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졌다고 이성을 마비시키지는 말자.
C양 입장에서는 C양과 달달한 썸을 타고 있는 K군을 '헌팅남'이라고 부르는 것에 반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C양의 썸은 술집 혹은 번화가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헌팅 커플의 패턴과 크게 다르지 않다. 헌팅으로 만났다고 무조건 만나지 말 라는건 아니다. 다만 C양이 혼자 너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아 어서 발을 땅이 붙이고 이성적으로 썸을 타라고 충고해주고 싶은 거다.
작년 연말쯤 오빠가 저에게 번호를 물어보면서 처음 연락을 하게 되었어요. 원래 누가 번호 달라고 해도 잘 주지 않는데 오빠는 뭔가 느낌이 오더라고요. 그리고 몇 번 같이 술을 마시면서 서로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확인했어요. (저만의 착각일 수도...) 또 한 번은 오빠 친구와 제 친구들이 함께 술을 마시다가 사소한 스킨십도 몇 번 있었어요.
지구에서 400년을 살아오시며 인간에 대해 연구한 도민준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절대 속으면 안 됩니다 심장이 뛰는 것과 사랑이 빠지는 것 구분해야 합니다"라고 말이다. C양아. 모두 덮어놓고 "이건 사랑이야!"라고 생각하기 전에 C양이 느끼는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그 감정을 따르는 데에 어떤 위험요소는 없는지 정도는 생각해보자.
C양은 "오빠는 그런 남자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어쨌든 헌팅으로 알게 된 사이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확률상 헌팅으로 솔메이트를 만나는 것은 다소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아닐 수도 있잖아요!"라며 예외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헌팅으로 시작해 계속되는 술자리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보통의 헌팅 커플과 궤를 달리한다고 보기는 힘들것 같다.
C양은 이게 운명으로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C양은 도민준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호르몬의 눈속임에 속고 있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의 등장, 반복되는 술자리 그리고 그 술자리에서의 사소한 스킨십은 C양을 사랑에 빠지기 쉬운 상태로 만들기 충분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만나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처음 시작은 호르몬의 눈속임이지만 그 이후 서로 나누는 감정은 진짜 호감이고 사랑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이후 어땠는지 스스로 생각해보자.
얼마 전 새벽에 오빠가 톡을 보내더라고요 목소리가 듣고 싶다며, 전화를 해보니 오빠는 좀 취해있었던 것 같은데 제가 좋다고 고백을 하는 거예요. 자기는 제가 좋은데 너무 오빠 동생으로만 지내는 것 같다고.... 그래서 저도 좋다고 솔직히 말을 했죠.
오빠가 빨리 봤으면 좋겠다는 걸 일주일 후쯤 보자고 했는데 그러고 나서 다음날부터 연락이 없는 거예요. 전 당황했죠... 고백을 했으면 서로 더 가깝게 연락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제가 먼저 연락을 했더니 오빠는 다음날 되니 민망해서 좀 더 이따가 연락을 하고 싶었다고 하네요.
취중진담은 분명 진담이다 다만 그 진담이 술에 취했을 때만 나온다면 그건 문제가 되는 거다. C양 말처럼 술에 취했어도 고백을 하고 썸이 한 단계 발전을 했다면 보다 가까워져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다음날 연락이 없었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술김에 질러놓고 뒷수습하긴 귀찮다는 뉘앙스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만약 정말 C양을 향한 마음이 진심이고 평소 얘기하고 싶었던 것을 참고 있었다면 술김에 저지른 고백이라 할지라도 그에 맞는 행동을 했을 것이다. 물론 C양에 대한 호감이 모두 거짓은 아니겠지만 그간 여러 사례에 비춰 소설을 써보자면 K군에게 여자친구나 썸녀가 이미 존재하거나 C양과 진지한 관계를 원치 않는 경우 일수 있다. 쉽게 말해 C양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만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아니! 그건 너무 심한 소설 아닌가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취중진담을 했는데 상대방도 좋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무 연락도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민망할 수도 있잖아요!"라고 따지기 전에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C양과 K군이 어떻게 만났는지를 말이다. 고작 취중진담이 민망해서 연락도 못하는 남자가 생판 모르는 여자에게 다가가 연락처를 받았다니... 스스로 생각해보자. 누구의 말이 더 소설 같은가?
C양아 K군의 청산유수에 고개를 끄덕이며 모든 것을 이해하기 전에 전후 맥락을 따져보자. 헌팅으로 만났다면 부족한 신뢰를 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K군의 행동을 보면 자신에게 푹 빠져있는 C양의 감정을 맛깔스럽게 요리하며 위기를 잘 빠져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C양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날 이후 일상 얘기를 나누며 그전과 비슷하게 보냈어요. 그런데 제가 계속 먼저 카톡을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오빠가 먼저 좋아한다고 해줬으니 제가 더 표현을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정말 모르겠어요. 그리고 오빠는 약속 날이 가까이 오고 있는데도 만나자는 말이 없네요. 제가 먼저 물어봐야 하는 걸까요?
만약 취중진담 이후 K군의 행동이 달랐다면 나는 C양에게 긍정적인 말을 해줬을 것 같다. 하지만 취중진담 이후 K군의 행동은 내가 아는 영양가 없는 남자들의 행동과 매우 유사한 패턴을 보이기에 C양에게 긍정적인 말 보다는 조금 조심하란 말을 해주고 싶다.
취중진담으로 좋아한다 말해 놓고 연락도 없으며 여자 쪽에서 연락이 오도록 방치하고 무엇보다 만나는 달이 다가왔음에도 연락이 없다는 건 좋아한다는 말로 여자를 잡아놓고 자기 할 일은 다하고 만나서 사랑을 운운하며 스킨십을 요구하는 남자들의 행동과 매우 닮아 있다.
사연이 밀린 관계로 아마 지금쯤이면 C양과 K군은 두어 번 만났을 수도 있는 시점이긴 하지만 혹시 내게 메일을 보내고 나서 둘이 만났을 때 K군이 자연스레 술을 마시며 고백을 하며 C양의 귀가를 막으려고 했다면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영양가 없는 남자들의 전형적인 태도다.
사랑이란 갑자기 빠져들 수도 있고 만나자마자 스킨십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놓고 그 고백이 성공했음에도 거리를 두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징후다. 솔직한 말로 C양이 K군을 만나는걸 반대하고 싶지만 너무 좋다면 적당히 경계를 하는 것이 좋다.
또한 무조건 K군에게 연락이 먼저 오길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다가가며 K군을 압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음... 뽀뽀 고문 신공정도면 K군을 무너뜨리는 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은데... 뽀뽀 고문 신공이란 남자의 성적 욕구를 자극하여 남자를 통제불능 상태로 만드는 기술로써 방법은 간단하다.
어둑어둑한 바나 룸식 주점에서 술을 적당히 마신 후 남자에게 물어봐라. "나 좋아해?" 남자가 뭐라고 대답하든 차가운 눈빛을 하고 남자의 볼에 뽀뽀를 하자. 그리고 다시 물어라 "나 좋아해?" 이때 남자가 뭐라고 하든 또 무시를 하고 또 묻자 "나 좋아해?" 뽀뽀 두 번이지만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할 것이고 "좋아하면 나한테 더 잘해"라고 도도하게 말해주자. 이래도 남자가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않는다면 그건 C양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