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
by 서하
깊은 땅속,
나는 오래된 씨앗처럼 잠들어 있었지.
빛이 닿지 않는 침묵 속에서,
스스로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던 날들.
어느 날,
사랑이 내게 떨어졌지.
낯설고 조용하게,
그러나 단단히 나를 흔들며.
사랑은
비처럼 나를 적시고,
빛처럼 내 속을 가르고 들어와
굳어 있던 껍질을 조용히 열었지.
나의 심장을 뚫고
껍질 사이로 무언가 비집고 나왔어.
땅을 뚫고 하늘을 향해
땅을 뚫고 샘물을 향해
그게 나였지.
사랑이 내 안에서 숨을 쉬기 시작했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되었지.
✥ 모티브: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요한 15.3)
나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가지가 포도나무에 머물러야 열매를 맺는다”라고 하셨듯,
먼저 있어야 할 것 ‘머무름’과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말씀이 한 사람의 삶을 깨우는 과정을 시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잠들어 있음 → 말씀이 도달 → 내면의 파열 → 새 생명의 탄생
"깨끗하게 된다"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 정결함이나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참 '나'로의 존재젹 변화, 곧 부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