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아기 오리
동화책 속 아기오리는 태어나자마자 못생겼다고 구박을 받았다.
“너는 오리 같지 않아, “ “너는 너무 크고 못생겼어.”
농장의 형제들에게서 - 동네의 꼬마 아이들에게서 - 놀림과 괴롭힘을 피해 추운 겨울을 혼자 버텨낸 아기오리는 어느 날 호숫가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고 깨달았다.자신은 오리가 아니라 백조였다는 걸,
그리고 백조들은 아기오리에게 다가왔다. 친구가 되었고, 아기오리는 행복해졌다. 동화 속 미운 아기오리는 행복한 백조가 되고 끝이 난다.
<미운 아기오리>를 딸에게 읽어주다가 든 생각은 - 아기오리가 사실 백조가 아니라 계속 오리였으면? 그랬으면 행복해질 수 없었나? 그럼 그냥 <미운 큰 오리>로 끝나나? 백조든 오리든 아기한테 못생겼다고 괴롭히는 건 아니지 않나? 이건 아동학대 아닌가? 백조였다는 걸 알게 되니까 친구가 생긴다고? 이거 너무 외모 지상주의 아닌가?
그냥 그 존재만으로도 예쁜 아기인데, 아기는 그냥 그 존재로 있었을 뿐인데 ,
오리로 바라본 아기는 못생겼고 놀림당하고 미움받고 ,백조로 바라본 아기는 예쁘고 사랑받고 행복하다고?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나 역시 나 스스로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진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냥 나인데 내 상황이 조금 힘들고 주변의 시선이나 평가가 좋지 못한 상황이 오면 나는 한없이 작고 초라한 미운 아기오리가 된다. ‘아 나는 왜 이렇지,’ ‘다들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반대로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고 어떤 좋은 성과가 나오면 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나고 반짝이는 존재가 된 것만 같다. ‘역시 나야! ‘ ‘난 해낼 줄 알았어. 난 잘하니까. ‘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 누가 나에게 칭찬을 하든 비난을 하든 , 내가 잘했든 못했든 나는 나다.
나는 여전히 소중한 ‘나’라는 존재이다.
나라는 존재 자체는 변하지 않는데 나는 나 스스로를 미운 아기오리와 백조로 나누어 바라보고 있진 않았나?
내가 오리였든, 백조였든 나는 미운 존재가 아니다. 나는 소중한 나다. 아무도 나를 비난하고 함부로 대할 자격은 없다, 나조차도.
내 아이가 생기고 든 생각은 세상에 ‘미운’ 아이는 없다는 것이다. 모든 아이들은 다 그냥 그 존재 자체로 예쁘고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아이뿐만이 아니라 우리 역시 그럴 것이다.
나를 ‘미운’ 아기오리로 만든 것은 누구일까.
미운 아기오리는 백조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백조였더라도 미운 백조로 혼자 지냈다면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소중하고 예쁜 존재라는 인정과 안정감이 아기오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나도 내 아이가 오리든 백조든 은 중요하지 않다, 그냥 내 아이라서 너라서 너무너무 소중하고 사랑한다.
그러니 나도 나를 그냥 나라는 사실만으로 사랑해줄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아기오리를 미워한 이가 오리 본인이지 않기를-
나는 오늘도 나를 좀 더 사랑해 주기로 했다.
두 번째 생일을 맞이한 내 딸과 새로운 시작을 준비 중인 나. 6월의 우리는 오늘 하루도 사랑만으로 보내자. <엄마 A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