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프로젝트 : 19]
[Archive 019] 1993, Designed by kia. ⓒ Dong Jin Kim
정부는 오래전부터 국민차 사업을 검토해 왔다. 합리적인 가격의 국민차를 생산하는 것을 통해 대형차 위주의 기형적인 시장 구조를 타파함과 동시에 차량 보급률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 한동안 시행 방법에 대해 난항을 겪었으나. 1980년대 말부터 이를 뒷받침할 세제 혜택이 꾸려지며 본격적으로 사업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에 현대, 대우, 그리고 기아는 경차 시장에 도전장을 낸다. 하지만 규모도 미처 확인되지 않은 세그먼트에 '모험'을 감행할 수 없었다. 먼저 시장에 뛰어든 대우와 아시아는 각각 스즈키와 다이하츠의 경형 모델을 OEM 생산하는 방법으로 1991년 티코, 라보/다마스, 1992년 타우너를 출시했다. 현대차 역시 미쯔비시의 경형 모델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러한 행보에는 차량 개발 비용을 줄여 위험부담을 줄이고자 한 속셈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경차가 일본의 손을 빌리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기아는 아시아 타우너를 통해 경상용차 시장에 선행 진출하고, 엔진과 차체에 걸쳐 독자개발을 감행한 M·카를 통해 경승용차 시장에 본격 진출하고자 했다. 하지만 기아는 창립 이래 경형급 차량을 생산해 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M·카는 1989년부터 개발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개발 착수 2년 만인 1991년 9월, 기아는 'PA 엔진'을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88년 3월부터 91년 9월까지 200억을 들여 완성한 PA 엔진은 3 기통 9 밸브 형식으로 796 cc의 배기량을 지닌 경형급 엔진이었다. 완성된 PA엔진을 장착한 M·카는 주행 성능 테스트를 진행하며 완성도를 높여갔다. 그리고 1993년 말, 기아는 성능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동경 모터쇼에서 그 결과물을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공개했다.
당시 출품된 M·카는 실제로 1993년 초 완성된 러닝 프로토타입이었다. 공기저항 계수를 낮추기 위해 유선형으로 디자인한 차체는 다른 경차들과 대비되는 특징이었다. 크기는 전장 3,495mm, 전폭 1,495mm, 전고 1,400mm로 티코보다 전체적으로 큰 모습이었다. PA엔진을 기반으로 5단 트랜스미션을 맞물려 고속 주행 역시 고려했다.
하지만 기아는 여전히 경차 도입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 경차에게 '낮은 수익성'이란 항등식과 같았고, 당시 시중에서 유일하게 판매되고 있던 경차 '티코' 역시 만성적인 판매량 부진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기아는 M·카의 개발을 끝낸 상태였으나 생산 설비 착공을 유보한다. 당시 기아 관계자는 인터뷰를 통해 "현재의 경차 기준으로는 약 2,000억에 이르는 설비 투자 자금을 회수하기 어렵다"라고 언급하며 경차 시장에 대한 회의감을 표출했다. 출시 예정 시기 또한 1993년 초에서 1995년, 1996년으로 밀리게 되었다. 제1회 서울모터쇼에 '모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품되면서 프로젝트가 건재함을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판매는 불투명했다.
그리고 1995년, 이에 쐐기를 박은 사건이 터진다. 바로 경차의 배기량 기준을 놓고 대우국민차와 현대자동차가 분쟁을 벌이던 와중, 정부가 '기준 배기량을 1,000 cc로 상향'하는 안을 요구한 현대차 대신 '800 cc로 동결'을 요구한 대우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내수 판매 만으로는 수익성 측면에서 승산이 없음을 자각한 현대차는 수출을 염두해 1,000 cc로 상향하길 원했지만 정부는 이미 기존 규정에 맞춰 시장에 진입한 대우국민차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었다.
기아자동차는 대외적으로 800 cc든 1,000 cc든 상관치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으나, 실상은 현대차와 같은 이유로 난항을 겪고 있었다. 결국 사내 마케팅 부서가 출시 반대 의사를 강력하게 표출해 M·카의 출시는 1996년 말 공식적으로 무기한 보류되었다. 이후 기아차가 현대차로 매각되는 과정에서 M·카를 2000년경 출시하는 계획을 잠시 검토했지만, 당시 기준으로도 이미 노후화된 프로젝트를 재개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이는 다시 해프닝으로 끝나게 된다.
현대차그룹에서 새 국면을 맞이한 기아차는 'SA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금 경차 시장에 발을 들인다. 다행히도 이 프로젝트는 무산되지 않고 2005년 출시되었는데, 그 이름은 바로 '모닝'이었다. M·카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이름만은 고스란히 남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3.10.23~1993.11.05 : 제 30회 동경 모터쇼 출품
1995.05.03~1995.05.10 : 제 1회 서울 모터쇼 출품
현재 소재: 불명
한경뉴스 '경승용차 시장, 대우 독점체제로...스즈키사와 기술제휴' 1989.03.14
매일경제 '경자동차 레이스 시동' 1989.09.16
한경뉴스 '자동차 새 모델 개발 줄이어' 1989.12.21
한경뉴스 '대우조선, 경자동차 생산에 현대/기아도 자극' 1989.12.27
매일경제 '내년 3월 거리나선다' 1990.04.04
조선일보 '자동차, 독자모델 경쟁 가속화' 1990.10.01
동아일보 '경승용차시대 열린다' 1991.09.30
동아일보 '경자동차 개발경쟁' 1991.08.19
한겨레 '기아 자동차엔진 자체개발' 1991.10.12
매일경제 '기아 자동차엔진 독자개발' 1991.10.12
경향신문 '경-중승형차용 엔진 기아차서 자체 개발' 1991.10.12
경향신문 '소형차 신품 "마이카 실용성" 만끽' 1991.12.10
경향신문 '경차 경쟁에기아 현대 가세' 1993.03.09
매일경제 '기아차 신형차 동경모터쇼서 첫선' 1993.10.19
한경뉴스 '기아자동차, 승용차 동경모터쇼서 첫선' 1993.10.19
조선일보 '기아, 95년 이후 경승용차 생산' 1993.10.21
한경뉴스 '각사 '주력'제품 한눈에..디자인등 경쟁치열' 1004.05.04
동아일보 '경승용차시장 현대-기아도 뛰어든다' 1994.12.20
매일경제 '꿈의 자동차 수요자 초청' 1995.04.26
한겨레 ''작은 차'큰 논란' 1995.05.15
한겨레 '800cc냐 1,000cc냐' 1995.07.18
한겨레 '기아차 경차논란 할말있다' 1995.07.23
조선일보 '대우경차 배기량 논쟁 현대' 1995.07.29
동아일보 '경차논쟁 800cc로 매듭' 1995.08.19
한겨레 '경차 범위 800cc 이하 확정' 1995.08.19
조선일보 '현대차도 경승용차 생산' 1996.03.28
매일경제 '경승용차 성장-위축 갈림길' 1996.09.18
한겨레 '불황 뚫을 새차 나와라' 1998.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