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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아파트_ 기욤 뮈소

소설책은 오랜만이야.

"책은 여행이다."


여러 장르의 책들이 있지만, 소설이야말로 정말 여행을 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 서적들이 지성 탐방 여행이라면, 소설은 타인의 인생을 살아볼 수 있는 여행이다.

그런데 이 여행은 자신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여유가 필요하다.


심적 여유를 가지고 책을 잡지 않으면, 그 여행은 진행되지 않는다.


나는 한동안 소설을 읽지 못했다.

어릴 적에는 소설책을 너무도 좋아해서 부모님이 걱정을 할 정도였는데 말이다.




오랜만에 소설책을 손에 잡았다.

계획에 없던 응급실행과 이어진 수술로 인해 3박 4일 간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주 일정을 모조리 취소하면서 괜히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그렇게 다시, 소설책을 펼쳤다.


파리의아파트.기욤뮈소.jpg

서점에 가면 표지만 보며 지나가던 언젠가의 기욤 뮈소 신작.




01. 줄거리


일반적으로 '사랑을 그리는 소설'이라면 '남, 녀 간의 사랑'을 그린다.

이번 기욤 뮈소의 <파리의 아파트>부모의 사랑을 묘사했다.

표지의 아리따운 여성 덕분에 꽤나 로맨틱한 내용을 예상했는데,

역시 겉표지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A. 메들린 그린

이 이야기 속에는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전직 여자 형사, 매들린 그린이 나온다.

지난 연인과 아이를 낳기 위해 1년 여간 애를 썼지만 실패했고 결국 헤어졌다.

실패한 지난 연애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백화점에서 만난 전 연인과 그의 부인, 그리고 그의 아이까지 마주하자 한 번에 무너져 내리고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 앞에서 그녀는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결국 그 문턱을 넘지 않는다.

대신, 인공 수정을 시도한다.


B. 가스파르 쿠탕스

가스파르 쿠탕스는 유명한 희곡 작가다.

그의 희곡작품들은 해피엔딩이라기보다는 절망적이고 비극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을 패러독스와 풍자를 통해 밝게 묘사한다.

그런 그의 작품의 배경에는 그의 슬픈 어린 시절이 있었다.

엘리트 어머니와 가난한 프랑스인인 아버지.

그가 태어난 이후 남편에 대한 사랑이 식은 어머니는 남편의 친권을 포기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그의 아버지는 유치장에 구금돼 자살했다.

그의 나이 열세 살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고 술만이 그의 안식처였다.


이 두 인물은 부동산 사이트의 오류로 같은 집을 임대하게 되면서 파리에서 첫 만남이 이뤄진다.

가스파르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 메들린은 아이를 낳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우연히도 그 집은 숀 로렌츠라는 유명한 화가가 죽기 전까지 살던 집이었다.


C. 숀 로렌츠

숀 로렌츠는 색과 빛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으로 유명한 천재 화가였다.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자 전동차에 그래피티 작업을 한 뒤, 그 그림으로 구애에 성공했다.

결국 그는 페넬로페와 결혼에 성공하지만, 둘 사이에 2세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페넬로페는 10년 동안 아이를 유산했다.

그리고 11년째 되던 해, 줄리안이 태어났다.

이 가족의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D. 페넬로페 쿠르코브스키

페넬로페 쿠르코브스키는 숀 로렌츠의 부인이다.

유명 잡지에 자주 실리는 멋진 모델.

그녀는 아이(줄리안)가 태어나자 남편(숀)의 관심이 아이에게로 넘어갔다고 생각해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밖에서 다른 애인을 만들기도 한다.


숀 로렌츠와 그의 가족이 미술관 전시회를 위해서 뉴욕에 왔을 때 일은 벌어진다.

숀을 사랑했던 전 동료가 그의 부인과 아이를 납치한다.

경찰이 그들을 찾아냈을 때, 아이는 납치범에 의해 부인의 눈 앞에서 살해된 후였다.

사체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숀과 페넬로페는 아픔 속에서 이혼을 택한다.

그런데 숀은 죽기 전에 페넬로페에게 전화한 뒤 이상한 말을 한다.

"줄리안은 죽지 않았어."

하지만 숀은 심장 발작으로 죽고, 그의 말은 공허하게 맴돈다.


이러한 한 가정의 비극적인 미스터리를

우연히 만난 남녀, 메들린과 가스파르가 각자의 입장에서 풀어나간다.

형사의 입장에서, 엄마의 입장에서.

작가의 입장에서, 어린 아들의 입장에서.




02. 개인적인 후기


<파리의 아파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흔히 생각하기 쉬운 화려한 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이다. 그렇기에 더욱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배치한 것일지도.


파리에 와보지 않은 사람들은 누구나 로맨틱한 카페, 센 강변을 따라 늘어선 고서적상, 유명한 예술가들이 살았던 몽마르트르 언덕이나 생제르맹 데프레 등을 떠올린다. 파리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들은 지저분한 거리, 툭하면 주머니를 털어가는 소매치기, 불안한 치안, 심각한 수준의 대기 오염, 도심의 보기 흉한 고층 건물들, 낙후된 대중교통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p. 19~20


겉보기에는 참 아름다운 파리.

영화 속에서도 드라마 속에서도, 소설 속에서도 늘 로맨틱한 곳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직접 와보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도시.

관광객들은 이질감을 느끼며 정신병까지 호소하게 되기도 한다.


사람의 인생 또한.

겉보기에 희극인 누군가의 인생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 주인공들은 겉모습은 너무도 화려한 그들이지만,

내면은 너무도 우중충한 인생을 겪는 캐릭터들이다.

그래서 더욱 '파리'라는 도시와 잘 어울렸다.


결과적으로 해피엔딩이다.

그러면서 남녀 간의 사랑보다는 부모의 사랑을, 그중에서도 부성애를 특히 집중해서 묘사하고 있다.

(현재 작가가 아버지가 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다들 짐작하는 듯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읽기에 썩 괜찮은 소설책이었다.

영화로도 나오면 참 예쁘겠다 싶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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