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

#049

by 서하

등불

by 서하


사랑은

어두운 방에 켜진 작은 등불

미움은

그 빛이 눈부셔 화들짝 놀란 어둠


등불은

그저 켜졌을 뿐

어둠은

그저 드러났을 뿐


등불은 누구도 해치지 않고

누구와도 싸우지 않지만

켜졌다는 이유 하나로

어둠과 마주 서게 된다.


사랑은

그저 미움을 견디며

어두운 방에 켜진

작은 등불



✥ 모티브: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요한 15.18)


『등불』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대신, 사랑이 가져오는 불가피한 반응—‘미움’—을 조용히 마주합니다.
미움은 내가 진리와 사랑을 따를 때 생기는 충돌이고,
침묵이 익숙한 곳에서 불편한 진실을 말할 때 겪는 저항이며,
자기 존재에 충실할 때 타인이 느끼는 불편함..
사랑과 진실에 충실할 때 생기는 부작용과도 같은 것 같아요.

의사가 약의 부작용을 감수하면서도 생명을 살리는 처방을 하듯,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진리와 사랑이라는 이름의 ‘등불’을 계속해서 처방하십니다. 미움이 따를지라도 말입니다.

이 시는 사랑이 싸우지 않으면서도 마주 서는 용기, 조용히 자신을 밝히며 견뎌내는 내면의 힘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그것은 어둠을 물리치는 싸움이 아니라, 어둠을 밝혀가는 존재의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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