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서른일곱 번째 이야기 - 아들이 쓰는 글

어린 딸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작은 새가 부르는 노래처럼 들려온다. 뜻을 알 수 없는 허밍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귀 기울여 보면 어디선가 들어본 노래의 파편임을 알 수 있다. 아이가 자주 보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노래, 교회에서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부른 찬양, 엄마 아빠가 불러주는 자장노래 중 한 소절. 그중에서도 아이가 유달리 좋아하는 곡이 있다.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어서 그런지 아이도 쉽게 터득한 듯하다. 그 노래는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곡이다. 본래 아이를 키우다 보면 생일축하를 좋아하는 계절이 오고 그때는 가족 모두의 생일축하 자리가 놀이터가 된다. 끝도 없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가족 한 명씩 주인공이 되어가며 부르며 종국에는 장난감 구급차 모형을 위한 생일축하 노래까지 불러야 끝이 난다.


처음에는 곡조만 유사하게 부르는가 싶더니, 언젠가부터 가사를 붙여 부르고, 이제는 제법 정확하게 가사와 곡조를 구사한다. 길 가던 사람도 들으면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곡임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나도 이 곡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는데, 무려 3개 국어로 부를 수 있다. 한국어, 영어, 독일어. 워낙 간단한 가사라 누구라도 10분만 노력하면 3개 국어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런다고 하여도, 3개 국어로 부른 들, 10개 국어로 부른 들, 내게는, 또 우리 가족에게는 아이가 부른 “생일 축하합니다”에 비할 수 없을 것이다. 짧은 인생에 처음으로 완창 한 곡인데, 이를 통해 생일을 축하받는다면 그 어떤 감격도 비할 수 없으리라, 그것이 비록 우리 가족에 한한다고 할지라도.


이런 영광스러운 일, 큰 감격을 누릴 첫 번째 타자는 바로 아버지이다. 아버지의 생신이 1월 말에 있는 탓이다. 곧 다가올 아버지의 생신이 기대된다. 허나, 아버지에게 이번 2026년은 매년 기념하는 생일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해이다. 아버지가 교역자로 사역하신 지 만 40년이 된 해이기 때문이다.


내가 실수하지 않는다면 85년도에 교육전도사로 시작하셔서 86년도부터 전임 사역을 하셨다. 이제 겨우 십수 년, 전임 사역으로는 십 년 사역한 목사에 비교조차 하기 어려운 연차이다.


그런데도 희망이 있는 것은, 아버지에 비해 늦게 시작하긴 했지만 나도 어린 나이에 전임 사역을 시작한 터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사역을 이어간다면 은퇴하기 전 충분히 40년을 채울 수 있으리라. 그 40년을 어떻게 채우는가도 중요하겠지만, 목회라는 것 하나만 놓고 본다면, 그저 연수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40년은 대단한 인내이다. 그러니 그때에는 아버지와 나의 40년을 비교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내용을 평가함을 차치한다면 가능한 것이리라.


물론 아직 내 목회 40주년까지 30년이나 남았고, 이후 교단법이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은퇴 시기까지는 35년이나 남았으니, 그날을 꿈꾸기에는 너무 이르긴 하다. 현재 입장으로써는 그때까지 사역의 길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더 중한 문제이다. 현실의 벽도 있고, 내 마음속 장애물도 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결국 목회자도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연약한 죄인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가지 소망해 보는 것은, 오늘은 두 살배기 아이인 딸이 30대가 되어서 목회 40주년을 축하해 주었으면 한다. 장담하기는 무척이나 이르지만 딸아이가 불러주는 축하 노래 속에서 어제 들었던 아이의 허밍 소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집중해서 들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그 재잘거림이 30년 뒤 내게도 울려 퍼지지 않을까.


아이가 생일축하 노래를 부름을 AI로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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