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상대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상대에게 존중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내가 다치지 않게 적정 거리를 유지하고 이성적으로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물론 이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해라. "나는 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남자 친구와 사귄 지 거의 3년이 다 됐네요... 문제는 오래 만나서 그런다기보다 남자 친구는 처음부터 제가 다치거나 힘든 것에 걱정을 안 한다는 거예요... 그 때문에 저는 남자 친구가 진심으로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고요...
며칠 전 제가 늦은 밤에 큰일을 당할 뻔해서 경찰서까지 가야 했습니다. 여자라서 당할 뻔한 일이라 너무 무서웠고 경찰서에 가기 전에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남자 친구의 반응은 너무 냉담하더라고요. 제 얘길 듣고 왜 자기 말 안 듣고 늦게 돌아다니냐 왜 어디 있는지 연락을 안 하냐고 화를 내더라고요.
일이 났던 장소는 남자 친구의 집에서 30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자 친구는 저를 데리러 오지 않더라고요. 심지어 경찰서에서 나오는 길에 전화를 하니 자고 있었고요...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던 게 아닙니다. 남자 친구는 제가 큰일이 날 때마다 잔소리를 할 뿐 직접적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진심으로 걱정되면 말로만 뭐라 하지 말고 뛰어올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자기에게 짐을 떠맡기지 말라고 부담 주지 말라고 합니다. 남자 친구는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처리해야지 왜 자기에게 기대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진심으로 사랑하면 심리적으로 위로를 주려고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틀린 걸까요...?
- S양
사연 내용도 경악스럽지만 S양이 보내준 남자 친구와의 대화 내용 또한 경악스럽다. 과연 3년 씩이나 연애를 한 커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를 넘어서 생판 남이라도 저렇게 무관심하며 "니 일이잖아!"라는 말을 할 수가 있을까 싶다.
아마 어떤 사람이 봐도 "아니 어떻게 저런 X 하고 계속 연애를 해!? 당장 헤어져요!"라고 말할 상황이고 나 또한 크게 생각이 다르지는 않다. 이미 서로에 대한 존중이 무너진 연애를 계속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연애는 지속 가능한 범위를 넘었다. S양은 남자 친구에게 관심과 사랑을 달라며 갈구하고 있지만 남자 친구는 S양에게 생긴 일들에 무관심한 것을 넘어서 단 1g의 관심 조차 가져주는 것을 거의 알레르기 수준으로 거부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S 양이라고 모를까? 하루에도 몇 번씩 정도가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한 남자 친구와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그런데 왜 S양은 남자 친구와 헤어지지 못하고 있는 걸까?
S양은 무관심하지만 한때는 그러지 않았다고 할 수도... 너무 사랑해서 헤어질 수가 없다고 할 수도...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지 않냐고 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현재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점검해보자. "지금 S양은 충분히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NLP의 대전제 중에 하나는 "모든 행동의 기저에는 긍정적인 의도가 있다."이다. 쉽게 말해 어떠한 행동도 그 당사자는 그것을 '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S양의 상황에 대입해보자면 남들이 볼 때, 또한 자기 자신이 볼 때에도 남자 친구와 헤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은 하나 S양의 본능은 남자 친구와 만나는 것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니, 남보다도 못할 정도로 무관심한 남자 친구와 헤어지지 않고 만나는 게 무슨 긍정적인 의미가 있겠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경우 S양과 유사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자 친구를 제외하고 이렇다 할 인간관계를 제대로 맺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고 소통하고 싶은 기본적인 욕구의 창구를 오로지 남자 친구에게 의존하다 보니 이성적으로는 더 이상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벗어날 수가 없는 게 당연하다.
시종일관 "매번 날 찾지 마!"라고 악을 쓰는 남자 친구와 "이젠 날 사랑하지 않아?" 라며 남자 친구에게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S양...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다면 남자 친구에게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꼭 남자여야 하는 건 아니다)과 소통의 기회를 넓히며 스스로 감정적인 결핍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될 수 있다면 당장 헤어지는 게 서로에게 좋겠지만 그것이 너무 어렵다면 적어도 지인들과의 만남을 늘리고, 새로운 사람들(꼭 남자가 아니어도 된다.)과의 교류를 늘리는 것 먼저 시작하자. S양이 어느 정도 감정 결핍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본인의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남자 친구를 떠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용기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