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니쉬 Sep 07. 2020

멈추고서 깨달은 것들 1

하나님의 타이밍

나는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약 7개월의 휴가기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가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기간과 거의 맞물린다). 최근에 진행한 재취업 과정에서 감사히 최종합격이 되었고, 회사가 임산부임을 배려해주어 입사일을 내년 4월에 재조정하기로 하여서, 앞으로 최소 8개월을 더 쉴 수 있게 되었다. 두번째 휴식기를 맞이하고 계획하기에 앞서, 첫번째 휴식기동안 깨달은 것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총 6개 주제로 나누어 정리할 예정이고, 전반부에서는 삶에서의 깨달음을, 후반부에서는 커리어 관련 깨달음을 정리할 계획이다. 주제에 따라 분량이 많이 차이날 수도 있겠지만 (특히 이번 글이 여러 사건을 다루어 가장 길 거라 예상된다), 그래도 한 글에 한 주제만 담을 생각이다. 그리고 해당 글들은 모두 내가 크리스쳔이다보니 기독교 가치관 위에서 쓰여질 것임을 미리 밝힌다.



목차

삶에서의 깨달음

- 하나님의 타이밍

- 안식

- 다양한 시각의 중요성 (feat. 의사 파업 사태)


커리어 관련 깨달음

- 회사생활의 가치

- 크리스쳔 사업가의 마인드

- 연봉협상 과정




요즘 교회에서 에스더서 강해 말씀을 듣고 있다. 지난 에스더서 2장 강해에서는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설명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빼고는 설명이 안되는 인생 - 그게 우리에겐 성공한 인생, 하나님이 사용하신 인생이다.'라는 말씀을 들었다. 이 말씀은 내가 2015년 IVF 홈커밍데이때 듣고 무척 인상 깊어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문장을 떠올리게 하였다. '하나님만으로 설명되는 삶을 살자.' 


이번 휴가기간을 돌아볼 때, 나는 이 휴가 기간이 하나님만으로 설명되는 휴가였던 것 같아 참 감사하다.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알맞은 타이밍으로 나의 휴가기간을 채워주셨는 지 정리해보려 한다.


휴가의 시작

어쩌면 시작은 작년 말 회사에서의 고민에서부터였다. 그때 내가 다녔던 회사는 머신러닝을 이용해 금융자산의 가격을 예측하여 트레이딩으로 돈을 버는 회사였다. 그곳에서 1년 넘게 일하고 나니, 데이터 사이언스와 머신러닝에 어느정도 익숙해지고 이 분야를 어떻게 공부해야할 지 감이 잡혔다 (즉, 배우고 싶었던 것을 웬만큼 배웠다). 그러자 슬슬 일에서의 동기 부여, 역동성이 떨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원인을 파보니, 나라는 사람이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서비스를 개발할 때 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인데, 트레이딩은 세상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일이라 흥미가 떨어졌던 것이다. 일의 내용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니 성실하게 일할 동기가 떨어진 것이다. 


나는 혼자서 끙끙대다, '회사를 그만두어야할까?'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는 우리 가정의 경제 사정에 바로 타격을 주는 일이라, 남편과 이 고민을 나누었다. 그리고 남편은 이 고민을 회사의 CEO에게 나눠볼 것을 제안해주었다. 나는 그냥 다닐지 퇴사를 할 지, 내 선에서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그 과정에 CEO와 함께 고민해볼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왜냐면 이 고민을 CEO에게 나누면, 그건 바로 퇴사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CEO가 퇴사 할 지 말지 고민하는 직원과 계속 함께하고 싶겠어! 


하지만 남편의 제안이 마음에 새겨졌는지, 나는 격주 CEO와의 1:1 미팅 시간에 이 고민을 나누게 되었다. 그때 내 마음은, 속으로 눈을 질끈 감으며 '당신이 이런 나와 함께 갈 수 없다면 퇴사하라고 해주시오. 나는 각오가 되었소.'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CEO의 답변은, 이 회사가 사람들에게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지 고민해보겠다는 답변이었다. 또한 나의 커리어를 위해 함께 고민해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이런 CEO를 만나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감동을 하였고, 이 CEO의 태도 덕분에 회사에 대한 애정을 크게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일의 내용이 나의 흥미와는 좀 동떨어져도, 나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무척 좋다면 오래 일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였다. 


그렇게 나는 마음을 다잡고 두 달쯤 흘렀다. 2020년 새해를 맞이하며 들었던 말씀에서도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작은 일에도 묵묵히 성실하자'는 다짐을 하였던 터라, 회사에서의 열정을 회복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나는 이제 열심히 달릴 준비를 마쳤는데, 크리스마스 및 신년 휴가를 보내고 온 CEO가 나와 대화를 하자고 하면서, 아무래도 나에겐 일반 사용자용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더 큰 회사가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CEO의 입장을 헤아려보면, 아직 작은 회사를 꾸려가는 상황에 나 하나를 위해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그래서 그 말은 진심으로 내 커리어를 위해 해준 말이 맞을 것이다 (물론 회사를 더 우선하여 생각한 것이지만, 그것은 CEO로서 당연한 것이고). 하지만 내가 그 말을 들었을 땐, 이미 이전의 대화를 통해 우리의 대화가 끝이 났다 생각하여 다시 마음을 다잡아 열심히 해보려는 상태에서 들은 거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두달 전 CEO의 말은 거짓말이었던 건가 싶어 화가 나기도 했다. 어쨌든 CEO의 말은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라는 거절의 말이었고, 그때 당시 나는 거절은 나를 무시하는 거라고 여겼었으니, 비이성적인 판단 아래 감정적인 반응이 올라왔던 것이다 (참고로, 지금은 이 동영상을 통해, 거절이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며 이젠 얼마든지 받을 수 있겠다고 여긴다).   


나는 CEO의 말을 듣고 정말 퇴사를 해야하는 건지 다시금 하나님과 기도하며 고민해보기 시작하였다. 사실 그로부터 두달 전 고민을 시작했을 때엔, 하나님께 이 문제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아가진 않았던 것 같다. 남편과 CEO와만 이야기하고, 공동체 예배의 말씀을 통해 대략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것이겠다 추측했을 뿐이었지. 하지만 이번엔 하나님께 이 문제에 대해 개인적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두달 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을 인도해주셨다는 확신이 들었다. 작은일에도 성실함에 대해 말씀해주신 건, 퇴사 후 하게 될 그간 보잘것 없이 여겼던 집안일에 대해 겸손하게 임할 수 있도록 주신 말씀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OO야, 가자, 내 손 잡고 일어서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따스함에 당당함과 자신감이 다시 솟아올랐고, 그러자 CEO에게 생겼던 분노도 그간의 진실된 모습을 떠올리며 감사로 바꿀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1월 중순부터 회사를 다니지 않게 되었고, 1월 말 공식적으로 퇴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물론 퇴사의 시작은 내 고민에서부터였지만 그래도 결국은) 내가 퇴사를 하기로 결정한 게 아니라 회사가 나와 함께할 수 없다고 결정한 것이기에, 회사에서는 내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처리해주었다. 


쉬자마자 코로나19가 터짐

회사를 퇴사하고 났더니 갑자기 코로나19가 한국에서도 퍼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퇴사한 회사는 강남에 위치했는데, 3번 확진자가 강남 일대를 많이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만약 퇴사하지 않았더라면 강남에 있는 회사를 다니는 게 껄끄러울 뻔 했는데 그것을 피하게 되어 감사했다. 


2개월만 쉬려했던 내 마음의 변화

다음 스텝이 정해지지 않은 채 쉬는 것은 이번이 두번째였다. 첫번째 회사를 퇴사한 뒤 두번째 회사에 입사 전 내겐 약 3주의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는 비고용의 상태인 게 무척 불안해서 제대로 쉬질 못했다. 이번에는 급작스럽긴해도 하나님과 함께 결정한 휴식인만큼, 이전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날 돌보시고 책임지신다는 믿음 안에 안식하고 싶었다. 또한,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4년을 물리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쉼없이 달려왔기에, 스스로 이젠 맘 편히 쉴만한 자격도 있지 않나 생각했다. 


하지만, 끝을 정해두지 않고 쉬는 것은 무서웠다. 경력단절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재취업은 힘들어질 테니 말이다. (이때까지만해도 나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온전히 신뢰하진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이 두려움을 하나님께 솔직히 고백하고 하나님과 함께 쉬는 기간을 결정하고자 개인기도 시간을 가졌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은 분명 더 쉬길 원하셨던 것 같았는데, 나는 두 달 이상 쉬는 게 영 내키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왜냐하면 그동안 학창시절 보냈던 2개월의 방학들을 떠올리면, 나는 그 아까운 두 달간 펑펑 놀면서 시간을 허비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휴가의 기간도, 외부와의 약속 없이 스스로를 지켜 성실하게 생활할 수 있을까하는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2개월 이상의 휴가는 마음이 힘들 것 같았다 (실업급여를 6개월동안이나 받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하나님은 내 두려움과 연약함을 이해해주셨고, 나는 하나님과 그럼 두 달만 맘 편히 쉬어보자고 타협했다. 


그런데, 내가 두달 후 임신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임신이야 작년 중순부터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마침 약속한 휴가 두달이 지나고 나서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빙그레 회심의 미소를 지으시는 것 같았다. 임신을 하고서는 최대한 쉴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왕 임신하게 되었으니 몸과 맘을 편하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여, 일단 실업급여 받는 기간 동안엔 절실하게 재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말고 주어진 기회들만 진행해야겠다고, 자연스레 내 마음이 바뀌게 되었다.


준비할 게 많았던 군무원 채용 과정

임신을 발견하고서 입덧이 시작되려는 와중에, 시동생을 통해 군무원 계약직 자리를 알게되었다. 보수 수준은 최소와 최대의 차이가 매우 컸는데, 만약 최대 근처로 받게 된다면 보수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개인의 성장 면에서는 꽝이겠지만, 공무원처럼 육아휴직을 부담 없이 쓸 수 있을 테고 시동생을 통해 들은 바로는 업무 로드도 무척 낮다고 하니 지원해볼만 한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군무원 채용은 생각보다 무척 준비할 게 많았고, 사기업 채용 과정에 비해 비합리적인 부분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먼저 신원진술서에 붙일 증명사진을 준비해야 하고 (이를 위해 이마트 가서 사진 찍고 왔더랬지), 3개월 내로 발급된 경력증명서를 준비해야하고, 경력증명서가 영어로 되어있다면 번역본 공증까지 받아야 하며 (정말 쉬운 영어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부모님과 형제자매, 배우자의 신상정보를 써내야 하고, 심지어 개인 신용정보 조회서까지 내야했다. 또한 최종 합격하게 되면 공무원 건강검진을 개인적으로 하여 제출해야한다. 게다가 이 모든 서류들은 파일로 보내는 게 아니라 프린트하여 우편으로 접수해야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은 모두 개인이 처리해야 한다. 면접비 하나 주지 않는다. 


서류 합격한 사람이 나 하나였던 걸로 보아, 이 전형에 지원한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던 것 같다. 경쟁자가 없는 상태라, 면접도 수월하게 진행되어 최종합격까지 하게되었다. 그리고 최종 계약일이 다가오기 전, 나는 보수 수준을 두고 하나님과 기도하였다. 이미 여기서 받을 수 있는 최대 보수 수준이 내 최근 연봉보다 낮은 금액이긴 했지만, 그래도 최대로 받는다면 만족하고 다닐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 경력이 길지 않기 때문에 최소 보수 수준과 가까울 것 같은 염려가 들었다. 나는 하나님께 연봉에 대해 욕심 부리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미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형성되어있는 한국의 개발자 시장에서 나까지 그 기울기에 보태고 싶지도 않다고 말씀드렸다. (하나님도 제가 그 구조적 문제를 더 심화하기를 원하시진 않을 거 아니냐며 말이다.) 하나님과 기도하며 내가 생각한 수준은 나의 신입연봉이었다. '그래, 군무원 연봉이 내가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때의 연봉만 넘으면, 그것도 정말 너무너무 낮은 수준이지만, 그래도 만족하고 다녀보자.'


하지만, 군무원 연봉은 처참하게도 내 신입 연봉보다 낮았다. 나는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상태였고, 중간에 다른 사기업의 채용 절차를 밟기 시작하여 해당 회사의 1차 면접을 합격한 상태였던 지라, 하나님과 기도하며 정한대로 군무원 합격을 포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이 헛되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 기회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공무원/군무원 채용과정을 경험해볼 수 있어 감사하다. 또한 군무원을 지원하는 중엔 입덧 때문에 여러면에서 생산성이 떨어졌던 시기라 '나란 사람은 혼자서는 생산적일 수 없는 걸까,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야만 하는 사람인 걸까' 스스로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했었는데, 군무원 채용을 준비하며 일정에 맞춰 계획적으로 서류를 작성하다보니 (또 마침 입덧도 가라앉으면서), 규칙적인 삶의 패턴이 자리잡게 되었다. 덕분에 '나 혼자서도 계획적으로 잘 지낼 수 있구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회복될 수 있었다. (군무원 채용을 수락했다면, 이것을 확인해 볼 시간도 없었겠구나.) 또한, 이후 진행된 사기업 채용 과정 말미에도 경력증명서가 필요했는데, 이 때 군무원 서류 제출때 준비해두었던 걸 그대로 제출할 수 있었다.


더디게 진행된 사기업 채용 과정

사기업 채용 과정은 예상과 달리 무척 더디게 진행되었다. 6월 중순 서류 접수를 시작하여 9월 초가 되어서야 연봉협상이 끝났으니 두 달 반 정도가 걸렸다. 그런데 오히려 더디게 진행된 덕분에, 당장 입사하더라도 3개월도 채 안되어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이에 회사측에서 먼저 입사일을 내년으로 미루는 제안을 해준 것이다. 회사측에서는 당연히 수습도 끝나지 않은 경력직 사원에게 휴가금을 지원하지 않아 괜찮은 선택이었을 테고, 나로서는 코로나로 인해 가자마자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동료들과 어떻게 친해질까도 걱정이었고 업무에 온전히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출산휴가를 들어가는 것이 맘에 걸렸는데, 정해진 기간동안 맘편히 쉴 수 있게 되어 너무너무 감사하다! 


참고로 연봉협상 과정이 내 뜻대로 되지만은 않았는데, 오히려 그랬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만족스럽게 협상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은 이후에 쓸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다.


마무리

오늘은 지난 7개월간 끝이 정해져있지 않던 휴가기간을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보냈는 지 돌아보았다. 참고로 나의 실업급여는,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개인 사업체를 양도하고 폐업하느라 신청이 늦어지는 바람에 돌아오는 9월 15일에 만료가 된다. 어쩜 이렇게 실업급여가 만료되는 시기와, 사기업 채용 절차가 끝나 두번째 휴가를 계획하는 시기가, 거의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는 걸까 참 신기하다. 이제 다가오는 휴가 기간도 하나님만으로 설명되는 휴가가 되기를 소망한다.


아무래도 오늘은 시간의 순서대로 여러 사건들을 기록하다보니 글이 길어졌는데, 다음 글부터는 한가지 사건에 대해서만 쓸 테니 이보다는 훨씬 짧은 글이 되리라 예상한다 :)




매거진의 이전글 머피모임 2020 상반기 회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