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 페르소나의 시대
직업의 의미
명절이 되면 의미 없이 오고 가는 질문들이 있다. 학창 시절엔 성적이었고, 졸업쯤 취업이었고, 그다음은 결혼, 그다음은 아이였다. 명절이 되면 평소에는 그림자 같던 나에게도 그런 의미 없는 관심을 보인다.
"요즘 노는 며느리들이 어디 있니?"
"능력 있는 여자들은 다 일한다더라."
"친구 며느리는 100일 만에 복귀했다더라."
"우리 옆집에 사는 아기 엄마는 직업이 교사라 육아 휴직하니 애 키우기 좋더라."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위해 모든 엄마들이 교사나 공무원이 되어야 하는 시대, 그들의 시선 속에서 이미 나는 열등한 사람이 되었다. 조금 억울하지만 그렇다고 유치하게 고등학교 성적표를 들고 시댁에 갈 수도 없고 패션디자인과 나와서 들으면 알만한 회사에 취업하는 게 결코 교사나 공무원이 되는 것보다 쉬운 일이라 선택한 것이 아님을 설명할 수도 없다. 내가 당장 내 삶의 뱡향성과 지금까지의 성과를 파워포인트로 프리젠테이션을 할 수도 없다. 어쩌면 우리의 거리가 딱 거기가 아닐까?
우리 시댁은 큰집이라 명절에 아버님 형제분들이 다 모이신다. 처음엔 숙부님들, 숙모님들 얼굴 익히는 게 어려울 정도였다. 오래전부터 핵가족으로 명절을 보내온 우리 집과 달리 8남매가 모두 모이는 시댁의 클래스는 난이도가 달랐다. 난 분명 막내아들과 결혼한 건데, 이런 명절 풍경이 낯설다.
질부야, 너는 무슨 일을 하니?
작년 설에 있었던 일이다. 전날 음식을 만들고 아침에 시댁에 도착하니 형님과 사촌동서가 먼저 와 앉아있었다. 아들 짐도 놓고 겉옷을 벗어 놓기 위해 동서들이 있는 작은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내 얼굴을 보시자마자 큰고모님께서 "질부야, 앞치마 들고 와 여기 와봐라."라며 나만 꼭 집어 말씀하셨다. 순간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건 뭐지? 다들 일한다고 바빠서 어제 음식 만들러 온 것도 나뿐이었는데? 오늘도 나만 일하라고?
동서들과 방에 앉아 오랜만에 안부를 묻고 있을 때 마침 막내 숙부님께서 도착하셨다. 막내 숙부님은 중학교 영어교사로 일하시고 계시며 직업적으로도 자부심도 크신 분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유일하게 대학까지 공부하신 분이시기도 하다. 나에겐 형님과 사촌동서, 이렇게 두 명의 동서가 있는데 형님은 대학교수이시고, 사촌동서는 초등학교 교사이다. 숙부님께서,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이고 우리 질부들은 가르치는 사람들만 뿐이네. 훌륭하다 훌륭해."라고 하시며 동서들과 인사하신 후 교수도 교사도 아닌 나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어... 그래... 질부는 요즘 뭐하나?" 나도 숙부님도 어색한 순간이었다.
슬퍼말아요, 그대!
사회나 타인의 평가가 가끔 우리를 아프게 할 때가 있다. 수능을 치고 나선 나의 등급이, 졸업하고 나선 나의 직장이, 결혼을 하고 나선 나의 아파트가 그랬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가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100퍼센트 자유로워질 수도 없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의 균형을 잃어버린다면 그건 열심히 고민하고 선택한 자신의 삶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 나는 직업이 사라진 후부터 가끔 마주하게 되는 어색한 순간을 경험하면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직업이 중요한 순간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의 답은 사회적으로 거리가 제법 떨어져 그 사람을 직접 경험할 수 없을 때이다. 우리가 처음 사람을 소개할 때나 소개받을 땐 직업을 꽤나 비중 있게 보게 되는 건 사실이니깐. 직업을 중요한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은 나와 사회적으로 조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답이다.
당신이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면
한 동안 나는 직업이 자아실현의 장이라고 믿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풋(시간) 대비 아웃풋(소득)이 가장 작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도 힘들며, 워라벨의 마지막 시장인 디자인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살아보니 직업이 자아실현의 장이란 건 어불성설이다. 그렇게 우아하게 직업을 논하기엔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엔 구멍이 많다. 부모의 도움 없이는 실패를 만회할 기회조차 빼앗긴 시대가 아닌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소명보다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 일한다. 일이란 가족의 생활비를 벌어오는 창구인 것이다. 잔인하지만 자아실현은 그다음이다. 돈을 많이 벌면서 시간도 많은 건 건물주밖에 없으니 다수의 사람들이 건물주를 꿈꾸는 세상에서, 보통의 직업은 돈과 시간을 맞교환해야 한다. 자본을 이용한 사업가가 아닌 이상 교수든 의사든 변호사든 돈을 많이 버는 만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적어도 나의 지인들은 그랬다. 운이 없다면 우리 신랑처럼 온 시간을 갈아 넣어야 겨우 세 식구 먹고 살만큼 나오기도 한다.
보통의 우리는 20년의 시간을 목표한 직업을 가지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해왔다. 수능을 위해 밤낮으로 공부했고, 학점관리, 어학연수, 공모전, 인턴쉽, 토익점수까지. 공무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말 직업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달려왔다. 하지만 마흔쯤 되어 돌아보니 사는 건 고만고만하다. 생활의 격이 달라질 만큼 벌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부모님의 도움을 빼고 나면 남보다 빨리 투자에 눈 뜬 사람이 승자일지도 모른다. 어떤 직업을 가지기 위해 한 노력을 폄하할 의도는 없지만, 나는 직업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가족 구성원을 뽑아보자.
만약 내가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면 돈을 많이 벌면 좋겠지만, 이 부분은 양보할 수 있다. 낙제만 아니면 된다. 그 보다 가족을 위해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주말엔 요리도 하고 빨래대에 빨래가 있으면 누군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릴 줄 아는 배려심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욕실을 쓰고 욕조에 묻은 머리카락을 정리할 줄 아는 센스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살아보니 함께 하는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일엔 눈에 보이는 것보다 크고 작은, 다양한 일들로 구성되어 있다. 철학자 강신주는 한 강연에서 사랑이란 그 사람을 사용하지 않고 쉬게 하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전쟁 같은 사회에서 상처 받고 온 가족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며 어깨를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지적과 평가는 밖에서도 충분하니깐.
가족에게 인정받는 것이 직업적으로 성공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든 이유는 정말 의식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자신이 편한 대로 행동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처럼 행동을 제재하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우리는 알면서도 집에 돌아오면 소파에 누워 리모컨만 돌리며 잔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화목한 가정은 절대 돈으로만 살 수 없다. 물론 돈이 많으면 유리하다는 건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우리들의 암호니깐 생략 하자.
직업 밖의 당신
2020년, 트렌드 코리아에서 올해의 키워드 중 하나로 멀티 페르소나를 뽑았다. 융의 심리학에서 나온 페르소나(Persona)는 가면을 뜻 하는 라틴어이다. 오늘날의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파악되는 자아' 혹은 '사회적 지위나 가치관에 의해 타인에게 투시된 외적 성격'을 뜻한다.
요즘 광고에서도 보여주듯 직장인 모드와 퇴근 후 모드가 다른 세상이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인격이 다르고 같은 인스타그램이라도 그림자 계정을 만들어 화려하고 자랑하고 싶은 것은 메인 계정에, 우울하거나 진짜 자신의 목소리는 그림자 계정에 올리는 세상. 더 이상 고전적인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부가 개인의 전부 말해주지는 않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동네 백수처럼 보이는 이웃사촌이 알고 보면 인기 웹툰 작가일지도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다.
당신의 행복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멋있는 직업이 있으면 좋다. 명함이 주는 도도함과 타인의 부러운 시선을 느끼기에 그만한 게 없다. 폼나고 좋은 건 맞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각자 행복의 최대치를 위해 일상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사회와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한 우리가 꼭 직업이란 페르소나로 정의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의 행복은 우리 각자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보다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 하는 노력의 1/10 만 이라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다면 우리 전체 삶은 지금보다 10배는 나아졌을 거라 확신한다.
매일 꾸준히 일상을 찍어 올리는 당신이 미래의 인기 유투버가 될 수도 있고 인스타 인플루언서가 될 수도 있다. 취미로 배운 다이닝 스타일링으로 창업을 하거나 강의를 할 수도 있다. 요즘 인기 있는 시니어 모델 김칠두 님은 27년간 음식점을 하시다 은퇴하고 65세에 모델이 되셨다. 우리는 지금, 언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모르는 놀라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열심히 본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빛날 수 있는 기회는 언젠가 올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기꺼이 일 년에 2번
무능한 조카며느리가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