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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모든 것이 사라졌다

공심재-신나는 글쓰기 9기

by veca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빠져나왔을 때 바로 그때였다. 분명히 가이드셨던 스티브 님의 뒤꽁무니를 따라 같이 나오고 있었는데 나오고 보니 없었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관람 마지막 성당에서 나올 무렵 뒤돌아 성호를 긋고 아름다운 곳을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뿐인데 말이다. 그 기도 끝에 그들이 사라졌다. 분주하고 갖가지 소음으로 가득 찼던 세상은 일시에 적막해졌다.

스페인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발에 치이고 어깨에 부딪히는 사람들이 거슬렸다. 스페인에 관광객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많다고? 거의 소음에 가까운 소리들이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내 귀에 웅성거렸다. '어쩔 수 없지. 관광지잖아. 괜찮아 괜찮아!'

혼자 속으로 되뇌고 되뇌었다. 하지만 음식이 입에 맞지 않다는 둥 호텔이 작다는 둥 사람이 많아서 힘들다는 둥 투덜대며 아이들과 남편까지 점점 목소리가 커져갔을 땐 머리까지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리고 계속 생각했다.

'혼자 있고 싶다. 시끄러워. 조용히 바르셀로나 거리를 걷고 싶다고!!'

그러고는 체코에서 트램을 타고 혼자 대성당에 가던 생각이 떠올랐다. 대성당 역 바로 전에 잘못 내렸을 때 그 고요하고 낯선 풍경과 조용히 흐르는 자연의 소리. 혼자 남겨진 흐릿한 두려움의 느낌 하나하나가 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했을 뿐 1883년 서른한 살의 가우디가 1926년 죽을 때까지도 완성하지 못했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뒷이야기를 스티브 님에게 듣고 난 분명히 감동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밝히는 빛의 향연과 사람들의 계산된 자연 활용능력에 찬탄하고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 갔을까?

적막이 주는 고통이 있었다. 납작하게 나를 누르는 압력이 느껴지는 것 같았고 하늘과 땅이 곧 만나 나는 곧 그들처럼 사라질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를 스쳐가는 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어찌 되었든 나는 지금 혼자야. 이 세상이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해도 여기가 지옥이라 해도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된 거지. 곧 내가 그들처럼 어디론가 사라질지도 모르니 이 시간을 즐겨볼까?'

성당 앞의 인공 호수를 바라봤다.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다시 뒤돌아 성가족 성당을 올려다보았다. 138년 전 아무것도 없던 이 땅에 무수한 사람들이 영혼을 붓고 근육의 노동을 통해 이룩한 높고 높은 성당의 모습이 전율을 일으켰다.

성당을 등지고 천천히 걸었다. 모든 것이 사라진 바르셀로나 거리에서 차양이 드리워진 카페로 들어서니 아무도 없는 카페 안에서 방금 내린 커피 향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주방 커피 머신에는 방금 내려서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가 아름다운 잔에 담겨있었다. 따뜻한 잔을 들고 테라스에 앉아 고즈넉하게 커피를 마셨다. 되도록 천천히 조금씩 커피를 입안에 머금고 오후 햇빛에 반짝거리는 스페인 거리를 응시했다.

나는 그곳에 있었고 그리고 그곳에 없었다.


사라진 건 그들이 아니라 나였다.

1638858307964.jpg 모두 스페인 한량 스티브 작가님이 보내주신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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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글쓰기 미션 9-2였어요. 생각해 보니 혼자 남는 건 무서운 일이군요. 늘 그러길 바랐지만요.

아직은 함께 생을 살아가고 싶은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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