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기대하지 않을수록 더 행복해
작년 이 집에 이사 오면서 집 뒤의 산 경계를 다듬는 공사를 했었는데
잘 다독여지지 않아서 그랬는지 그 산에서 흙이 조금 쓸려내려 왔다.
그 흙들을 어딘가로 치우거나 옮기기가 귀찮아서, 쓸려내려 온 흙들을 이용해서 두둑을 소박하게 만들고, 검은 비닐을 씌웠고, 그곳에 500원짜리 참외 모종을 큰 기대감 없이 한 개 심었었는데,
어느 날 문득 정신 차려 보니 노랗게 반짝이는 덩어리가 발견되었다.
글쎄 이렇게 열악한 땅에서 뭐가 자라겠어?
애초에 심을 때부터 기대감이라고는 1도 없었다.
흙이 어느 정도 모여 있으니 그냥 그대로 방치하기엔 잡초만 무성해질 것 같아
뭐라도 일단 심어보자.라는 마음으로 반신반의하며 심었었고 잠시동안 잊고 있었는데
오늘 문득 그곳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참외를 발견한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숨 막히는 무더위 속에서도 묵묵히 열매를 완성해 낸 참외를 보니 경외감마저 들었다. 여기저기 참외 잎사귀들을 들춰보니 열매가 몇 개 더 발견되었다. 보물 찾기를 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나의 눈은 순간 번쩍 했다.
협소하고 열악한 작은 텃밭을 뛰어넘어 자갈 위에까지 가지를 뻗은 참외는 울퉁불퉁한 자갈 위에서도 보란 듯이 영롱하게 열매를 맺고 있었다. 환경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듯 도도하게 달려 있는 자태는 신비롭게 느껴졌다. 낮에는 너무 더워 일단 집에 들어와서 쉬다가 밤이 되니 뭔가 입이 심심하고 출출한 듯 느껴졌다.
자기가 출출하지, 우리 텃밭에 가서 참외나 따서 먹어볼까?
한밤 중에 텃밭에서 갓 따낸 참외는 싱싱함 그 자체였다.
내 인생 첫 참외수확이다. 이 참외 하나가 뭐라고 이 밤에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는지 우리 부부는 한밤중에 마당에서 웃었다. 작은 텃밭이 주는 행복은 생각보다 크다.
마트에서 사 먹는 참외 하고는 차원이 달라
참외는 투박하게 절반을 잘라 남편과 사이좋게 나눠 먹어본다. 원래 이런 건 왠지 투박하게 잘라먹어야 더 맛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맛은 말해 뭐 하겠는가? 참외의 달콤함과 아삭함에 한여름밤의 무더위 짜증을 싹 날려 보내 주었다. 우린 참외 반쪽씩을 와그작 와그작 입으로 베어 물면서 서로를 보며 웃었다. 어느새 고양이들도 우리와 함께 마당에서 합석해 있다. 참외를 씹어 먹는 소리와 산속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만이 뒷마당에 행복이라는 단어로 둔갑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좀 못생기면 어때, 맛은 최고니까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결과가 좋게 나왔을 때 사람은 더 큰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할 때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습관이 무의식적으로 생겼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대한 큰 기대를 미리 하지 않으면 결과가 혹시 좋지 않게 나오더라도 실망하는 마음이 적다.
그리고 결과가 예상외로 좋게 나왔을 때 기쁨은 배가 되어 훨씬 더 행복해진다.
유용하진 않지만 소중한 것들
"작은 텃밭 가꾸기"
텃밭을 가꾸다 보면 삶의 순간들이 정성스러워진다.
누구나 마트에서 손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것들이지만
쉽게 사 먹는 음식은 쉽게 버리게 되는 경우들도 많다.
내가 직접 키워서 길러 먹으면 그 열매 하나하나를 귀하고 소중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내 삶을 대하는 태도도 좀 더 정성스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