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2] PROTO PS-2 (2001)
프로토 디자인/모터스는 주로 현대의 스트레치드 리무진과 모터쇼 콘셉트카를 제작하며 수익을 얻던 국내의 카로체리아다. 하지만 프로토 디자인/모터스는 IMF 사태가 일어나 자금 위기를 겪게 되는데, 결국 많은 용역처를 잃어버린 프로토 디자인은 부도를 맞으며 프로토모터스만 살아남아 기사회생하게 되었다. 그렇게 자력 생존 능력의 필요성을 체감한 프로토 모터스는 자신들의 독자 차종을 구상하게 된다.
당시 프로토가 구상하던 차량은 근거리 전기 시티카, NEV와 미드쉽 스포츠카였다. 처음엔 어려운 회사 사정과 DEV-5에 관여하며 쌓인 전기 기술력을 이용해 NEV를 개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으나, 시장의 주목이 하이브리드로 돌아가자 결국 2000년 초부터 미드쉽 스포츠카로 다시 가닥을 잡게 되었다. 그리고 프로토는 2001년 8월 17일, 자신들의 첫 결과물을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센트럴시티 오토몰에서 공개한다.
이름은 공개 몇 달 전부터 자사 홈페이지와 광고를 통해 이름을 공모했지만, 마음에 드는 응모작이 없어 개발명인 'PS-II (프로토 모터스 스포츠카-2, Protomotors Sportscar-2)'로 명명되었다. 번호가 1이 아닌 2인 이유는 프로토가 1998년에 판매한 티뷰론 드레스업 카, 티뷰론 PT-X의 코드네임이 PS-I이었기 때문이다. PS-II의 개발 비용은 25억으로 당시 프로토 모터스의 기업 규모에선 매우 큰 투자가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PS-II의 예상 고객층은 값싼 스포티카를 지양하지만, 비싼 값 때문에 고성능 스포츠카를 사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디자인은 아시아, 쌍용 등에서 경력을 쌓은 디자이너이자 프로토 모터스의 설립자, 김한철과 그의 아내를 포함한 4명의 결과물이다. 사내에서 모인 200여 장의 렌더링과 디자인 안을 종합해 2개로 추린 후, 개발 시작 5개월 만에 실물 스케일 모델을 만들어 최종 심사를 거쳐 결정된 디자인이다. 당시 프로토 모터스는 이 디자인을 완전한 독자 디자인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헤드램프와 테일램프는 제작 단가 문제로 양산형 모델인 '스피라'는 단순한 모양과 소재로 바뀌게 되었다.
설계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DEV-5를 제외하면 프레임을 설계한 적이 없었던 마당에 미드쉽 슈퍼카의 프레임을 설계해야 했다. 스티어링 장치와 서스펜션이 움직일 때같이 움직여야 하는 부분의 경우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PS-II는 CAE (Computer-Aided Engineering)으로 만든 국내 최초의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을 사용했는데, 덕분에 제조 단가는 높지만 가볍고 뛰어난 강성을 확보했다. 이외에도 시뮬레이션 테스트를 통해 토인, 캠버, 케스터 등을 조율했다.
파워 트레인은 뉴 그랜저에 얹혔던 V6 3.0ℓ DOHC 엔진을 세로로 배치하고, 쌍용 이스타나의 수동 5단을 개조한 수동 6단 트랜스미션을 달아 45:55의 무게 배분을 이뤘다. 엔진에는 플라스틱 커버를 씌웠으며, 4개로 나눠진 머플러는 미드십 특유의 배기 매니폴드와 거의 붙어있는 구조로 스포츠카에 걸맞은 음색 조율을 위해 개발진의 고생이 컸다고 한다. 아쉽게도 정확한 스펙은 측정하지 않아 알 수 없다.
실내는 가죽을 대거 적용했지만, 소량 생산을 목표로 제작된 프로토타입답게 대우 누비라에서 옵션으로 제공된 CD/카세트 헤드 유닛과, 마티즈의 공조 스위치를 배열만 바꾸어 장착했다. 그리고 휠은 아사의 제품을, 측면 지시등과 와이퍼, 사이드 미러 등은 현대의 제품을 사용했다. 캘리퍼 역시 국내 제품이라고 한다. 타이어는 벤투스로 앞 225/40 ZR18, 뒤 265/35 ZR18 사이즈를 달았다.
이 차량은 후에 수년간 개량을 거쳐 '스피라 (SPIRRA)'로 태어나게 되며, 아쉽게도 현재 PS-II의 행방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