시부모님이 계신 밴쿠버로 이동하였다.

이사를 하고 나서도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새로운 환경에 또 적응해야 하는데 아이는 하루 종일 나와 붙어있어야 하고, 그나마 시부모님께서 도와주셔서 조금이나마 편했지만 난 한국인이 참 고팠다.

놀이터에 가도 삼삼오오 모여있는 아이들을 보며,

“엄마, 제 친구들은 언제 와요? 우리 다시 거기로 이사 가면 안 돼요?” 이러는데.. 참 마음이 아팠다. 나도 아이의 엄마들이 너무 보고 싶은데 아이도 당연히 그리워했다.

그렇게 매일을 집 앞 놀이터에서 놀다가 어느 날 한국가족들이 있는 것을 봤다. 그들은 코로나라는 상황에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나와 우리 아이를 경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아이가 다가가도 인사도 거의 하지 않았고 내가 밝게 인사했지만 바로 가까운 곳에 있었음에도 눈길도 안 주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그 외에도 한국인이 많은 동네 놀러 갔다가 안녕? 하고 밝게 인사하는 우리 아이와 인사도 없이 멀리 떠나버리던 한국인들..


이제 이주한 지 8년이 되어가는 지금 그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는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그 당시에는 참 매정하고 서러웠지만 만약 여기가 한국이라면?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인사하는 게 이상해 보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경계를 하려고 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너무 당황스러운 질문들과 나와 템포가 맞지 않은 대화라 생각되면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두게 된다. 그리고 한국말을 하는 것을 서로 뻔히 알지만 서로 누가 먼저다가 가지 않는 그런 상황에 가족들도 있다. 이 상황은 굳이 누가 먼저 일부러 만든 상황이 아니라 그들 또한 나처럼 관계에 대한 피곤함을 느낀 사람들일 수 있어서 굳이 다가가지 않았다.


나는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 이곳 생활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여기서 나와 친한 비한국인 친구들 또한 이런 상황을 자주 겪어와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웬만하면 단기로 있는 친구들과 굳이 친해지려 하지는 않는데 짧게 있다가도 좋은 사람이고 나와 잘 맞는 성격의 친구라면 그 시간도 소중히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간 밴쿠버에서 만난 친구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만나거나 방과 후 활동으로 만났는데 우리 가족에게 아주 좋은 기억을 주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밴쿠버라는 지역 특성상 이곳에 정착하여 오래 사는 가족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다. 나 또한 지난여름에 그 동안 정말 친했던 가족들을 모두 한국에 보내면서 (정말 한꺼번에 갔다.) 이런 짧은 만남에 대한 회의 감도 살짝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좋은 사람이고 소중한 인연이 된 인연이 많기에 그 시간도 감사히 여긴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이 상황을 당연히 이해할 수 없다. 한국으로 돌아 간 아이들의 안부를 부르며 언제 돌아오는지 종종 묻는다. 그리고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는지 세세하게 묻고 결국 눈물을 보인다. 이런 상황을 계속해서 만들어 주는 것은 아이에게도 조금은 상처이지 않을까 싶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국에서 1년 살기로 온 가족을 학교에서 만났다. 그런데 이 가족은 대화부터 쉽지 않았다. 갑자기 묻는 학원정보들이며 영어는 어떻게 배우는지 등등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정보들을 묻기 바빴다. 나도 일이 있어서 잠시 5분 정도 대화한 것이 다였지만, 다시 한번,

‘아! 한국인이라고 내가 도와줘야 할 의무는 없지.’라는 마음을 굳히게 됐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인터넷만 뒤지면 나오는 정보가 한 트럭인데, 내가 궁금하지도 알지도 못한 정보를 빠르게 얻고 싶어 하는 그 태도에 내가 이제껏 만나온 감사한 친구들과는 거리가 멀다고 단번에 느꼈다.


인간관계는 서로 간 거리의 장단, 지식의 높낮음, 재산의 차이로 구분지어질 수 없다.

거리가 멀어져도 서로가 존중하며 듣고, 지식의 차이가 있어도 예의를 차리며, 배려하는 마음으로 상호 간의 마음을 나누는 게 인간관계의 첫 단추라 생각한다.


그런데 급한 마음에 말이 통하는 한국인이라고 다짜고짜 ‘아이스브레이킹’도 할 시간이 없이 전진하는 모습은 참으로 무례해 보였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조바심 나는 모습으로 내게 비슷한 질문들만 늘어놓아서 나라도 예의를 차리자 싶어 정중히 말했다.

“아마도 단기로 오신 분들끼리 한국 돌아가기 전에 해야 할 과정들을 공유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사실 잘 몰라서 제게 물으시는 것에 답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가 만난 단기로 왔던 지인들은 대부분 열심히 놀다 가더라고요. 놀면서도 영어를 하니 배우는 것은 분명 있을 거예요.”

그러자, 친구는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를 묻는 질문에 조바심 느끼지 말고 잘 찾아보시라 둘러대며 걸음을 재촉했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이미 이곳에 자리 잡은 이민가족에 해당하는 내가 텃세를 부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가족은 이곳에 살고 싶어서 나름의 노력을 해서 이민을 왔고, 지금 너무나 내 터전인 이곳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내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한국에서 살 때 굳이 다른 사람에게 선뜻 다가가서,

“저기요! 저 여기 잘 모르는데 마트는 어디 가야 해요? 어디가 싸요? 어디가 젤 맛나요? 아이들은 어디 학원 보내요? 반찬은 사 먹어요? 집에서 해먹어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들 생각에 나는 이미 다 알 테니 내게 정보를 다 쏟아내 줘~라고 하지만, 내가 왜? 내게도 소중한 내 시간이 있고 하루 종일 바쁜데, 굳이 맘에도 안 맞는 무례한 사람에게 왜?



모든 한국인이 그런 것은 아니니, 항상 그런 생각으로 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적응해야 하는 그들과 여기서 노년까지 바라보고 있는 나는 아무래도 나와 오랜 친구가 아니 이상 이해 하기 힘든 벽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도움을 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가 애정하는 예의바르고 존중을 아는 친구들은 굳이 내가 아는 모든 정보 특히 맛집 정보를 탈탈털어 알려주는 편이다.


사실 밴쿠버에서 그 정보를 주로 공유하는 친한 친구 중에 한국말을 하는 친구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영어를 엄청 잘하는 것은 아니다.

단 한가지 확실한 것은, 굳이 한국 말이 하지 않아도 내가 슬픔과 기쁨을 나눔에 있어 언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것은 인종과 상관없이 만국공통이니, 해외에 나오실 분들은 그저 서로 존중과 배려만 있으면 생각보다 더 많은 찐정보들을 얻게 되실거라 이야기하고 싶다.


이렇게 글을 쓰고나니, 오늘 더더욱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들이 보고 싶어 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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