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기 안에 머무는 법을 배움으로써 외로움을 줄일 수 있다. 그러면 여러분은 타자의 인정에 그렇게까지 목숨을 걸지 않으면서도 타자들을 찾아 나서고 그들에게 자기를 열어놓을 수 있다. 그래도 외로움은 시시때때로 우리를 후려칠 것이다. 그건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외로움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당신’의 외로움이다.
- 외로움의 철학 (라르스 스벤젠)
그 남자가 맑은 소주를 한 잔 가볍게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면서 외롭다고 말했다. 자주 만나는 부부모임이었다. 편한 자리여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 '외롭다'는 단어가 동굴 속에서 들리는 언어처럼, 높은 산의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 울림의 파장은 오래 계속되었고 며칠이 지난 오늘까지도 나의 머릿속을, 아니 혈관을 빙빙 맴돌고 있다.
첫째를 낳고 일하면서 만난 예쁜 언니가 있다. 언니는 사람을 좋아해서 자주 관계를 확장한다. 언니의 친구들도 함께 만나고, 내 친구도 언니의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부부 모임을 갖게 되었고 두 분은 잃어버린 형제를 만난 것처럼 잘 어울렸다. 남자 형제가 없는 분들이라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형부와 남편은 우리만큼 절친이 되었다. 두 남자는 함께 술잔을 기울이다 당구도 치고, 지난 주말처럼 세 시간씩 산을 오르기도 한다. 그러다가 늦은 오후엔 넷이 모인다. 그 자리에서는 '4주 후에 다시 보자'라고 하던 TV 프로그램처럼 마음에 깊이 담아놓은 부부 솔루션도 이루어진다. 아이들의 사춘기와 취직, 결혼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 이야기를 거쳐 지금 왜 우리가 불안한가를 놓고 얘기하던 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남편이 말했다.
"요즘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들 그럴 수 있다는 분위기였다. 내 마음속엔 바늘처럼 날카로운 감정이 스쳐갔다. 외로웠냐고 그 남자를 쳐다보며 등을 토닥였다.
"남자가 외롭지!"
형부가 왠지 무거운 톤으로 말씀하셨다.
"그냥 남자 여자를 떠나 사람이 외로운 존재인 것 같아요."
남편이 조금 먼 어느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린 3초쯤 침묵했던가. 그러고는 네 사람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렇게 외로우니 우리 자주 만나서 서로 위로해요. 자, 건배~!"
언니가 따뜻한 눈빛과 음성으로 제안했다. 우리 네 사람은 잔을 부딪혔다.
내가 뜨끔한 것은 갑자기 모르던 것을 알게 되어서가 아니었다. 열중해야 할 일들을 산더미처럼 벌여놓고 몇 시간이고 책 속에, 컴퓨터 속에 파묻혀 있으며 자주 문을 닫고 들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았다. 나의 갱년기를 들여다보며 그의 갱년기를 모른 채 하긴 힘들다. 내가 외로우면 그도 외롭다. 결국 그 밤 드러난 것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몇 달 전 거래처 사람이 딸들과 아내에게 따돌림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퇴근하면 모두가 방으로 들어가고 밥도 늘 혼자 드신다고 했다. 열심히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는데 크게 절망했고 갱년기를 심하게 앓는다고 했다. 남자도 갱년기가 있더라는 그의 말을 여자가 셋이니 그런가 보다 하며 무심히 넘겼다. 뭔가 개운치 않은 여운이 남았다.
그 장면이 떠오르면서 시선을 소주잔 어디쯤으로 향하며 '외롭다'는 단어를 떨어뜨리던 그가 오버랩되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나부터 살아야 했다. 내가 회복되어야 그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힘든 시기에 놓인 건 호르몬과 사춘기도 있지만 언제나 중심에 그가 있기도 했다. 이해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고 편안함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늘 냉정했고 어디에도 여지는 없어 보였다. 그의 마음까지 돌아보기에는 버거웠다. 물론 원인이 그에게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안다. 그 해소를 스스로 하지 못하면 진창을 빠져나가긴 분명 힘들었다. 내가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했다. 결국 집중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고 열심히 달리다가 급히 멈췄다. 달리는 도로에 버티고 서있는 집채만 한 그의 외로움과 마주했다.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았다. 모른 채 외면하고 빙 돌아서 다시 달린다면 분명히 후회할 것 같았다.
내가 무엇을 한들, 무엇을 하지 않은 들 외로움이 다시 그를 후려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몫의 외로움을 책임져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외면한 채 처절하게 혼자 겪도록 버려둘 순 없다. 그가 견뎌주고 참아주는 나를 돌아보고 그가 원하는 방향을 두리번거렸다. 뭔가 방향이 보이는 듯했다. 그 길이 맞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저 내게 보이는 방향으로 노를 저었다. 온 힘을 다해서.