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드카 아카이브 Oct 13. 2022

조랑말은 달리고 싶었다 :
현대 포니 쿠페

[아카이브 프로젝트 : 11]

현대자동차, 아니 이탈디자인이 선보인 '아소 디 피오리'는 훗날 대한민국 최초의 콘셉트카로 평가받게 된다. ⓒ Hyundai

HYUNDAI PONY COUPE (Asso Di Fiori)

[Archive 009] 1974, Designed by Giugiaro's Italdesign. ⓒ Dong Jin Kim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콘셉트카'라는 것은 존재는 커녕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자동차 문화를 탓하기 이전에 '자동차'라는 물건 자체가 아직 생소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1974년 '아소 디 피오리'를 공개하며 우리나라에 콘셉트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한 선구자가 되었다. 이 차량은 같이 공개된 일반형 포니와 달리 매끄러운 쐐기형 스타일의 2 도어 쿠페의 외관으로 외신의 관심을 톡톡히 끌 수 있었다.

원형 4구 헤드램프는 이후 사각형으로 교체되었다.

그 시작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자동차는 자사의 첫 독자모델로 '110' 프로젝트를 착수했다. 그간 포드의 대형차를 현지 생산하는 수준에 그쳐왔던 판세를 완전히 뒤엎는 결정이었는데, 이는 차량의 국산화율이 73%에 못 미칠 경우 부품 수입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정부 자동차 육성계획'의 영향이 있었다. 바빠진 현대는 여러 기업과의 협상 끝에 미쯔비시 랜서 기반의 스킨 체인지 모델을 개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게 되었다. 이윽고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 '이탈디자인'에 차량 디자인 외주를 주기로 결정하고, 재빨리 인력을 파견시켜 빠른 시일 내에 독자모델을 공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현대 포니와 포니 쿠페이다.


포니 쿠페는 일반형 포니와 동시에 개발되었다. 하지만 양산화를 전제로 개발한 차량이었음에도 포니 쿠페의 개발기간은 8개월에 불과했다. 1974년 2월 25일, 현대자동차와 이탈디자인은 설계에 착수하면서 동년 10월 30일부터 개최되는 제55회 토리노 국제 모터쇼에 1호 차를 출품하기로 합의했고, 4월 5일부터 프로토타입 제작에 들어가 (비공식적으로는 2~3 개월 전부터 제작 작업을 준비함.) 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정을 소화하는데에 성공했다. 홀로 대한민국 국적으로 참여한 현대자동차는 당시 인기 탤런트 '양정화'를 모델로 내세우며 포니와 포니 쿠페 총 두 대를 출품했다. 결과적으로 포니와 포니 쿠페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영국의 유명 신문 '더 타임즈'에서는 이 두 차량을 토리노 모터쇼에서 가장 흥미로운 차량이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스즈 피아자의 원형이 된 79년형 아소 디 피오리.

포니 쿠페의 본래 이름은 바로 '아소 디 피오리'였다. 이탈디자인은 1968년 설립 후 초기 시절 아우디 '아소 디 피체'를 시작으로 '아소 디' 시리즈를 전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탈디자인은 시리즈의 두 번째 일환인 '아소 디 피오리'라는 명칭으로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하기로 했지만, 개막 전날에 현대자동차의 경영진이 갑작스럽게 ‘포니’ 명칭으로 출품할 것을 제안하면서 '아소 디 피오리'는 '현대 포니 쿠페'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이 급박했던 상황은 출품 이전 배포된 보도자료가 모두 포니 쿠페를 아소 디 피오리라 칭하고 있는 것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뒷배경을 살펴보고 나면 5년 후인 1979년 이탈디자인에서 '아소 디 피오리'라는 동명의 콘셉트카가 출품된 것도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다. 동일한 디자인 콘셉트를 기반으로 업데이트를 거쳐 이스즈의 명의로 나오게 된 두 번째 '아소 디 피오리'는 훗날 이스즈 피아자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어찌 보면 현대에서는 결과적으로 빛을 보지 못했지만 이스즈에선 빛을 본 셈이다.


나름 2+2 시터 페스트 백 쿠페의 모양새를 띄고 있었지만, 성능에선 일반형 포니와 다를 것이 없었다. FR형식에 미쯔비시 새턴 엔진과 4단 수동변속기를 맞물려 1,238cc (보어 x스트로크 73mm x 74mm), 최고출력 80 ps/6,300 rpm (82마력이라는 설도 있음.), 최대토크 10.8 kgf·m/4,000, 최고속력 155 km을 보여주었다. 크기는 전장 4080 mm, 전폭 1560 mm, 전고 1210 mm, 축거 2340 mm, 전후 오버행 각각 875, 865 mm로 일반형보다 다소 큰 크기를 지녔다. 타이어 규격은 6.15 x 13 - 4P.R로 랜서와 동일했다.


현대 포니 쿠페는 2가지 버전이 있다. 동일 차량인지는 알 수 없으나 루프 구성, 휠 등에서 차별화되었다.

당시 현대자동차의 사장직을 겸하고 있던 정세영 회장은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포니 쿠페를 수출전략형으로 계획해 1975년 말 출시할 예정임을 밝혔다. 하지만 시장성에 대한 의문과 오일쇼크 사태로 인해 현대자동차는 포니 쿠페의 양산을 계속 지연시켰다. 양산형 개발은 이미 완료 수준에 다다른 상태였으며, 3개월의 시험 기간을 거쳐 1978년 중순 생산하는 것이 원 계획이었다. 하지만 보류된 이후 1979년에는 포니 3 도어와 함께 동년 10월 출시를 목표로 프로젝트가 잠시 진행되었다. 하지만 1981년 8월에 생산 계획을 전면 폐지하면서 포니 쿠페의 역사는 끝을 맺게 된다.

포니 쿠페의 디자인은 존 드로리안의 취향을 저격했다.

한편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되었던 포니 쿠페 1호차는 폐막 직후 한국으로 건너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보관되었다. 그리고 1977년에는 현대자동차의 창립 10주년을 기념하여 여의도 기계 공업 전시관에서 개최한 종합 자동차 전시회에 다시 출품되었다. 이때 출품된 포니 쿠페는 토리노 모터쇼의 그것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는데, 휠은 포니 양산형 부품으로 교체되었으며 루프에 블랙 도색을 얹어 투톤 리버리를 구현했다. 이 행사를 마지막으로 현대 포니 쿠페의 행방은 알려져 있지 않다. 현대자동차 내부에서도 모르고 있다. 한국의 첫 콘셉트카임에도 관리는 철저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포니 쿠페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무엇일까? 포니 쿠페는 앞서 언급한 이스즈 피아자 외에도 DMC 드로리안의 모티브가 되었다. 종종 순서를 바꿔 드로리안이 포니 쿠페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도하는 사례가 있는데, 실상은 토리노 모터쇼를 둘러보고 있던 '존 드로리안'이 출품된 포니 쿠페를 관람한 이후 이탈디자인에 디자인을 의뢰한 것이다. 당시 GM 부사장직에서 사표를 내고 자신만의 스포츠카를 만드려 했던 존 드로리안의 디자인적 선구안은 훗날 전설적인 아이콘이 되는 드로리안의 탄생을 이끌었다.

약 반세기가 지난 2019년에는 출품 45주년을 기념하며 포니 쿠페에서 영감을 받은 '45' 콘셉트 (훗날 아이오닉 5로 양산)이 공개되었으며 2022년에는 자사의 수소 기술을 테스트하기 위한 롤링 랩 차량인 'N 비전 74'에 영감을 주었다. 참고로 명칭 속 74는 포니 쿠페의 공개 연도인 1974년을 뜻한다. 포니 쿠페를 다시금 미디어에 불러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 2021년부터는 전 세계 공전의 히트를 친 FPS게임 '배틀그라운드' 속 탈것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2022년 11월 24일, 현대가 주최한 '주지아로 디자인 토크쇼'에서 이상엽은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현대자동차와 협업해 포니 쿠페를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남은 자료라곤 사진 몇 장과 도안 뿐인 상황에서 당시 제작자의 육감을 믿어보자는 것이다. 주지아로는 이에 매우 영광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현대와 이탈디자인의 협력은 이르면 2023년 봄에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있을 예정이다. 45년 전, 한국의 조랑말은 달리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노마(老馬)는 다시금 달리기를 준비하고 있다. 

TIMELINE

1974.10.30~1974.11.10 : 제55회 토리노 모터쇼 출품

1977.09.17~1977.09.26 : 창립 10주년 기념 종합 자동차 전시회 출품

현재 소재: 불명


REFERENCE

매일경제 '내9월부터 생산 현대자동차 소형승용차 포니' 1974.12.16

매일경제 '10분 인터뷰: 정세영씨 이탈리아 국제모터쇼에 다녀온' 1974.11.18

동아일보 '세계의 자동차는 실용 소형화 경향' 1974.11.07

경향신문 '국산승용차 세계로달린다' 1974.12.11

동아일보 '국제자동차쇼우 국산포니 승용차 큰인기' 1974.11.01

동아일보 '[사진] 양정화' 1974.1.06

매일경제 '포니 부품개발 착수' 1975.03.04

매일경제 '현대자동차 신종모델 승용차 10월 시판' 1979.04.06

글로벌오토뉴스 '한국 최초의 컨셉트 카인 `포니 쿠페' 2005.11.30

알고두 '현대 포니 쿠페.' 2004.12.17

위키피디아 'Hyundai Pony' 2022.10.12

한경뉴스 '[송종훈의 馬車 이야기①]현대차 포니와 조랑말 포니' 2015.07.14

이충구 '두번째 이야기… 한국 최초 고유 모델 포니를 위해' 2009.06.01

매일경제 '포니 쿠페, 45년만에 전기차로 부활…현대차, 콘셉트카 `45` 티저 공개' 2019.08.22

문화재청 '포니의 신화 이야기' 2015.03.09

COCKPIT 'Hyundai Asso di Fiori by ItalDesign (1974)' 2021.07.17

하입비스트 '현대자동차, 실제 양산되지 못했던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나선다' 2022.11.24

현대자동차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의 가치, 포니 쿠페 복원 프로젝트 (with 조르제토 주지아로) 2022.12.12


수정내역:

2022.12.13 복원 프로젝트 관련 서술 보충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