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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카 아카이브 Oct 07. 2023

매너리즘 칼리스타,
쌍용 CRS

[아카이브 프로젝트 : 31]

팬더를 인수한 쌍용그룹과 김석원 전 회장의 선택은 명백한 실패였다. ⓒ Ssangyong

SSANGYONG CRS

[Archive 031] 1995, Designed by Ssangyong. ⓒ Dong Jin Kim


쌍용그룹의 김석원 전 회장은 삼성그룹의 이건희와 더불어 재계에서 제일가는 '차덕'으로 꼽힌다. 그의 차덕기질은 어릴 적부터 지독해 아버지 김성곤의 벤츠를 몰래 분해해 조립했다고 하며 미국 유학 시절에는 레이싱 스쿨을 수료하기도 했다. 그는 운전 이야기가 나오면 '레이서들과 겨룰 자신이 있다'라고 장담하곤 했다. 그는 1975년 경영권을 승계받은 뒤 동아자동차를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인수하며 '덕업일치'를 이뤘다. 그는 인수직후 동아자동차의 사명을 '쌍용자동차'로 변경하고, 야심 차게 개발해 온 프로젝트 'X카', 코란도 훼미리를 출시해 시장 점유율을 서서히 늘려갔다.


하지만 그는 쌍용차로 만족하지 않았다. 쌍용그룹은 동아차 인수 이듬해인 1987년 갑작스레 영국의 '팬더 웨스트윈즈'를 인수한다. 1972년 설립된 팬더는 한차례의 부도를 겪고 당시 진도그룹의 김영철 회장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김석원은 자본금 1만 파운드로 주식의 80%를 취득하고 경영권을 쥔다. 문제는 팬더가 판매하는 차량이 지극히 매니악하다는 것이었다. 팬더는 재규어 SS100의 외형을 오마주한 수제 로드스터 '칼리스타'를 연간 200여 대 남짓을 생산하는 '백 야드 빌더'에 불과했다. 주인이 바뀐 팬더는 1990년경 영국의 생산장비를 전부 쌍용 평택공장으로 이전하고, 소소한 개선을 거쳐 칼리스타를 1992년 재출시한다.

칼리스타의 디자인요소가 어렴풋이 보인다.

칼리스타는 태생부터 잘 팔릴리 없는 차량이었다. 오히려 생산 이전 과정에서 수년간의 판매 공백이 생기면서 연간 150대를 수출하겠다는 당초의 계획은 37대 (내수 포함 69대)라는 처참한 판매고로 무너졌다. 결국 쌍용차는 2년 뒤인 1994년 칼리스타의 생산을 종료한다. 백 야드 빌더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지한 판단은 수억 원의 손실만을 남겼다. 그러나 기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쌍용차는 이듬해 열린 서울모터쇼에서 칼리스타 기반의 CRS를 출품했다. 아직 칼리스타에 미련이 남았던 쌍용차는 이 차량을 통해 신모델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쌍용차는 CRS를 '모던 클래식카'로 정의했다. 언뜻 보면 모순되는 이름 같지만, '모던'이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게 칼리스타를 보다 대중적이고 현대적으로 다듬었다. 우선 디자인 과정에서 CAD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FRP 소재로 팬더와 차체를 일체형으로 성형해 개발효율을 높였다. 또한 2열은커녕 수납공간마저 없던 승객석을 2+2 시터로 연장해 사용 편의성을 대폭 높였고, 내외부 전반에 걸친 풀스킨체인지로 신선함을 더했다. 그 결과 이 차량은 전장 5,335 mm, 전폭 1,850 mm, 전고 1,390 mm로 기존 칼리스타 (각각 3,930 mm, 1,740 mm, 1,300 mm)는 물론 당시 현대 그랜저 LX형을 아득히 넘는 크기를 자랑하게 되었다. 덕분에 최소회전반경은 7.6m에 육박하고, 공차중량은 1,520 kg (차량총중량 1,640kg)으로 상당히 무거워졌다.

듀얼 머플러로 멋을 낸 후면.

달라진 점은 외형뿐만이 아니다. 포드에서 공수해 온 2.0과 2.9리터 쾰른엔진 대신 벤츠의 3.2리터 직렬 6 기통 DOHC M104 엔진과 자동 4단 변속기를 맞물려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최고속도는 230 km/h, 출력은 220 hp/5,500 rpm, 토크는 31.6 kg.m/3,750 rpm으로 기존 대비 소폭 개선되었다. 연비는 9.0 km로 준수하나 정확한 측정이 이뤄졌을 리 만무하다. 연료탱크 용량은 60리터로 기존 대비 15리터 늘어났다.


프로젝트의 키를 잡은 강동호 팀장은 이 차량의 테마를 '풍요와 여유로움의 이미지'로 설명했다. 그렇다, CRS는 풍요로웠던 쌍용차의 90년대를 보여주는 산물이다. 벤츠 기술을 업고 무쏘로 신호탄을 쏜 쌍용차는 '한국 제일의 고급 브랜드'를 위해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야망에 눈이 멀어버린 김석원 회장의 낙관이 빚어낸 허상이었다. 같이 서울모터쇼를 빛낸 CCR-1, 솔로 3과 다르게 CRS는 이유 모를 사정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전시가 되지 않았다. 이후로 CRS의 행방은 알려진 바가 없으며 쌍용차 역시 칼리스타를 더 이상 상기하지 않았다.


TIMELINE

1995.05.03~1995.05.10 : 제1회 서울 모터쇼 출품

현재 소재: 불명


REFERENCE

매일경제 '쌍용자 팬더사 매각추진 '칼리스타' 판매부진 적자로' 1994.03.21

한겨레 '세계6위 자존심 걸고 절정의 컨셉트카 13대 출품' 1995.04.24

한국경제 '쌍용자동차, 컨셉트카 서울모터쇼에 출품' 1995.04.24

경향신문 '미리 뽐내는 컨셉트카 경연 "자동차는 이쯤돼야" '서울 모터쇼' 상용차3사 출품' 1995.05.02

매일경제 '완성차 6사 전시장 지상 중계 차세대모델 첨단 경연' 1995.05.03

조선일보 '세계의 자동차 서울로, 95 모터쇼 개막' 1995.05.04

한겨레 '톡톡튀는 자동차맵시 기성 시대 '활짝'' 1995.06.12

조선일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현장 인터뷰 쌍용회장' 1995.09.17

모터트랜드 'Frankfurt Motor Show - Trends' 1996.01.01

중앙일보 '김석원 前쌍용 회장의'포르셰'' 2002.09.13

티스토리 cielo '쌍용자동차 CRS 컨셉트카 - Ssangyong CRS concept - 복고풍 컨셉트카' 2007.09.30

파이낸셜뉴스 ''코란도 아버지' 故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스러진 자동차 왕국의 꿈'' 2023.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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